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유 아동심리] 자녀는 나의 거울이다

  • 입력 2019.05.28 16:41
  • 수정 2019.05.28 16:42
  • 기자명 유중근 한국애착연구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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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낳은 아이지만 정말 힘들어요. 어떻게 이런 애가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못마땅한 표정으로 딸에 대해 엄마가 말하는 첫 마디였다. 자녀를 양육하느라 참으로 많이 힘들고 고단한 모습이 읽혔다. 하지만 엄마가 힘들다는 건 딸도 힘들다는 뜻이다. 모든 관계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녀 문제로 힘들어서 찾아오는 대다수의 경우 자녀에게 일차적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춘기의 경우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 기복이 심하여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어떻게 부모가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 자녀의 현재 모습은 부모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기가 쉽다. 부모의 마음 상태는 관계를 통해 자녀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자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사실 내가 싫어하는 자녀의 어떤 모습은 내 모습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은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녀의 행동과 태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인 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은 두 가지 신비한 세계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한 쪽은 '아는' 세계이고 다른 한 쪽은 '느끼는' 세계이다. 두 세계는 '관계' 속에서 서로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즉, 자녀와의 관계에서 내가 자녀를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 그리고 자녀가 나를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뇌의 특징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아는' 세계를 다루는 회로가 있고, 좋은가 나쁜가를 평가하여 '느끼는' 세계를 다루는 회로가 있다. 이 두 회로가 서로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삶에서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지만 이 두 회로는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들어온 자극을 이미 저장된 기억 정보를 사용하여 그 정보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그리고 그 기억된 정보가 특정 감정과 함께 저장되어 있다면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같은 자극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는 한 비슷한 '이해'와 '감정'을 갖게 된다. 자녀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자녀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다르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보여 준 자녀의 행동이 이미 부모의 마음속에 저장된 부정적인 이해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느끼는 자녀의 모습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즉 자녀가 지금 부모로서의 나에 대해 알고 느끼는 이해와 감정은 내가 이미 가졌던 내 부모에 대한 이해와 감정일 수 있어서 자녀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기도 하다. 자녀에 대해 자동적 반응으로 이해하고 느끼기 전에 잠시 나와 내 부모와의 관계를 탐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내 부모를 어떻게 알고 느끼고 있는지,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감정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새롭게 나와 자녀를 이해하는 과정일 수 있다. 혹시 나는 자녀에게 내 부모님과 같은 모습을 비추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아 내 부모님의 양육패턴이 나에게서 반복되고 있다면 내 모습을 보는 자녀는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이해와 감정을 가질 확률이 높다. 결국 자녀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 된다. 

 

하지만 나의 두뇌는 자녀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나 사이에서 만들어진 '관계의 규칙'이 두뇌 속의 잠재기억으로 남아 '나'와 '내 자녀'의 관계에서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규칙 속에 함께 저장된 감정들은 나와 내 자녀 사이에서 규칙이 어긋날 때마다 튀어나오는 것이다. 
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감정들을 떠올려 보라. 서운했다면 지금 자녀도 서운한 것이다. 무서웠다면 지금 자녀도 무섭고 불안할 수 있다. 반대 감정도 마찬가지다. 언제 내가 즐거웠는지, 안정감이 들었는지 살펴본다면 그때가 자녀도 즐겁고 안정감이 들 때다. 

나의 두뇌 속에 저장된 부정적인 관계의 규칙으로 인한 이해와 감정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자녀의 서운함을 인정해 주고 불안을 이해하는 나의 행동에 달려있다. 이것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공감'이라고 한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전달되는 같은 자극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만드는 경험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인 내가 꾸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관계의 규칙이 자녀의 마음에서도 새롭게 만들어져 다음 세대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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