[오늘의 인물] 2010년 1월 5일- 독립운동가 김지섭 의사, '폭발 불발'로 폭살기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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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의사
김지섭 의사

[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1923년 일본 동경에 관동대지진이 일자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했다. 이에 의열단은 결사 단원을 일본에 파견해 요인을 암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고 , 김지섭 의사가 실행 대원으로 선임됐다.

1924년 1월 3일, 김지섭 의사는 일본인으로 가장해 동경에 잠임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제국의회가 개회되는 때를 맞추어 회의장에 폭탄을 투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지섭은 계획을 전면 수정해 일본 궁성에서 천황을 폭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틀 뒤, 김지섭 의사는 궁성 주변을 내왕하며 폭탄을 던질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거동을 수상히 여긴 일본 궁성 경비의 불심검문을 당한 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다 생각되어 경찰을 쓰러뜨린 뒤 폭탄 1개를 투하했다. 하지만 불발됐다.

이후 김지섭 의사는 일본 궁성으로 들어가는 이중교를 뛰어 건너가며 위병들을 향해 2개의 폭탄을 더 던졌으나 이마저 불발되며 위병에게 붙잡혀 결국 폭살기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지섭 의사는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며 폭탄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강력한 폭탄이라 주장했다. 불발된 원인에 대해서는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생긴 습기 때문이라 진술했다.

독립운동가 김지섭 의사는 3차의 걸친 공판 후 11월 6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는 시곡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1927년 20년 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이듬 해 옥사하였고, 1962년 정부는 김지섭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일본의 후세 다쓰지는 김지섭 의사를 빗대어 "조선 민중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를 변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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