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철 칼럼] 디지털치매 환자를 만들지 말자

  • 입력 2020.02.04 14:21
  • 수정 2020.02.04 14:22
  • 기자명 하영철 미래교육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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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 생활이 디지털화되면서 온갖 정보가 저장된 디지털 기기 없이는 일상적인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에는 어디서나 노래 몇 곡쯤은 가사를 기억하고 부를 수 있었으나, 요즘에는 노래방에 가서 모니터를 보며 부르는 습관 때문에 아무 도움 없이 가사를 정확히 기억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휴대폰을 갖지 않고 외출했다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집으로 전화하려 할 때 집 전화번호가 잘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는 때도 있다. 휴대폰의 단축 번호나 이름으로 된 기록만을 이용하는 습관이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 못하는 디지털치매 환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차만 타면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리고 요즘엔 휴대폰의 T map을 이용하고 네이버 지도를 불러내 달리는 도로나 앞으로 가야 할 도로상황을 알고 가는 게 예사로 되어있다. 과거 지도를 보면서 찾아갈 때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때보다 쉽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는 있으나 이는 우리를 디지털치매 환자로 만들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는 목적지로 가는 길이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졌지만 요즘엔 그리 잘 알던 길도 생각나지 않으니 이는 인지능력의 저하로 치매의 요인이 되지 않나 염려되기도 한다. 

요즘 각급 학교의 교실 수업을 살펴보면 교실 수업이 맨손 수업에서 든손 수업으로, 칠판 수업에서 영상 수업으로 변해 최첨단 영상매체를 이용한 수업이 주를 이루며, 맞춤형 개별학습, 통합적 접근학습을 위한 PC 활용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다양한 영상매체 수업이 자칫 노래방식 수업으로 변질되어 디지털치매 환자를 만들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영상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視聽覺, 즉 보고 듣고 깨닫는 과정만으로 학습이 끝난다면 학습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학습자의 인지구조 속에 기억(저장) 되어 있어야 한다. 인지구조 속에 파지 되어 있지 않은 지식은 효용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학습이란 교사의 교수 행위를 통하여 학습자의 두뇌 속에 지식과 정보가 인지되고 각인되어야 하고, 이 같은 기본지식을 통하여 새로운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고 통찰과 직관을 통하여 순간의 발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수업이나 학습 방법이 음성과 영상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 노래방식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영문을 독해할 때 단어와 숙어를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는 학생과 사전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학생 중 누가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을 것인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 암기보다는 이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물론 이해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한 학습 방법이다. 그러나 암기 또한 중요함을 생각해야 한다.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지식과 정보 중에서 중요한 요소는 머릿속에 암기해야만 하고, 그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 해낼 수 있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구구단을 암기한 우리나라 학생보다 19단을 암기한 인도 학생이 수식 계산 능력이 더 뛰어나고, 많은 책을 읽기만 한 학생보다 책을 읽고 중요 내용을 머리에 암기한 학생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행하고 있는 디지털식 교수-학습 방법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영상 매체를 이용한 수업은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유발해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고, 활용의 정도에 따라서는 창의성을 기르는 데 효과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그치는 수업에 많은 문제가 있다. 학습에 활용하는 매체를 작동적 매체, 영상적 매체, 상징적 매체로 구분할 때 고차적인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상징적 매체가 더 효과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영상적 매체는 학습 과제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상황에서만 적절히 활용하여야 하고 영상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기록하고 중요 요소를 암기하여 다음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視聽者는 必敗요, 적(錄)자는 生存하고, 억(憶)자는 必勝하리라 생각한다. 視聽覺이 아닌 視聽錄憶覺, 즉 보고 듣고 기록하고 기억하여 깨달음을 얻을 때 학습은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학습자가 기록하지 않고 보고 듣고만 만다면 기록하여 기억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제 학생들에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습관을 갖게 하자. 기억도 어떤 방법으로 학습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 기억과 이해를 따로 생각하여 기억, 즉 암기교육은 좋지 않으며 칠판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효율적인 수업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검색과 활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노인세대는 디지털 외계인이고 젊은 세대는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말이 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고 유용한 정보검색으로부터 멀어지는 행위는 자제케 해야 하고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는 누가 무엇을 근거로 올려놓았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무턱대고 신뢰할 수가 없음도 가르쳐야 한다. 이는 불량 식품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지식의 ‘참 거짓’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고, 집중력과 사고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부모는 자녀가 인터넷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찾아보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기억하는 지식 또한 중요함을 알고 디지털 의존 교육에서 벗어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매체의 활용이 생활이나 교육의 필수품으로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로봇과 컴퓨터, 모바일 기기 등 AI교육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해도 인간의 두뇌를 대신해 주진 않는다. 디지털 매체 자체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 능력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자(text)에 토대한 지식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 같은 지식과 정보가 두뇌 속에 기억되어 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가정에서는 컴퓨터나 휴대폰, 태블릿PC 등을 이용한 자녀들의 학습 방법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Profile
現  미래교육포럼 상임대표
    미래로학교교육도우미 대표
    호남교육신문 논설위원
    대한민국 사진대전 초대작가

前  광주광역시 학생교육원 원장
    광주 KBS 남도투데이 교육패널

저서 <가정교육의 함정-오래>(2013):아동청소년분야 최우수상 수상(문화체육관광부)
      <생각을 바꾸면 학교가 보인다-영운출판> (2011),
      <학습력 증진을 위한 수업의 실제-형설출판사> (2010년)
      <아는 만큼 교육이 보인다.>-V.S.G Book (2009) 등 3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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