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례 러시아기행-2] 내 손안의 핸드폰과 인스턴트식품

여행 목적과 연령대 및 가성비 따져야

  • 입력 2019.05.09 17:04
  • 수정 2019.05.09 17:05
  • 기자명 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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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새벽밥을 먹은 덕에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저녁도 5시 30분경에 먹었다. 북한 식당에서였다. 일찍 일어나 일찍 먹고 일찍 서둔 덕에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향해 가는 시간은 쫓기지 않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저 높은 육교를 어찌 오르나?" 싶었을 때 짐꾼들과 마주쳤고 때맞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육교에서 여객터미널 쪽으로 다가가면 블라디보스토크 역 주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어 육교를 내려가자마자 1940년대까지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를 맞닥뜨렸고, 중. 장거리 기관차들이 쉴 새 없이 견인되고 있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열차 칸에 앉자마자 핸드폰 액정에 수시로 문자가 뜨고 있었다. 로밍을 하지 않고 탔던 것이 실수였다. 돈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웬 고집으로 그냥 있었는지 모르겠다. 들어갈 돈 다 들어가면서 오히려 귀찮은 일만 생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로밍 신청을 하는 도중에 그냥 작파해버린 사실이다. "그냥 갈 데까지 가보자!" 묻고 대답하며 뭐라 뭐라 하는 게 귀찮아서 "신청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폰카를 많이 쓸 거면서 그랬다. 결과는 폰을 터치할 때마다 "요금이 부과되었다."라는 문자가 뜨고 뜨고 또 떴다. 핸드폰의 문자는 마치 앵무새처럼 말하고 스토커처럼 따라붙었다. 남의 나라에 와있는데 한국 문자가 광속도로 전송되는 것이어서 처음엔 신기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요금이 부과됐다."라는 문자가 어김없이 계속되자 신경이 꽤나 쓰였다. 

열차 식당에서의 두 번 식사와 7번의 보급식
식당 칸에서 두 번의 점심을 먹었다. 70시간 이상 되는 승차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방편으로 식당 칸에서 '남북문제'와 '대중국 경제 전략'에 관한 강의 두 꼭지를 갖게 됐다. 식당 칸을 예약하고 한 일이다. 탑승 이틀째 점심 강의는 연변대 김강일 교수가, 삼일 째 되는 날 강의는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정치외교연구소장 최재덕 교수가 맡았다. 

별 볼 일 없는 식사였다. 한화로 1인당 26,000원꼴이라는데 가격에 비해 음식의 질과 맛이 별로였다. 포크와 수저도 1회용, 그릇도 1회용인 스티로폼 용기였다. 1회용에서는 그야말로 임시방편의 냄새가 난다. 어디서든 일회 용기를 만나면 "스타일 구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대로 대접받는 기분이 아니라 서다.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102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에서 임시방편 땜질 하듯이 스티로폼 그릇이라니? 빨간 수프와 빵, 달걀 프라이와 고기 섞인 마카로니와 당근 채를 섞어 버무린 양배추 그리고 홍차가 우리 앞에 놓인 메뉴였다.  

우린 식당 칸으로 가기 위해 열차 다섯 칸의 좁은 복도를 지나왔다. 스치는 동안 그야말로 적나라한 군상들과 마주쳤다 할 수 있다. 오픈돼 있는 6인 침대칸 사람들과 그들이 지닌 물건이  만들어내고 있는 버라이어티 쇼를 보듯이 말이다. 말이 그렇지 열차 안을 통과하는 입장이 돼보라. 종종걸음을 아니 칠 수가 없었다. 눈을 치뜨며 “저 사람들 뭐야?”하고 일제히 쳐다보는 눈초리에 왠지 뒤통수가 간질간질하게 느껴진다. 

식당 칸에 당도했을 때는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금 전에 지나온 열차 칸 모습들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최대한 빨리 잔상을 털어버리고자 했다. 그러고 나서 맞닥뜨린 사람이 식당 칸의 서빙 도우미였다. 그녀는 입고 있는 옷이 유니폼인지 일상복인지 구분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흰 와이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것을 보면 유니폼인가 싶기도 했지만 전혀 그래 보이질 않기도 했다. 서빙 도우미는 머리를 뒤로 묶은, 순박하지만 뚱뚱하고도 짜리몽땅한 여성이었다. 평소에는 서빙을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혼자 떡을 치고 있었다. 하긴 갑자기 34명을 상대하려니 당연할 게다. 혼자라서 쩔쩔맬 거면 주방에 있는 누구 나와서 좀 거들어주던가. 하지만 오로지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한국산 인스턴트식품 먹기
8번의 보급식에 대해서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것들인데 캔을 따고 봉지를 뜯어 물을 부으면 되는 것들이다. 즉석식품들 말이다. 그것은 햇반, 컵에 담긴 순두부 찌개국밥이란 것, 즉석 미역국과 참치 캔, 김과 깻잎장아찌 뭐 이런 것들이다. 여기다 각기 준비해온 밑반찬을 내놓고 열차 안 테이블에서 먹었다. 김치는 각 방에 한 팩씩 배당해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금세 시어버려서 인기가 별로였다. 그걸 보며 여행용 김치는 '볶아오는 것이 답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라면이나 뜨거운 물에 담가 데운 햇반을 주식으로 대충 6끼니를 채웠다. 

집에서 먹는 식사로야 뜸 잘 들고 기름기 자르르 한 쌀밥에 국과 찌개 그리고 입에 척척 감기는 김치 또 졸임 반찬과 발효식품 한두 가지를 곁들이면 제격일 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국물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돼버렸다. 정말이지 집 밥이 아니라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 지점에서 연령대에 따라서 여행의 양태며 이동 수단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불편한 점들은 현실이고, "여행은 좋은 것이야!"라고 주입된 '여행'이라는 추상명사는 그야말로 막연한 개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행동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열차 내에서의 식사 행위는 특히나 공간의 지배를 받는 행위다. 한두 끼라면 모를까 장시간 지속되는 여행에서라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주어진 여건은 극복할 대상이고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거다. 아무려나 우리는 그렇게 이르쿠츠크 역에 내리기까지 러시아에서 해결해야 할 21 끼니 중 절반을 소화했다. 70시간 41분의 열차 탑승에 대해 굳이 품평을 하자면 여행이란 "목적과 경제력과 연령대를 고려해서 그 양태가 달라야"한다는 점이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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