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 그대로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지금당장 향할 곳은바로 ‘청운골 생태마을’이다. 자연의 순수함과 전통 한옥 마을의 고즈넉함이 풍성하게 어우러진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우리가 자신에게 주는최고의 선물임에 분명하다.산록이 우거진 길을 따라 차를 타고 달리면 맑고 깨끗한 양평에 자리 잡은 ‘청운골 생태마을’이 있다. 푸른 산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한번 들이켜 보면 도시에서 피로해진 자신이 순수한 자연 속에 하나 되어 살아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청운골 생태마을은 가족 단위부터 단체로 체험학습, 워크샵, 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인근 상가지역은 불황을 모른다. 20만 명 배후수요를 품은 부 산대전철역에서 부산대 입구에 이르는 알짜상가는 부산의 노른자위이며 청춘 뷰티패션의 앞선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지역으로 꼽는다.그 중 뷰티산업의 성장은 더욱 눈부시다. 네일이나 왁싱, 메이크업 시장까지 끝없이 성장하고 있 다.젊은 청춘들의 거리라 더욱 빛나는 부산대 대학로 거리에서 뷰티 트렌드와 패션의 중심은 바로 더블S 뷰티살롱이다. 부산대학교 앞 착한 가게 ‘더블S 뷰티살롱’의 이세리 원장을 찾아, 편견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전문뷰티샵’의
유 화백은 70이 넘은 노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건강했고, 명동 스타벅스 공간에서도 전혀 이질감 없는 멋쟁이 신사였다. 유기송 화백은 10년 전 시사만화가로서의 직업을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수많은 인물들을 크로키(croaky)한 두꺼운 노트를 꺼내 보여주며, 크로키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에서 연필을 놓은 적이 없어요.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삶을 새롭게 배우는 작업이니까. 화가라면 개성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이동표 화백은 1932년 황해도 출생으로 6. 25전쟁을 겪은 직후 18세의 나이로 남한으로 내려왔다. 두고 온 산하에 부모님과 친구들이 그리워 한이 맺힌 그는 평생토록 그의 영혼을 담아 고향을 그렸고, 통일을 염원하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2010년부터 실향민은 물론 민족의 한을 함께 푸는 통일 주제를 그리는 한국의 유일한 작가로 꼽는다. 통일을 그리는 이동표 화백실향민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이동표 화백의 작업실을 찾았다. “6. 25 전쟁 때 회오리에서 전전을 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양평으로 내
자연이 준 선물을 메인 주제로 삼으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 김민주는 30년간 활동을 해오고 있는 서양화가이다. 그녀는 소재를 찾는데 가장 큰 정성을 쏟아붓는다. 어떤 여행이 좋은 여행인지 아는 그녀는 많은 나라와 휴양지를 다니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들을 눈에 담아서 그 만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곤 하는 그녀가 그 마음으로 표현해낸 작품 속 여정을 떠나보자. 행복을 찾아준 그림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이 생활에 활력이라는 김민주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인
음악은 곧 ‘과학’이다. 세상에 무슨 일을 배우던 ‘원리’와 ‘방법’이 존재한다. 국내 최초로 튜바 독주회를 열고, 세계 3대 튜바 팀 에게 멤버로 제의 받을 만큼 세계적인 튜바 연주자로서 인정받은 허재영 교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관악인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약 20년간 튜바 연주자로 활동해 왔다. 튜바는 오케스트라나 윈드오케스트라에 있어서 금관악기 섹션을 지탱해주는 악기이다. 또한 튜바는 낮은 음을 내는 저음역 악기로 음색이 무겁고 웅장하며 음폭도 매우 크고 힘이 있어 금관악기에서 부족한 낮은 음 처리를 해결해주며
초상화는 인물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초상화는 사진에 의한 초상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려졌다. 르네상스 이후 개인의식이 확립되면서 회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및 정·재계 인사 등의 인물화를 그리며 초상화의 대가로 잘 알려진 오동희 작가의 반포동 작업실을 찾았다. 약 30년 이상 된 그녀의 화실은 작업실이라기 보다는 작은 전시장 같았다. 캔버스와 이젤이 가득한 다른 작가들의 공간과 조금 달랐다. 빼곡한 캔버스에 촘촘하게 그려진 그들은 반기문 UN사
혼자 작품을 구상하고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문서영 작가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 하는 시간 내내 화사한 빛이 나는 듯 했다. 생동감 넘치는 해설을 친절히 들려준 문서영 작가덕분에 참신한 개성이 듬뿍 녹아있는 그녀만의 작품 세계로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20여 년 전부터 미술을 시작한 문서영 작가는 풍경화를 시작으로 정물화, 사실화 등을 배우며 폭넓은 미술 분야를 경험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본인만의 개성 있는 예술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예전에 수업 중 교수님께서 ‘캔버스에다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타고난 재능에 성실함까지 겸비한 김 덕 작곡가.그는 ‘음악은 산소와 같다’며 음악이 있기에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온전히 음악으로 가득 차 있는 김 덕 작곡가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음악과 열정이 어우러진 삶김 덕 작곡가는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성악과 악기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학생이던 당시 이미 곡을 쓰기 시작했으며, 악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며 음악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에 전문교육을 받고자 음악대학에 입학한 그는 입대 후에도 그 기질을 나타내며 ‘
내 고향 대가야대가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나라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다. 특히 대가야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고향 알리기에 애를 쓰고 있다. ‘대가야는 내 고향’이라는 노래의 가사도 그녀가 직접 작사를 한 것이다. “2015년 4월 2일 고령군 고령읍의 행정 명칭이 대가야읍으로 바뀌었어요. 이 때 이 소식을 접하고 식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숟가락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가사를 적어 써내려갔죠.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 하나 봐요.”
한국의 美“한국의 모든 것은 제 작품의 근원이 되죠.”이수자 화가가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난 지 36년의 세월이 지났다.그 곳의 생활에 익숙해질 법한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국을 애틋해 하는 감정을 늘 마음에 품고 있다.“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합니다. 올 때마다 행복하고 즐거워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향수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마다 그녀는 그러한 내면의 감정들을 작품에 오롯이 나타냈다.“어떤 연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미국은 사람, 빌딩, 나무 등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크
4월의 완주는 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하여 벚꽃이 흐드러지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차를 타고가며 굽이굽이 길을 지나 김영근 화백의 댁에 들어서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그의 앞마당이 기자를 정답게 맞이해 주었다.김영근 화백은 서울에서 4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오다, 8년 전에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인 완주로 내려왔다. 지금은 완주의 청명한 하늘아래 위치한 그의 화실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김영근 화백의 호는 예송(禮松). 예절 바른 소나무란 뜻이다. 호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도 소나무가 자
“나는 바다가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시골을 떠나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골은 나의 정서가 있는 생활의 장소입니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내 작업의 주제는 언제나 ‘자연’이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나의 그림의 대상이고,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높은 하늘, 무한히 변화하는 바다, 산 속의 나무와 꽃, 온갖 자연의 소리. 어찌 보면 나를 화백이 되도록 만든 근원은 이런 것들은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란 유년 시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열정을 가지게 되는
창의적인 발상 과 차별화된 목공예 기법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공예계의 대표작가 목우 권오곤 선생은 30년 넘게 목공예의 길을 걸어오며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목공예의 품격을 높이며, 침체된 공예계의 활성화를 위해 저변확대 및 후진양성에 기여하는 그를 만나 그윽한 나무향을 머금은 찬란한 예술세계를 조명해 보았다. 전통의 아름다움이 깃든 ‘목안공방’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위치한 목안공방 작업실, 조각도와 망치 울림소리가 한창인 그곳엔 문하생들이 배움의 열정을 키우고 있었고,
김정 화백은 40여 년을 줄곧 아리랑과 소나무에 몰두해 온 대가다. 한국인의 삶을 노래한 아리랑과, 다양한 소나무를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낸 몇 안 되는 작가이다. 또한 수많은 논문을 저술하며 한국 현대미술 조형교육 분야의 대표적 한술 토대와 기초를 다졌다는 평을 듣는다.그는 20대 군복무시절 처음으로 강원도아리랑을, 30대에는 여수, 진도를 오가며 아리랑을 스케치로 담는데 빠졌다. 4, 50대엔 소리를 회화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고, 60대 이후엔 전국의 아리랑을 찾아 그리다 보니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다. ‘아리랑은 내가 살아
자신의 꿈을 찾고 오직 그 하나를 위해 한 곳만을 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하지만 신민호는 단 번에 자신의 길을 찾았다.기타의 선율이 들리는 그 순간.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빠져버린 그 멜로디와 긴 여정을 떠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단 번에 반한 음악의 매력신민호 작곡가는 7살, 어릴 적부터 우리 소리를 배우며 첫 발을 디뎠다. 신민호 작곡가의 첫 음악은 판소리였다. 10대에 접어들 즈음, 그는 주변 형들이 기타를 치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기타를 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보니 어느새 대중가요의 매력에 푹
세계의 부호(富豪)들은 개인의 특성, 즉 자신의 유전학적 체질과 가족력, 체형, 운동력, 성격 등 모든 생물학적 데이타를 기반으로 자신의 상태를 분석한 후 운동법, 식사조절, 뷰티 등 본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생활 시스템을 개발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최상의 건강 상태를 구현하도록 도와주는 ‘개인 맞춤 토탈 라이프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 받고 있다.‘Dr. Yim's 체질 라이프스타일 연구소’의 임동구 소장 역시 ‘사상체질’에 기반을 둔 라이프 코칭 프로그램을 개발해 널리 알리고 있다. ‘개인 체질별 라이프 코칭’ 프로그램, 세
이동주 대표가 명동에 자리를 잡고 주얼리 세공일을 해온지도 벌써 40여년이다. 금과 은, 귀금속뿐만 아니라 보석을 가공해 반지와 목걸이를 만들고, 다양한 액세서리로 재탄생한다. 원석 그대로의 본연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자유자재로 가공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고 더 큰 가치를 창조해 내는 이동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생존’을 위한 노력, ‘생업(生業)’이 되다이동주 대표는 주얼리 세공을 시작하던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저에게 주얼리 세공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였지요. 10살 때 모친이 돌아가
박형진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우주가 담겨있다.그리고 그 안을 다시 들여다보면 만물의 형상이 보인다.얽매이지 않는 그의 자유로운 세계가 궁금하다. 점, 선, 면의 예술에 눈을 뜨다박형진 작가는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려 늘 생각을 많이 하고 자주 사색에 잠기곤 했다. 공부보다는 만화를 즐겨보았고, 본 것을 그리며 즐거움을 느꼈다. 이어 유명 화가들에 관심을 두며, 다양한 그림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그가 붓을 제대로 잡은 것은 중 2때였다. 국민대에 다니는 옆 방 형 친구의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
‘한강의 기적’으로 전 세계 이목을 주목시킬 만큼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최근 14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 속 한 장면처럼 한 때 우리 국민들은 때 묻은 얼굴을 한 채 미군들을 향해 ‘기브 미 어 초콜릿(Give me a chocolate)’을 외치며 가난 속에 배를 곯았지만, 반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일구어냈다. 이에 대한민국은 가난했던 개발도상국에서 아시아의 세 마리 용 중 하나로 당당히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황금이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정신은 소리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듯,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