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담는 건축가 김용만

문화를 설계하는 폼 나는 건축가, Home을 짓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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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꼭짓점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아름다운 삼각형을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건축이 된다. 세 꼭지점에는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 건축주의 생각과 뜻과 의지를 반영해줄 설계자, 이들의 생각과 표현된 도면을 현실로 옮겨줄 시공자가 서있는 이들이 균형을 어떻게 이루느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생한다.”
- 건축, 생태적 소통의 이마주 -

무분별한 자원남용과 에너지 소비로 인해 지구환경과 생태계의 위기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녹색건축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25년 동안 자연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에너지절약 건축을 연구하면서 생태건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품건축연구소 김용만 대표를 만났다. 생태건축이란 합리적인 철학과 디자인이론을 배경으로 인간과 환경사이의 바람직한 질적관계를 설정하는 경제적인 건축방법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생태는 타협이다, 생태는 환경이다
 
생태의 사전적 의미는 유기체가 생존을 유지해 가는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말한다. ‘산길을 따라 걸으면 산의 품성을 닮고 물을 따라 걸으면 물의 품성을 닮는다’는 문구가 있듯이 결국 사람은 환경을 닮아 간다. 김용만 대표는 생태건축이란 집주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일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며, 사람과 주변환경과 집이 불협화음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에게 집은 환경이예요. 주거는 홈(Home)이 되어야 하며, 문화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집을 편하게 지으면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신체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면 건강해지고,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사고를 하게 해요.” 라고 덧붙였다. 

 “친환경 주택이란 타협을 잘 한 집이예요. 아담과 이브처럼 다 벗고 사는 것을 우리는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황토를 사용하여 지은 집이라고 마냥 친환경 주택이라고 할 수만은 없어요. 사람들이 집을 짓는 목적은 본능적으로 안전함을 추구하기 때문이예요. 즉, 자연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아무리 자연 속에 그대로 지어진 집이라도 안전하지 못하면 그것은 친환경이 아니며, 콘크리트 속에 지어도 안전하다면 친환경이예요. 또한 요즘에는 재료만 가지고 생태환경을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황토와 통나무로 무작정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재료의 유해함과 무해함만으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설계하고 짓는 방법에 따라 재료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어요.” 라고 하며 그는 결국 ‘생태’는 타협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즉, 자연과 사람, 사람과 공간과의 관계이며 모든 관계 조율이 자연스럽게 되는 상태가 생태이며, 내가 폼 나게 집을 닮을 수 있도록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을 잘 조성하는 것이 생태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집짓기 학교
 
최근 주거문화에 대한 다양한 수요가 생기면서 자기만의 멋진 집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로 집짓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어떤 집을 원하는지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집짓는 방법에 대한 전문지식도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작은 건축시장에 누군가는 그들의 멘토 역할을 해야함의 필요성을 느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내 집짓기’ 서적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들을 담고 있는 것이 많아요. 전문적인 건축기술과 건축물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는 누구라도 책을 보고 활용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실제 설계를 의뢰하더라도 건축주와 건축업자와의 소통부재로 생기는 갈등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일반사람들은 집짓기 과정을 잘 모르니까 건축물의 형태가 나타나면 관심이 증폭해요. 건축업자는 건축주의 삶이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적은 비용으로 보여주기 위한 집짓기에만 관심이 있어요. 한참 진행된 후에는 조율도 힘들고 서로 힘이 빠져 서로 신뢰가 없어져요.”

김용만 대표는 불신이 굳어져가는 건축시장에서 휴머니즘을 실현해보려는 시도로 2010년 ‘행복집짓기’학교를 개설했다. ‘행복집짓기’학교는 일종의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집짓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전문교육과 건축자문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만의 집짓기 공식을 공유함으로써 생태환경건축 전문가들을 양성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삶 속에 감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동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보고 싶어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행복집짓기의 롤 모델이다.

콜라보레이션의 성공사례, 힐링카페 ‘가현’

그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법리 202번지 위치한 힐링카페 ‘꽃차가현’의 구미순 대표를 성공사례로 언급하며, 간판사진까지 건네 보여주었다. 구미순 대표는 행복집짓기 강의에 참여했던 수강생 이었는데 자본과 공간은 여유롭지 않았지만 본인이 소유한 땅에서 직접 창업을 시도해보고 싶어 하는 건축주였다. 김 대표는 건축멘토로서 ‘예약제 운영, 생명밥상 차려주기’를 운영원칙으로 제안하면서, 현실적인 조건에 맞는 컨셉과 전략을 같이 고민해주었고 결국 그녀는 힐링카페 창업에 성공했다. “최소창업자본으로 공간을 만들려고 하니 몸으로 때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보통 한 달이면 될 것을 6개월이 걸려 완성했어요. 재료구입부터 망치질, 톱질까지 직접 준비하는 모습을 봤어요. 지금은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됐죠. 혼자 했다면 절대 못했을 거예요.”라며 뿌듯함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생태사회를 건축하다

그는 행복집짓기 강좌를 매월 1회, 지난달까지 52차례 진행하는 동안 수강생들과 건축과 관련된 ‘지혜’를 교류함으로써 신뢰를 쌓아왔다. 건축가로서 쓰임새 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생태건축가로서 자신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신뢰가 기반이 된다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설정을 잘 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건축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2014년 행복집짓기를 토대로 더 다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 품마을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품마을’의 지향점은 양심적이고 성실한 소·상공인들, 문화예술인들에게 비즈니스 정보 교류의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자율적으로 협동하여 자립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그들이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잘나가는 건축가가 뜬금없이 왜 공동체사업을 하냐고 딴지 걸 듯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에게는 ‘건축’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이고 스스로·다함께·바로서기를 실현할 수 있는 녹색건축문화 사회운동(movement)의 확장활동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자생’이다. 즉 주체가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공동체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독립적인 자기만의 삶의 운영체계를 잘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주입식교육, 관계에서의 불통, 허세와 방어, 쓸떼없는 자격증 등은 철저하게 개인의 ‘자생’을 방해는 요인으로 분류한다.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모두가 무너지지 않고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 품마을학교를 시작했고, 앞으로 녹색 품마을신문, 품 평생교육원, 품앗이활동가, 미래마을대학을 운영할 계획이다. 건축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를 건축하고 있다. 집을 지었던 방법대로 사회도 지어보겠다는 멋진 포부가 보인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헌 마을을 때려 부수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어요. 품마을 운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한걸음 먼저 내딛은 품마을학교. 자생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멘토링 해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교육, 진짜 평생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생산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은 그의 단호한 의지로 개교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임명된 품마을학교 교장(문화이장)이 한 달에 한번 모임을 주최하는데, 여기서는 모두에게 자신만의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지혜와 지식을 전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품 마을학교의 취지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지역 문화를 유지하고, 공생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있어, 품마을학교장(문화이장)을 중심으로 그냥 우선 먼저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거예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특용작물재배법, 바느질, 꽃차 만들기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하고, 그들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실제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성의 기본자세, 뜸들이기

품마을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예요.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김 대표의 대답은 의외였다. 지향점이란 결국 목표점을 말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지향점은 그냥 ‘길’이라서 두루뭉술 할 수도 있어요.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저 길을 가면 뭐가 나올지 몰라요. 그런데 길을 가다보면, 돌도 도랑도 사람도 만나게 되죠. 배가 고프면 밥도 먹게 되고. 그러면 그게 목적이 되는 거예요. 가다보면 목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목적이 같은 사람보다 코드가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향점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헷갈려해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이유는 모르더라도 왠지 통하는 느낌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스스로 나름대로 정한 각자의 목적이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목적과 지향점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아마도 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순수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지향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표면적인 성공에만 집착하는 사람의 모임, 또는 목적이 강요되는 모임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생태의 기본은 지속가능성이니까. 지속가능성은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되니까.

지속을 위해서는 ‘뜸들이기’가 필요하다고 표현하며, 목적을 맞추려고 서로 애쓰지 않는 것이 바로 품마을학교의 룰(rule)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사업확장에 도움이 되거나 영업실적을 쌓기 위한 목적을 우선순위로 품마을학교에 온다면, 그들은 뜸들이기에 약하기 때문에 절대 오래 못 버텨요.” 협력(collaboration)할 수 있는 마음자세가 갖춰져 있다면, 말랑말랑한 관계로 이어가기 위해서 ‘뜸들이기’는 필수. 그래서 품마을학교에서는 ‘뜸들이기’ 오리엔테이션으로 ‘자기자랑’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에게 나를 알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즉, 서로가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의적인 역동을 생산적인 문화가치로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건축에 대한 그 만의 고집이 있는 것 같았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맺어진 목표지향적 관계라면, 설정된 관계 이상 다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어색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품마을학교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독립적인 일을 하되 필요할 때 쉽게 손 내밀고 당겨줄 수 있는 멘토 구조로 설계된 것이다.   

지향점만 있는 그에게 목표를 묻다

 지향점만 있는 그에게 목표를 묻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행복집짓기와 품마을학교에 온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며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구체적인 방법을 떠나서, 행복하게 건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행복을 표현할 수 있는 딱 맞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딱히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도 않네요. 내가 맡은 일에 책임과 역할을 다해 팍팍한 세상에서 신뢰받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이것이 제가 가진 방향이예요.” 그는 건축가로서 자신만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조차 삶의 목적을 물어보는 것 같다며, 말하기 애매하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관계·역할·소통을 기반으로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아직 완성된 설계도면을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매순간 지향점을 따라 그려가는 설계도면대로 행복한 집과 사회가 지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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