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연기의 ‘만신전(萬神殿)’에 들다

  • 입력 2013.05.02 14:35
  • 기자명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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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스타>

여배우, 연기의 ‘만신전(萬神殿)’에 들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
 

한국 나이로 만 43세. 중견배우 김혜수에게는,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4월 1일 첫 방송을 탄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는 ‘미스 김’이라는 재미있고 독특한 캐릭터를 그만의 관록의 연기로 그려낸다.
‘미스 김’은 우울한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뒤엎는, 역전의 캐릭터다. 유쾌한 설정으로 우리네 노동 현실의 서글픔을 적확히 드러내는 ‘미스 김’은, 김혜수의 연기적 내공 없이는 그려낼 수 없는 배역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듯 하다.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이라는 캐릭터는 김혜수에게는 꼭 맞는 옷과도 같은 배역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의 경우 퇴근시간이면 눈치 보는 현실에서 칼같이 업무를 접고 일어서는 ‘미스 김’은, 계약직이어서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을 계약직이어서 누릴 수 있는 이익으로 바꾸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역시 김혜수라는 배우가 없으면 맛일 살지 않는 역할이다. <직장의 신>은 드라마로서 여러모로 보나 김혜수라는 배우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했으니 김혜수 연기력(歷)은 어언 30년 가까이 된다. ‘성년’을 넘어 ‘장년’에 이르른 연기의 역사를 보유한 김혜수는, 불과 수 년 안에 연기자로서의 모든 것을 ‘베팅’하는 트렌디한 타 배우들의, 다소 경박스러워 보이는 인상과도 묘한 길항(拮抗)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꼭 짚어 설명할 수 없는 김혜수의 연기적 자장(磁場)의 폭과, 짧지 않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의 휴지기도 없었던 성실한 연륜에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쨍쨍 울리는 파열음에 가까운 당찬 음성과 상대를 꼼짝 못하게 압도하는 날카로운 논리를 갖춘 언어구사력의 이면으로 고풍스럽고 사색적이며 혹은 초현실적으로까지 들리는 중저음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김혜수는, 그간 우리 연예계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철저히 소모되도록 길들여져 온 ‘여배우들의 현실’에서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벗어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연기자로서 김혜수가 운 좋게 태생적으로 갖춘 무엇 때문이었거나 혹은 피땀 흘려 그가 성취한 노력의 결과이려니와 그것은 어쨌든 지금의 ‘김혜수적’인 존재감을 이루는 데 지대한 역할을 맡은 큰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김혜수는 시절이 지나도 ‘한국형 건강미인’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물론 김혜수의 ‘육체’는 오랫동안 시각적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킬 만큼 탐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사실 ‘건강미인’의 언외(言外)에는 ‘섹스심볼’을 의미하는 불순한 정의가 다분히 깔려있다는 데 이견을 보일 이는 없다.
그것은 김혜수의 ‘육체’에 대한, 혹은 대다수 여배우들의 ‘그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이중적인 시선의 부산물일 뿐이다. 나아가 데뷔 이후 줄곧 김혜수를 ‘배우’가 아닌 ‘섹시스타’로 치부했던 연예저널리즘과 상업주의의 폐해였기도 했다.
그러한 ‘섹시스타로서의 김혜수’를 그에게서 온전히 휘발시켜 버리고 나면, 그 자리엔 끊임없이 육체성을 벗어버리고자 타전하는 ‘외로운 아마조네스 배우 김혜수’가 조금은 억울한 듯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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