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ㆍ저금리 시대

  • 입력 2012.12.24 16:49
  • 기자명 설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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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ㆍ저금리 시대
일본 장기 불황의 전철 따라가나


2008년 5%대에 정기예금에 가입했던 강모(59ㆍ남)씨는 올해 다시 은행을 찾았다. 작년에도 강모씨는 예금한 돈을 찾아 재투자하려 했으나 금리가 낮아 투자를 잠시 미뤘다. 하지만 금년 역시 예금상품 금리는 여전히 3%대에 불과했다. 우리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가 지속될 뿐 아니라 성장률 또한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고성장으로 달려온 한국 경제에 매우 드문 유례이다. 

저금리에도 투자ㆍ소비 심리 위축
과거 경제성장률이 4%대를 보이기만 해도 성장률이 너무 낮다고 불안해했었다. 현재는 3%를 기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2.4%로 예상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2.0%까지 전망하고 있다.
2008년 경제성장률은 2.3%, 2009년에는 0.3%, 2010년에는 6.2%, 2011년에는 3.6%였다. 지난 4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과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2.4%)를 더하면 2.96%가 나온다. 그야말로 저성장의 암울한 그림자가 한국 경제에 드리워지고 있다.
금리 역시 낮은 상태로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작년 12월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2.75%로 동결했다. 기준금리는 2011년 6월 3.25%를 유지하다가 13개월 만인 작년 7월 3.0%로 낮아졌다. 3달 후인 10월 또다시 25bp 하락한 2.75%로 내려가면서 2011년 2월(2.75%) 이후 20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
금융당국에서는 지금과 같은 저성장ㆍ저금리 현상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본다. 과거 외환위기, 카드사태 등에 따른 경제위기는 단기간 회복되었지만 이번에는 장기화될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보통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투자와 가계소비가 늘어나면서 성장률이 높아진다. 지금은 금리가 낮아도 투자심리와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선순환 고리가 끊어져버렸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현재 상황이 1990년대 일본식 장기불황과 유사하다며 위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년 동기대비 7.1% 하락했다. 저금리로 자본조달비용이 크게 낮아졌지만 기업들은 현금 확충에만 힘쓰고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대외적으로 세계경기의 불확실성, 대내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시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한다고 본다.
이와 같은 설비투자 감소는 기업의 생산 감소로 인한 고용위축, 개인소득 감소로 이어져 경기불황으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설비 노후화로 생산능력 저하를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키기도 한다.
소비심리 역시 일자리는 줄어들고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면서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민간소비 명목증가율은 2.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7.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민간소비는 외환위기나 카드사태와 같은 특별한 충격이 없는데다 가계의 실질소득이 조금 증가했음에도 저조한 증가율을 보인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앞으로도 민간소비는 가계부채로 이자부담이 늘어나면서 활발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금융회사 도산 사태 재현되나
저성장ㆍ저금리의 장기화는 국내 금융회사에게도 큰 위기로 다가온다. 1990년대 일본은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보험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1997년 업계 13위인 닛산생명 파산을 시작으로 도호생명, 다이하쿠생명, 도쿄생명 등 이름있는 보험사 9개가 줄줄이 도산했다.
이들 보험사는 1980년대 말부터 높은 수익성을 내세워 몸집을 불렸지만 저성장ㆍ저금리 기조가 장기화 되면서 역마진이 발생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 수준이 되자 보험사의 자산운용수익률은 급격히 떨어졌고 가입자에게는 높은 이율로 보상해주다 보니 대규모 손실이 났다.
국내 보험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23개 생명보험사의 금리 하락에 따른 운용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시중금리가 지금보다 1%p 떨어지면 보험사 운용수익률은 2012년 4.97%에서 2016년 2.92%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역시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문제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은행의 수익성 현황 및 은행과 당국의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9월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7조500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2조3000억 원)보다 39% 감소했다.
금융당국 역시 저성장ㆍ저금리로 인한 위기에 대해 경고했다. 금융감독원운 지난달 9일 18개 은행의 향후 경영환경을 예측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1%로 떨어지고, 금리가 1%포인트 하락하면 5년 뒤인 2017년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현재보다 83.5% 급락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금감원은 건전성 규제 강화에 고삐를 죄면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은행에 대해서는 부실채권 비율을 작년 연말까지 1.3%로 맞추라고 지시했고 배당을 자제해 내부 유보 자금을 더욱 늘리라고 지도했다. 보험 부문은 최근 공시이율과 책임준비금 비율을 똑같이 산정하도록 세칙을 개정하는 등 보험금 지급을 위한 보험사의 자금적립 기준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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