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을 딛고 일어선 중견화가 박필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플투데이 박정례 선임기자] =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은 예술이 아니다’ 이는 세네카가 한 말이다. 세네카는 누구인가. 그는 재정 로마시대의 폭군인 네로황제의 스승이었던 유명한 웅변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다. 예술이란 인간이 자신의 사상과 감정에 영감을 더해서 창조물을 얻어내는 행위이다. 이런 예술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감흥을 일으켜서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품은 그래서 인간의 노력과 능력을 벗어나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거나 우연히 생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예술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각고의 정진이 더해지고 혼을 투사해야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으면서도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술품이 빚어진다.

 

헌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창조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는 전재에서다. 하지만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형태는 천차만별이라서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 어떤 예술행위라도 소질과 취미와 시간투자가 뒷받침돼야 가능하고 그 무엇보다도 예술가 자신이 즐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역경과 걸림돌이 가로막더라도 그렇다. 이래서 예술은 역설적이게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특성이 있고 이런 특성이 예술을 말해주는 요소가 된다.

 

 

 

박필임 화가에 대해서

박필임 씨는 화력 14년 차 되는 중견화가이다. 화력 14년이라 함은 잠시 동안의 경력단절이 있은 후 다시 붓을 잡은 햇수를 말한다. 여성작가 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결혼과 함께 육아에 힘쓰느라 보내는 시간이다. 박필임은 학부 졸업을 마치고 대학원에 재학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신나도록 연애를 했고 드디어는 결혼에 골인을 한다. 그녀는 이어서 임신과 출산시기를 맞는다. 주부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시작된 거다. 가정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은 그것 자체로도 대단한 의무가 뒤따르는 즐거운 임무이다.

 

그래서 주부로서 진정 현명한 방법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하게 될 때까지 얼마큼 지혜롭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화가로서의 두 정체성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균형감 말이다.

 

가을을 유영하는 고추잠자리의 모습을 보자. 빨간 고추를 말리기 위해서 마당 한가운데에 펼쳐 놓은 멍석위에서 뱅뱅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여간 귀물답지 않다. 탈피의 험난한 과정을 무사히 견디고 나와 꽃밭 속을 팔랑거리며 노니는 나비의 자태 역시도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성 박필임도 이렇듯이 결혼, 출산, 육아를 위해서 헌신하며 무수히 많은 탈피의 과정을 거쳤다.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다시 캔버스 앞에 앉을 수 있었다. 한 예술가로 간단치 않은 결실을 기어코 이뤄낸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붓을 다시 들기까지의 에피소드와 도전정신

박필임에게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박필임은 연애결혼을 했다. 박필임은 남자의 조건만을 보고 무조건 결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화가 이전에 단단한 생활인이 돼야했다. 전공을 살려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화가로서의 기량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이 간단치 않다.

 

불교잡지 ‘법련지’에 2012년까지 16년 간 삽화를 그려 공양을 했고 ‘인산의학’에서 16개월간 표지 삽화를 그렸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쓰다가 밀쳐놓은 종합장을 끌어당겨 놓고 일상생활에서 눈에 띄는 대로 스케치를 쉬지 않았다. 유리컵, 과일, 책가방과 도시락주머니 같은 생활용품도 좋고 창밖에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도 좋았다. 해마다 철마다 자연은 그녀 앞에 항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기에 어찌 보면 이 시기는 정신세계를 알차게 성숙시키는 혼자만의 시대였는지 모른다..

 

길 다면 긴 기간이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그녀의 성정을 잘 나타낸다. 내친김에 말하지만 불교미술을 하는 이들의 작품감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화첩을 꺼내들고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 이런 점은 본받아야겠구나!"하며 진경산수에 관심을 기울이며 안목을 넓히며 자신의 사유의 창을 부지런히 갈고 닦았다. 하긴 피카소는 "일류는 남의 그림을 잘 훔치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래 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말했다. 손에 붓을 들지 않았다 해서 모든 것을 손 놓은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박필임은 전시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어느 날 대학교 은사님의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술의 전당으로 축하를 하러 간 자리였는데 박필임은 어느 결에 종합장을 펼쳐들고 교수님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교수님은 “박필임, 너는 너다. 열심히 하던 예전 모습 하나도 안 변했구나!”라고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박필임은 은사님의 말이 내심 반가웠다. 교수님이 “내 모습을 잊지 않고 계시구나!”

 

박필임 작가의 탈피 그리고 성숙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작품을 감상하며 눈으로 사색하는 것도 좋지만 하루 빨리 붓을 다시 잡아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어떤 선생님을 찾아가야 배울 점이 많을까?” 설레고도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작업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종선 화백이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집 가까이에 있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수더분하고 꾸밈이 없었다. 천하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선생님을 찾아 가서 데생부터 다시 시작하며 도전했다.

 

세밀화를 통해서 사물을 정확하고도 치밀하게 보는 감각을 되찾고,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로 소재와 주제를 다양하게 넓히며 작업에 몰두했다. 재료도 유화물감이든 수채화물감 혹은 아크릴 물감 등 가리지 않고 경험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했다. 선생님은 그런 다음에 “화면에 바탕칠부터 마티에르를 깔아 중후한 느낌을 내면서도 조형성이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일께워주셨다. 선생님의 격려는 귀한 채찍질이 됐다. “소질은 있는데 오랫동안 묵혔으니 빨리 갈고 닦자!”는 격려를 들으며 쉬지 않고 정진을 계속했으니까 말이다. 그 덕분에 ‘그림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체득한 박필임이었다. 그녀는 재도약을 위한 공백기를 이렇게 메웠다.

 

전시회 이야기다. 박필임은 차츰 그룹전을 필두로 적지 않은 전시회에 참가하게 된다. 3인전, 창화그룹전, 한일교류전, 서울미협전, 대한민국회화제, 전업작가전이다. 그러다가 작년 3월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라메르에서 자신만의 개인전을 열게 됐다. 물론 현재도 여러 단체에 소속이 되어 활발한 작품전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면 개인전에서는 어떤 그림을 선보였는지 본다. 잭슨 폴락이 말하기를 ‘그림에는 나름의 삶이 있다’고 했듯이 그녀의 작품에도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많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면서 박필임을 더 알아보자.

 

박필임의 청색시대와 사유의 창 엿보기

그녀 박필임은 여러 차례의 탈피를 계속한다. 사유의 세계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무심코 하는 생각은 그냥 넘기기 쉽지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민하면서 하는 사고란 한 단계 높은 철학적 사고일 수밖에 없다. 박필임 작가도 이점을 말하고 있다. “나의 생각을 건성으로가 아니라 단계를 자꾸 높여서 수준 있게 발전시켜나가다 보면 사유가 됩니다. 화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게 구현하는 숙명을 짊어진 사람이지요. 그래서 저도 자꾸만 깊이 생각하게 되고 반듯하고 바르고 희망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것을 담으려고 애씁니다.”

 

작품의 주제로는 큰 틀에서 사유의 창과 아름다운 인생의 사계일 수 있겠는데요 전시회에 내건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제 작품은 보시다시피 반추상입니다. 세밀화나 구상화에 자신감을 되찾은 후 어느 날엔가 불현 듯이 눈을 뜨게 됐지요. 사진처럼 정확히 그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꽃을 그리면서도 무조건 세밀하게만 그릴 게 아니라 덩어리로 표현하여 꼬 안에 다른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 덕분에 그림은 맛과 멋이 화폭에서 같이 어우러져야 함을 체득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 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정확하게 그리는 사실화는 일면 쉬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반 추상, 반 구상으로 전향한 것은 저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구상적인 것에만 익숙한 제 자신에 대한 반란이었지요.”

 

캔버스에 나타난 작품의 소재가 주목 되는데요 가령 피아노, 파랑새,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 그리고 길과 나무 같은 것이요. “작년에 ‘박필임 전’에 내건 작품들은 모두 40점인데요. 그 즈음부터 제게 부쩍 ‘리듬’이 들어왔습니다. 신랑신부의 결혼식 장면에도 리듬이 흐르면 좋겠다 싶은 거예요. 우산을 펼쳐 든 빗길에서도 베란다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그래요. 제 그림을 통해서 충만한 행복을 느끼고 힐링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이미지를 구현시키고자 ‘사유의 창’ 시리즈에 많이 담아냈습니다.

 

즐겨 사용하는 색채는 작가의 개성과 뗄래야 뗄 수 없죠. 이 모든 것들이 작가의 사유를 구현하기 위한 차원 아니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사계’ 시리즈도 그렇죠. 춘하추동으로 변하는 자연의 질서를 보면서 생로병사로 점철된 삶이 이왕이면 어떻게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관조하게 됐습니다. 제 그림은 제 기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매일 기원을 하면서 삽니다. 절망과 고통 보다는 희망을 부르는 쪽, 부정적인 데로 생각이 미칠라 치면 순간적으로 ‘잘 될 거야. 내게는 희망이 있어.’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제 2의 도약기를 향해 날개를 펴다

박 작가는 그림이 잘 나올 때까지 그리다 보면 ‘앵매도리(櫻梅挑李)처럼 때마다 각기 다른 작품들이 나오더라.’고 말한다. 벚나무는 벚나무대로 매화는 매화대로 또 복숭아는 복숭아답게 특색 있는 꽃을 피워 자기다움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경애’가 높을수록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 다르다는 말도 했다. 박필임 그녀는 청색이 좋아 요사이 입는 옷도 청색을 선호하게 됐다면서 활짝 웃는다. 이런 박필임은 지금 희망의 상징색인 청색처럼 작품에서나 인생에서나 에너지 넘치고 영감이 힘차게 솟아나는 이끌림에 빠져있다.

 

제 2의 도약기로 가기 위한 반가운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다른 말로는 희망의 시대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