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day 인터뷰] 김행식 민족대표33인 유족회 前회장에게 듣는 '아버지들이 만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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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33인 유족회 전 회장 김행식 목사
민족대표33인 유족회 전 회장 김행식 목사

[피플투데이 김은서 기자]= ‘아버지는 죽어서도 아들 속에 살아 있다’라는 말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에겐 세상 만물이 그들의 인격체를 형성시켜주는 무수한 영양물이겠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조금 더 특별하다. 자라는 과정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결부시키고 앞으로의 인생 방향과 삶의 방식을 결정해 나간다. 이처럼 세상에 수많은 아들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아버지의 존재 곁에 평생 맴돈다. 원로목사이자 명예철학박사인 김행식 목사(90, 인천 남구 주안동)는 백발 노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침마다 아버지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닦으며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를 추억하는 김행식 목사. 그의 아버지는 바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김병조 목사다. 아버지 김병조 목사는 1877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1917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김병조 목사는 목회자로서의 삶 외에도 교육자, 사학가, 언론인으로서 활약한 수재 중에 수재였다. 이처럼 다방면에 능력을 펼치던 김병조 목사는 일제 치하에 고통 받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기꺼이 제 몸을 바쳤다.

 

“아버지는 죽고 사는 것을 전혀 겁내지 않으셨어. 좀 고지식해보일 순 있겠지만 옳은 일이다 싶으면 죽음도 불사하셨지. 아버지는 상해 임시정부 창립인 중 한 명이었는데, 법제위원, 외교위원장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셨어. 물론 일본의 감시와 핍박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했지.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참 잘 버텨내셨어. 어렵게 맞이한 해방 후에는 기뻐할 틈도 없이 반공운동에 주력하셨지. 그러나 이러한 반공 운동을 계기로 아버지는 1946년 12월 24일 정주에서 체포되셨어. 곧이어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서 돌아가셨지. 유해도 찾을 수 없었어. 유해의 일부라도 찾기 위해 33번이나 시베리아에 갔었는데.. 결국 찾을 수 없었지. 살아생전 국가만을 바라보며 맹렬하게 사신 분이라 돌아가시고 나서는 따뜻한 곳에 모시고 싶었는데.. 그게 참 가슴이 아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굳은 절개로 독립운동과 반공운동에 앞장섰던 김병조 목사이지만, 사실상 그는 재북(在北)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홀대받아 왔다. 이에 아들 김행식 목사가 발 벗고 나섰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아버지의 용감했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는 백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김행식 목사는 아버지 김병조에 대한 연구 자료를 모으고 직접 저서를 쓰는 등 아버지를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반평생을 보냈다. 그러자 마침내 순국한 지 40여년 만인 1990년에 이르러서야 김병조 목사는 건국훈장 대통령(2등급)장을 추서 받았다. 이것은 모두 김행식 목사의 노고 덕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비추는 거울

직접 벌어 모은 사비로 김병조 목사의 기념비를 세우고 ‘일재 김병조 평전’, ‘한민족의 항쟁’ 등을 편찬하며 아버지 김병조의 공을 알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한 김행식 목사. 존경스러운 아버지임에 틀림없지만 남다른 추억이 많아 아버지의 삶에 더더욱 애착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에게 물었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아. 늘 나라를 위해 사셨던 분이라 자주 볼 수는 없었지.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를 정말 많이 닮았어. 아버지처럼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 인생도 아버지 못지 않게 파란만장했지. 1960년 3.15 부정선거 때는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기도 했어.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잖아. 내 거울은 바로 아버지인 것 같아. 나는 늘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평생 노력하며 살았어. 경찰관과 학교 교감을 거쳐 목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지.”

 

젊은이들이여, 나라를 지킨 아버지의 역사를 기억하라

 

구순(九旬)이 된 지금도 자신을 있게 해준 아버지의 존재에 감사하며 산다는 김행식 목사. 그는 수많은 훌륭한 아버지들이 존재했기에 현재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세의 침략에 고통 받았던 힘없는 나라를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으로 만든 것은 팔할이 우리 아버지들의 기개였다고 했다. 자손만대에 영광스러운 민족의 위상을 지켜 나가기 위해 일제의 끔찍한 고문에도 눈 하나 꿈쩍 않던 그 용맹한 기개 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본인과 가족들을 희생하면서 투쟁한 선열들, 우리 아버지들을 기억해야 해. 앞으로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젊은이들은 민족의 뿌리를 잊어버리지 말고 비전을 가지며 살아야 해. 돈을 많이 벌어 호화생활과 쾌락을 누리겠다는 것은 비전이 아니라 야망이야. 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해 내겠다, 살기 좋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 하는 것이 바로 비전이지. 머릿속에 어떤 비전이 있는가에 따라 세상은 변화를 가져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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