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지킴을 몸소 실천하는 선비

  • 입력 2012.09.24 15:33
  • 기자명 이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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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지킴을 몸소 실천하는 선비
국어고전문화원 권오춘 이사장

불과 50년 만에 우리 전통문화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처절히 부서지는 광경을 안타까워한 40대의 권오춘 이사장은 새로운 정신적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증권가 지점장을 역임하며 한창 높은 주가를 달리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자신의 그릇이 넘친다고 생각한 그는 속세의 욕심을 버리고 인생 후반기를 우리문화 지킴이로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경북 안동 권씨 부정공파 35대손으로 출생한 권오춘 이사장은 초등학교를 등교하기 이전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을 배우고 어른들의 언행과 행동을 따라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상들의 역사에 대해 들으며 제사를 따라 다녔지만 전통문화를 지켜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어린 그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 보니 자신의 뿌리인 조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느낄 수 있다고 전한 그는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면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쓰며 최대한 조상들께 예의를 갖추고 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가 우리문화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안동양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우리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진 결과 그런 호칭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우리문화에 눈길을 돌렸다”고 전한다.
그는 극도의 탐욕이 넘치는 증권계의 치열한 삶에서 최고 전성기인 45살에 퇴직을 하고 평소 관심이 많던 불교, 유교, 도교의 경전과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 등을 공부하기 위해 2000년도에 고향을 찾는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전통고전을 정독하면서 더욱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우리의 학문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그동안 즐기던 술, 담배, 바둑, 골프를 끊었으며 항상 맑은 정신으로 선조들을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전통문화’는 선조들의 소중한 유산


현재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국어고전문화원’의 설립 취지에 대해 그는 “우리의 전통기록문화는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한문을 접하지 않아 조상들이 일궈놓은 뿌리 깊은 전통문화와 단절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시키기 위해서는 한문도 한글처럼 국어로 교육하고 사용해야 한다. 한자는 원래 한족의 문자가 아니라 황하문명을 이룬 동이족의 문자이므로 이 또한 우리의 국어라 할 수 있기에 우리의  고전문화를 공부하고 사용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자 하는 취지에 국어고전문화원을 설립했다”고 전했다.
그 후 그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성백효 교수를 만나 이루고자하는 뜻이 통해 ‘해동경사연구소’를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고있다.
‘해동’은 우리나라를 말하고, ‘경사’는 경서와 사서를 칭한다. 해동경사연구소에는 경서와 사서를 연구, 번역하는 사업을 벌이는 동시에 이를 번역할 수 있는 번역자를 양성하고 있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그는 전통문화를 쉽게 접해보지 못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전통예절교육과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전통문화를 현대화로 접목시킨 의례준칙의 제정을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사)전통문화연구회’의 이사로도 역임중이다. (사)전통문화연구회는 전통시대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이끌어 갔던 우리 선인들의 슬기와 경험의 집적인 각종 문헌을 조사, 정리, 평가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정신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각종 동양고전의 번역과 고전강좌 개설 및 이에 수반되는 연구지의 발간, 강연회 등의 개최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한옥’은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 


유년 시절 항상 한복을 입고 계셨던 아버지를 동경했던 그는 전통문화지킴이가 되려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복을 고집한다. 
또한 그는 한복과 더불어 한옥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한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사당’에 한옥 한 채 없는 현실이안타까워 신흥수 대목장과 함께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약100평 규모의 ‘국회한옥’ 준공에 이바지하였다.
그 후 국회한옥은 ‘2011서울G20국회의장회의’의 회의장으로 활용되며 한옥의 건축미를 세계 인사들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그도 현재 ‘초은당’으로 명한 한옥에 살고 있으며 ‘봉정사’, ‘극락전’ 등 국보급 문화재를 생생히 복원해낸 인간문화재 74호 ‘최기영’ 대목장이 지은 한옥으로 유명하다. 또한 칠장 중요무형문화재 113호 보유자인 ‘정수화’씨가 진흙보다 원적외선이 수십 배나 발생하는 옻칠을 마룻바닥에 아홉 번, 기둥엔 다섯 번, 이외에도 벽, 문, 천장, 외벽까지 옻칠을 하여 현대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의 건강을 위한 한옥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초은당에선 매년 수차례 국악인, 지식인, 학자, 외교사절 부인들을 초청하여 전통공연과 연찬회를 열고 송편 빚기, 한복 입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체험을 통해 자연스러운 대중과의 만남을 펼치고있다.
또한 그는 어떤 장소를 가더라도 사람들에게 우리춤의 우수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명인 ‘박경랑’ 선생한테 선비춤을 배웠고 서양춤과 다른 절제미와 비움의 문화를 중시하던 조상들의 정신이 넘치는 선비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외에 거문고와 서예를 배우며 우리 문화 지킴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권오춘 이사장을 보며 밝은 미래의 우리문화를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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