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걸작>노련한 거장의 장인정신이 빛나는 ‘마스터피스’

  • 입력 2012.11.01 09:49
  • 기자명 조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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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걸작]

노련한 거장의 장인정신이 빛나는 ‘마스터피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작가>(2009)


‘히치콕의 고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최고의 스릴러’, ‘스릴러 장르를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 지 잘 아는 사람의 작품’ 등 ‘가디언(Guardian)’,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같은 유수의 언론이 극찬한 <유령작가>. 원작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해리스와 스릴러의 거장 로만 폴란스키의 조합이라는 외적인 위용만으로도 <유령작가>는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이다. 
전 영국수상의 자서전에 담긴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치는 정통 스릴러인 <유령작가>는 해외에서 개봉되자마자 대중성과 영화적 완성도를 겸비한 작품으로 평단과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제6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표작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손색없는 웰메이드 명품 스릴러


노련한 연출력을 빼면 논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유령작가>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연출력에 빚지고 있다.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과 물 흐르듯 진행되는 긴장감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최소의 쇼트와 컷으로 절제된 연출과 편집으로 무장한 <유령작가>는 세트와 미장센 역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존 스릴러 영화들의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는 감정의 깊이나 서스펜스를 위한 고조음 등을 극도로 배제한 이 영화에서, 권력의 음험한 음모, 테러에 대한 공포와 반전(反戰)세력 사이의 불편한 동거, 테러와의 전쟁을 이끈 전 수상과 부인, 정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적절하고 디테일한 시퀀스의 배치는 상당히 유려하며 압도적인 매력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대필작가’를 뜻하는 유령작가가 자서전을 써 가는 과정에서 살해된 전임자의 발자취를 통해 그의 사망 사건, 전직 수상 부부와 CIA의 커넥션, 영국과 미국 사이에 비밀리에 진행된 음모를 둘러싼 베일을 조금씩 벗겨가는 과정을 고전적으로 풀어간 정통 스릴러로서 <유령작가>가 보여주는 사건은 작금의 현실에서 이미 경험했던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을 준다.
<유령작가>는 자칫 무미건조하게 흐르던 초반의 흐름은 중반 이후 격랑을 만들어내며 마지막 장면을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한다. 전임자의 행적을 되밟아나가는 주인공 고스트(이완 맥그리거)의 핸들이 좌우로 꺾일 때마다 그동안 표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서스펜스는 봇물 터지듯 강렬하게 터진다.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하게 흐르던 분위기를 일거에 잠재워버리는 마지막 시퀀스는, 후반부에야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유려한 음악과 함께 <유령작가>를 완벽한 마스터피스로 만든다.

논란의 중심에서 걸작을 꿈꾸다


148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대부분 <유령작가>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이다. 정확한 도시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미국의 서부지역의 한 해안 도시로 보이는 이 공간은, 그러나 늘 비가 오거나 축축한 잿빛의 궂은 날씨로 철저히 영국적이다. 미국에서 체험하는 영국의 날씨는, 마치 유령작가의 시선으로 양국 사이의 비정한 정치적 음모를 뒤쫓는 이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유령작가>는 이미 제작 전부터 커다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원작인 ‘The Ghost’가 출판되자마자 작중인물인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이 영국의 전 수상인 토니 블레어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라는 의혹이 바로 그 것. 토니 블레어와 그의 아내 셰리 블레어의 관계가 영화 속 아담 랭과 루스 랭(올리비아 윌리엄스) 커플과 유사하며 더욱이 토니 블레어 재임 시의 일련의 정치상황과 아담 랭이 처한 정치상황이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선포’에 대한 영국의 전폭적인 지지, 이라크 관련 자료조작 사건, 런던지하철 연쇄폭발 사건 등 현실에서의 사건이 영화 속에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한편,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유령작가>의 후반 작업 중 30년 전의 스캔들로 체포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가진 혐의였는데 최근에는 또 다른 10대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악마의 씨><차이나타운><피아니스트> 등 영화사상 길이 남을 다수의 명작들을 연출한 거장으로 현재 스위스의 한 고립된 별장에 감금된 상태인 로만 폴란스키는, 영화에서 황폐하고 적막한 섬에 머무는 아담 랭과 교묘하게 동일시된다.    
<유령작가>는 촘촘하게 짜인 플롯을 기반으로 관객을 윽박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슨하게 풀어놓지도 않은 채 최고의 정점을 향해 현란한 달음질을 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유령작가>만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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