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k는 내 인생, 백발이 돼도 이어나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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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고 싶었던 나, 비정상인가요?

“어렸을 적부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권위적이셨죠.”, 양 대표는 지금에서야 부모의 심정을 다 알게 되었지만 어릴 적엔 자신을 틀 안에 가두려 했던 아버지와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반항도 해보고 가출도 해봤지만 올바른 행동이 아니었기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하루는 TV를 보다가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락 밴드 ‘크라잉넛’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그들의 음악을 좇았다. 부산 광안리에서 열렸던 락 페스티벌에 참여해 크라잉넛에 열광했고, 마침내 그는 펑크락과의 사랑에 빠졌다.

양 대표는 저항을 뜻하지만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는 펑크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초중학창시절 내내 전교 1~2등에 반장을 하면서도 매우 활달하며 장난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교내에서 말썽을 많이 피우는 우등생이었으니 독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아했고, 늘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연한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고 고교 2학년 때부터 ‘사이고마데’라는 밴드를 시작했다. 이후 학업성적은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음악을 반대하는 이유였다. 특히 보수적인 아버지는 부산에서 꽤나 이름난 학원장을 지내셨기에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수능 성적에 맞춰 부경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 부모님께서 정해주신 전공은 뒤로하고 스스로 마음 속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부산 문화를 지켜낸다는 자부심

제대 이후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경성대학교 앞 리얼라이즈라는 클럽에서 첫 활동을 시작했다. 기대보다 관객 수가 적었고 되돌아보면 관객들은 양 대표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양재동 대표는 즐거웠고 환호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부산의 인디 음악씬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흥미롭고 펑크(punk)이라는 장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밴드인 옐로로코에서 도약을 위한 가치 있는 경험을 했다. 인디음악을 하며 첫 앨범도 냈고, 락 페스티벌에서 노래할 기회도 가지며 나름 전국적으로 팬들을 보유했다. “특히 그 시절에 가장 큰 감격은 제가 펑크를 시작하게 만든 우상 크라잉넛과 함께 공연을 하고 친분이 생겼던 일이에요”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밴드가 아닌 ‘양또’라는 예명으로 혼자 활동하기도 했고 그 사이에 양 대표는 2013년 <싸우스레코드>라는 이름의 인디음악 레이블을 설립하였고 주위 함께하는 음악동료들을 끌어 모아 리더로서 이끌게 되었다. 또한 어릴적부터 모아온 사비를 탈탈 털어 부산대 근처 합주실을 인수하고 ‘문화공간 카마그라드’라고 이름 짓고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옐로로코는 대중적인 펑크 음악으로 관객들과 소통했지만 팀원의 이탈로 지난 2014년에 해체했다.

비 내린 후에 땅은 더 단단해졌다. 이후 싸우스나인을 새로 결성했고,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가사에 사회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카마그라드 안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주 2회씩 연습을 하고 정기적 공연도 한다. 부산에도 음악씬(장소)이 꽤 있어 활동에는 불편이 없다고 한다. 양 대표는 “활동은 서울, 대전, 대구 등 다른 지역도 다닙니다. 그 중 거리적 부담감이 적은 대구를 많이 방문합니다”며 오늘 할 일이 있다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음악을 전업으로 하면서 수익을 이어가기는 힘들다. 양재동 대표도 처음에는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싶었고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쫓다 보니 순수한 음악이 변질될 것만 같았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 음악을 대하는 진심이 느껴진다. 기타를 치는 기호 씨는 유아 강사, 드럼을 맡고 있는 경태 씨는 공무원, 베이스를 치는 용한 씨는 수산업에 종사하고 보컬인 양 씨는 문화공간 카마그라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이야말로 그들의 본업이고 또한 돈 버는 일보다 열정은 오히려 더 크다. 오직 금전적인 이익을 위했다면 양대표는 현재의 싸우스 펑크리그(부산 최대규모의 펑크공연)를 아직도 기획하고 있기 힘들었을 것이다. 싸우스 펑크리그는 부산의 펑크를 지키려는 책임감의 결과물인 것이다. 특히 양 대표에게 싸우스레코드와 카마그라드를 운영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는 사라질 수도 있을 부산의 서브컬쳐를 스스로 지켜낸다는 자부심이라고 했다.
 
양 대표가 생각하는 펑크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본인들의 노래 실력이나 연주 실력을 자랑하듯 뽐내는 그런 음악이 아니라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없는 음악이라고 한다. 양 대표는 4월에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양또 앨범뿐 아니라 싸우스나인 앨범도 제작 예정이다.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로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올해에 바로 정규 앨범을 완성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부산의 서브컬쳐를 더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듯 하다. 
 
음악을 시작하고 힘든 10여 년의 여정을 걸어왔다. 이제 그렇게 다퉜던 아버지의 전화기벨에는 양 대표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그의 열정이 굳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대중들의 마음도 움직이길 기대해본다.     서성원 기자

 

현 싸우스레코드 대표 
    문화공간 카마그라드 대표
    2005. 밴드 사이고마데 결성 
    2010. 옐로로코 결성
    2012. 대만 Spring Scream 페스티벌 공연
    2013. 일본 도쿄 공연
    2013. TBN 라디오 ‘낭만이 있는 곳에’ 고정 패널
    2013. 5. 옐로로코 <LOKO PARTY> 발매
    2013. 6. 양또 EP앨범 ‘Not too late’ 발매
    2013. 9. 부산 인디 컴필앨범 ‘특별시부산’ 발매
    2013.10. 부산 인디음악 레이블 
                ‘싸우스레코드’ 설립
    2013. 10. 양또, 크리틱 ‘FM 94.9’ 발매
    2014. 1. 문화공간 ‘카마그라드’ 오픈
    2014. 5. 양또 스플릿 앨범 ‘From the heart’ 발매
    2014. 4. 옐로로코 해체
    2014. 9. 싸우스나인 결성
    2014.12. 싸우스레코드 앨범 ‘1412’ 발매
    2015. 3. 서울패션위크 공연
    2015. 7. 민락 페스타 공연
    2016. 8. 부산 락페스티벌 공연
    2017. 4. 후쿠오카 뮤직페스티벌 공연 예정
    라디오 게스트 다수 출연
    라이브 클럽 및 다수 공연
    문화공간 카마그라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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