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951년 1월 4일- 마오쩌둥의 공세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빼앗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오쩌둥
마오쩌둥

[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1951년 1월 4일은 우리나라의 심장인 수도 '서울'을 빼앗긴 치욕적인 날로 기억된다.

1950년 북한의 남침 후 한국은 UN연합군의 도움으로 38선을 통과한 후 평양까지 점령했고 10월 19일, 마침내 UN군이 북한 공략에 성공하며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 마오쩌둥은 중화인민해방군 북방지역군에게 중화인민의용군 휘하로 편입하여 한국을 침공할 것을 명령했고 중국의 총리 저우언라이를 통해 비밀리에 소련과 전문을 타전하며 '이웃나라로써 한국전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투 행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같은해 11월, 중국의 인민의용군은 북한진영에서 시작된 대규모의 첫 번째 미-중 전투에서 승리하며 UN군을 철수시켰고 그달 말에는 UN지휘본부를 북동부 북한에서 38선 이남까지 밀어내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12월 제2차 청천강 전투와 장진호 등에서 강력한 공세를 펼치며 4일 평양을 지나 한달여만인 1월 4일 ‘서울’을 다시금 빼앗았다.
 

이 때 한국 정부와 많은 민간인은 다시 남하 피난길에 올랐고 공산군은 중공군 개입에 힘을 얻어 끝없는 남진을 시작했으나 유엔군의 공중 공격으로 저지되었다.

이 후 유엔군은 반격을 재개하며 인천과 김포를 탈환하고 3월 14일 서울을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서울과 평양을 탈환하기 위한 연합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1953년 7월 27일 양 측간 제네바협정을 체결하며 비로소 3년 1개월의 걸친 전쟁의 휴전소식을 알렸다.

한편 중공군은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모택동(毛澤東-마우쩌둥) 체제가 강화되었고, 중공군의 참전은 UN에 의해 '침략자'로 규정되었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