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줌 아웃_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입력 2019.03.19 16:33
  • 수정 2019.03.19 16:39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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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죽어간다.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야기다. 그러나 진지하게 문학을 흠모하며,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흘릴 수가 없다.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쌓인다. 쌓아두기만 하고 해소하지 못하니 머리끝까지 가득 차오른다. 이상하게 기분이 들뜨는 날, 아니면 정말로 우울해 죽을 것 같은 날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서 잠이 오질 않는다. 출판사와 서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 환경 문제로 종이의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종이매체가 향후 몇 년 안에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소문. 상실의 슬픔은 결코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지울 수 없다.

동경하던 소설가가 방송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방청객 중 한 명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손을 들고 물었다.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그 사람이 피식 웃으며 성의 없이 말했다.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잔뜩 들뜬 마음으로 평소에 잘 보지도 않는 TV 앞에 앉았었는데, 결국 전원을 꺼버리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문학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왜 이런 시대에 태어났을까, 하는 습관적 우울.

밖에서 하도 죽는 소리를 해 대는 탓에 내 안의 문학도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퀴블러 로스가 정리한 죽음의 5단계가 찾아왔다. 1단계는 부정. 어떻게 저 많은 책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거야?, 2단계는 분노. 저들은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책 같은 건 읽지도 않아. 3단계는 타협. 그래, 꼭 문학만이 정답은 아니잖아. 4단계는 우울. 내 인생은 끝났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많은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렸어. 5단계는 수용. 인생을 망쳤어도 괜찮아.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어.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문학을 떠나보낼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소설책 따위는 내려놓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겠다. 아니, 골치 아픈 책 같은 건 이제 읽지 말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이렇게 책장을 펴고 혼자가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어울리며 생산적인 미래를 그리는 삶을 살아야지. 그러나 무언가가 발목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마음이 참 복잡할 때 이 책을 펼쳤다. 이른바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라는 사사키 아타루.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책과 가깝게 지낸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쾌하다. 그의 문장에는 습관적 비관이 없다. 지식인 특유의, 바닥에 질질 끌리는 문체가 아니라, 양아치처럼 빈정거리며 통통 튀는 문장을 사용한다. 저자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세상을 본다. 그가 보는 세상의 인간은 단단히 착각에 빠져 있다.

“문학은 가장 젊은 예술이다. 책을 읽고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혁명이나 다름없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19세기의 러시아에는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문맹들의 틈바구니에서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쓰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중세 기독교 사회의 견고한 패러다임을 등지고 성서를 재해석하며 모든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던 루터는 종교개혁을 성공시켰다. 우리의 시대는 오히려 문학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철학자, 역사가, 혁명가들이 지금보다 훨씬 비참했던 시절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 책과의 싸움과 시대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고, 승리를 거뒀다. 진심으로 부딪혀 싸워 보지도 않고, 제대로 자신을 던져보지도 않고, 시대와 운명을 탓하는 푸념이야말로 패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남은 인류의 역사는 짧게 잡아도 1만 년은 될 것이다. 그동안 위대한 철학자들의 시대, 문학의 황금시대, 예수와 부처의 시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나?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 인간의 역사일진데, 무슨 근거로 문학이 끝났다고 단정하는가? 죽은 지 300년이 다 되어가는 괴테의 입에서도 “문학은 끝났다”는 말이 나왔었다. 그러나 문학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작가들도 똑같이 문학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변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지식과 깨달음이 인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읽고 쓰기’를 통해 인간은 변화한다는 것이 본질이며, 그 수단이 무엇이든 별로 상관없는 것이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저자는 실제로 다섯 번에 나눠 쓴 원고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식에 진지한 담론을 던져 넣었다. 우리가 보던 렌즈를 완전히 줌 아웃시켜, 일부가 아닌 전체로 시야를 넓힌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인간 세상이 하찮아 보이는 것처럼, 극심한 비극처럼 느껴지던 문제를 아주 가볍게 일축해버린다. 그리고 놀라운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비관에 길들여져 고개를 숙이고 습관처럼 문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렇게 충고하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라. 네가 생각할 문제는 따로 있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문학이 아닌 것에 정신을 팔지 말고, 문학 그 자체에 집중하라. 싸우고 또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고민하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를 원망할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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