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례 러시아기행-3] 3일 동안 열차에서 무슨 일이?

STR,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씻기와 기타 볼일

  • 입력 2019.05.10 18:02
  • 수정 2019.05.10 18:04
  • 기자명 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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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면 고생이다' 여행을 하거나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심지어 친인척 집에서 유숙하게 될지라도 내 집만큼은 편안하지 않다는 얘기다. 아무튼 인간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떤 식으로든 값을 치러야 하는 존재다.

같은 객지 생활이라 하더라도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은 편안하고 좋은 곳에서 유숙할 테지만 한 푼이라도 절약하며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먹고 자는 문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살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은 그래서 천태만상이다. 하지만 출장이나 여행 혹은 모험 중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겐 적당한 음식과 휴식, 그리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건전한 여흥이 곁들여지면 좋을 것이다. 

 

 

현대판 알리바바들
어느 글에서였다. 인류가 아무리 이동 수단을 발달시켜봤자 기껏해야 21분 정도의 속도를 단축시켰을 뿐이라고. 숙식의 형태도 이 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눈이 감길 때면 눈을 붙여야 살 수 있다. 이런 원칙에서 벗어날 사람은 그 누구도 존재가 가능하지 않다 하겠다. 다행히 비행기 안에서는 항공사가 제공해주는 식사를 하며 음악과 영화 감상도 가능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은 현대판 알리바바가 돼서 말이다. 양탄자가 아닌, 문명의 이기인 비행기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하늘 위를 날게 된다. 필자처럼 과학적인 소양이 전무한 사람일지라도 수천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뤄낸 문명의 혜택을 보면서다.  

비행기 탑승시간은 길어야 24시간 이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열차 탑승은 보다 긴 시간을 요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대표적이다. 비행기 탑승과는 달리 열차에서는 음식을 제공해주지 않고, 심심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수단도 마땅찮다. 결과론이지만 필자는 심하게 착각을 한 게 있다. 이번 여행이 '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행이 35명이나 되니까' 70시간 41분을 문제없이 보내게 될 걸 기대하고 있었던 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때맞춰 요술 방망이를 두드리듯이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깨소금같이 재밌는 시간 나와라" 해주진 않았다. 근거 없는 희망의 대가는 처참할 정도로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으로 지속됐다. 

철도 총 길이 9288Km에 8개의 시간대를 지나고, 전 구간 중 선로가 차지하는 비율은 유럽이 19.1%에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구간은 80.9%가 된다는 STR이다. 최초 시발역에서 6박 7일간의 일정이 걸리며 열차가 달리는 동안 87개의 도시를 통과한다. 이중 인구 약 1백만 이상의 도시는 5개 시로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16개 강(江)을 거치는데 총 소요시간을 계산해보면 모두 146시간쯤 된다. 전 구간 중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70시간 41분에 3박 4일이다. 이 내용을 보면 횡단열차 구간 내 있는 통과하는 도시며 강의 숫자 등이 화려하게 나열돼 있다. 

하지만 3일 동안 4인실 침대칸에서 꼼짝없이 머물러야 하는 사람과 철도 구간별 화려한 통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낮에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봤음직한 멋진 풍광'이 나타나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에, 밤에는 침대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신경을 곤두세우며 긴장 속에서 보냈다. 열차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는 풍경은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하나같이 비슷한 풍경에 변화가 없다. 추위 때문에 우람하게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지나치게 말랐으며 조금의 햇볕이라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늘로 뻗어야 한다는 듯이 치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씻고 닦고 양치질하기
열차 안 사정을 보자. 화장실 출입은 고역이다. 좁아터진 공간에서 태평스럽게 일을 볼 수 있는 비윗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씻는 일과는 별도로 생리적인 현상은 불규칙하기 짝이 없다. 세면대는 물을 받아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누군 골프공을 지참하여 세면대 구멍을 틀어막으면 씻기 좋다고 조언해 준다. 아니면 작은 그릇을 준비해 가거나 하라고. 필자는 2개의 작은 그릇을 준비했다. 씻을 때 쓸 플라스틱 용기와 먹거리를 취급할 때 쓸 스테인리스 양푼 하나를 지참해갔다. 

덕분에 옷을 적시지 않고 씻을 수 있었다. 키 작고 체격 작은 사람이 높은 세면대에서 씻노라면 옷이 다 젖는 경우가 있는데 덕분에 옷을 적시진 않았다. 열차 안에서의 공간은 한정돼 있다. 자연히 시시콜콜한 일일지라도 이것저것 기억하게 된다. 작고 하찮은 일지라고 생각으로나마 혼자 지지고 볶으며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종국에는 목적지에 닿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좋지만 몸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할 일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다. e-book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다운로드해 가라고? "어휴 우리 일행 중에 그렇게 했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어요."다. 

기타 볼일
열차 화장실엔 누런 재생화장지가 비치돼 있었다. 세면대와는 달리 변기는 그야말로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화장실이라는 이름 안에서 두 가지 볼일을 같이 본다. 손 씻고 얼굴 씻고 이 닦기 등 씻는 거 말고, 나머지 한 가지 볼일이 또 있다. 필자의 경우 볼일 횟수를 줄이려는 노력 자체가 방어기제가 된다. 그 노력의 결과란 먹고 마시는 일을 절제하는 일이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다. 그런데 적응의 결과라는 것이 음식과 물먹기를 줄이는 것이라면 안 먹고 안 마신데 따른 후유증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영양과 식수 공급이 제대로 안되면 몸에 이상 증세가 생긴다. 필자는 여행 마지막 날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에너지 고갈과 탈수 증세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누울 것만 같아서 이를 앙다물고 버텼다. 이런 심정을 누가 알기나 할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내 몸은 내 것이니 혼자 견뎌야 했다.

2008년경이었을 거다. 광주를 가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라고 물었다. "오줌 마려울까 봐”라는 대답이었다. 그녀가 물을 먹지 않는 이유는 오직 '오줌 마려울까 봐서'였다. 요사이 화요일마다 현충원에서 가끔 만나는 여사님 한 분도 집 나와서 자꾸 오줌 마려우면 “어떻게 감당하나?"였다. 심지어 몸이 무거우면 잘 걷지 못할까 봐서 점심도 시장 끼만 면할 정도로 먹는 시늉만 하는 것이었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이처럼 나약하다. 유사한 종류의 기억을 떠올리려면 한이 없을 것 같다. 나라는 인간도 별 수 없다. 그렇다. 잦은 생리현상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보이지도 않는 화장실을 허둥지둥 달릴 일이 생길까 봐서 여행 중 내내 먹고 마시는 것을 삼가 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더,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뒷걸음치고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가 더럽혀 놓은 최악의 상태를 보게 될까 봐 그랬다. 볼일 후 물을 내릴 때도 시선은 앞으로 두고 손만 뒤로 뻗어 밸브를 내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오면 3일 동안 이런 걱정을 달고 살았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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