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day 인터뷰] 안경현 서울대 교수 '대한민국의 제조업, 유변학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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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울대 안경현 교수
사진 = 서울대 안경현 교수

[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 학문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식백과사전에는 한자 표현 그대로 ‘배우고 물음’으로써 진정한 앎에 접근한다는 의미로 적혀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접하는 학문은 단순히 배우고 물음으로써 진정한 앎에 접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학문을 이용하여 과학과 기술의 문명을 고도로 발전시켰고 현재는 이를 이용하여 정치, 경제, 예술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은 물론 국가까지 나서 학문에 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모든 기술 문명의 본질이 되는 학문을 진실로 탐구한 개인이나 집단 국가는 현재 선진의 대열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떤가? 선진국의 과학 기술 문명을 따라 하며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본질이 되는 학문 투자 즉 원천 기술 개발과 부가가치생산이 가능한 기술력을 고취시키는데 소홀하며 이른 바 '속 빈 강정'으로 현재 저성장 기조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 = 고분자·나노 융합소재 가공기술센터 기술워크샵
사진 = 고분자·나노 융합소재 가공기술센터 기술워크샵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원천 제조업이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지난 40년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에 ‘제조업’이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는 전후 혼란의 시기를 거쳐, 소액 자본으로 경공업 등을 지나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날로 발전했다. 그리고 현재 국내 제품들은 각 각 삼성과 현대, LG로 대표되어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있는 것은 물론 높은 제품성과 기술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업의 실태를 조금만 파헤쳐보면 국제경쟁력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제조업은 그 근간인 뿌리산업의 기술력이 매우 낮다. 사실상 우리나라 제조업 인프라는 선진 대열에 들어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제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인 핵심기술만 보자면 언제까지고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본래 제조업은 원천기술을 뿌리에 두고 성장해야 굵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업체와 국가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품질과 생산성보다 제품 구성을 중요시 한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기술보다 눈에 보이는 장비와 시설을 확보하는 것에 급급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한국의 제조 산업 기술 발전의 한계점으로 이어졌다.
선진국들은 충분한 제조업 기반을 두고 탈산업화를 거쳐 서비스업의 시대로 도래했다. 우리도 이와 같아지려면 지금과 같이 완제품 위주의 수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특정 재료를 개발하기보단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미 제품 가격이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된 상황에서, 최근엔 품질마저 따라잡히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추월당한 분야도 상당하다. 
앞으로 국내 제조업 분야는 재료를 수입해서 가공하는 '양적 성장'단계를 벗어나 고부가 가치 제품 위주의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사진 = 서울대 안경현 교수
사진 = 서울대 안경현 교수

제조업은 유변학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핵심기술 성장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학문인 유변학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기술력 고취를 위한 학문투자 없이는 진정한 선진대열을 이룰 수 없다.
그럼 유변학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변학을 두고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쉽게 대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친숙하지 않을 뿐 유변학은 이미 실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제조품에 적용되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제품은 우선 원재료를 액화시킨 다음 틀에 맞추어 고체화시키는 등의 변형을 통해 일정한 형태를 가지게 함으로써 생성된다. 유변학은 이러한 재료를 변형시켜 일정한 형태로 가공시킬 때 일어나는 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소재들은 주위 환경에 따라 액체의 성질과 고체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즉 유변학을 이해하는 것이 가공 공정 기술을 아는 것이 되고, 곧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유변학의 개념 없이도 생산 공정을 해석하고 최적화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금속재료를 주로 사용할 시대인 19세기 시절로 현재와 같이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재료를 사용하게 될 때는 유변학과 점탄성 물질에 대한 역학적 계산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자동차를 만들 때도 가장 우선시 되는 작업 중 하나가 플라스틱 원료를 액화시킨 다음 틀에 맞추어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제품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이러한 연구는 더욱 중요하게 된다.
 

유변학에 대한 한국 수준, 어느 정도에 머물러있나..
한국의 유변학은 1970년대 서울대 화학공학과로 최초 도입되었으며,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 유변학을 전공한 인력들이 LG화학이나 제일모직과 같은 화학회사로 진출하면서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에 유변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본 글에 자문 및 인터뷰로 도움을 준 (現) 안경현 서울대 교수 또한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안 교수는 현재 여러 행사와 강연 장소에서 국내 가공기술 혁신을 위한 유변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인식개선에 힘쓰고 있다.
안 교수는 유변학 관련 국내 가공기술의 중요성과 현 실태를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안경현 교수 - “제조업이 국가의 기반 산업인 우리나라의 화학 산업구조는 과거 플라스틱 위주에서 최근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와 같은 전자 소자와 이차전지, 태양전지와 같은 에너지 소자의 산업구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전자 산업은 워낙 단기간에 성장하여 장기간의 투자와 연구가 필요한 공정 기술을 축적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그 결과 공정 기술을 보유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전자 및 에너지 소재가 액상 재료이며 액상 재료의 가공 공정은 지금까지 플라스틱 산업에 적용되어 오던 유변학적 개념을 확장,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보다 더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태계와는 반대된 한국 대학과 기업의 정책입니다. 국가 산업과 관계없는 대학의 논문 위주 정책 및 단기간의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기업의 조급한 정책은 산학협력 축소 및 차단으로 이어져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부족을 불러왔고, 기존 인력의 이탈로 인한 인력 공급망이 붕괴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겼습니다."

사진 = 안경현 서울대 교수
사진 = 안경현 서울대 교수

대한민국 플라스틱 가공기술을 책임진다. ‘고분자 · 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
이러한 국내 제조업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안 교수는 끊임없이 정부에 가공기술의 선진화와 제조산업 경쟁력을 고취시킬 수 있는 관련 센터 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1년 전 국내에서는 최초로 가공기술 관련분야에 정부가 지원하는 고분자·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가 설립되었다. 현재 고분자·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반 구축 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내 가공기술의 선진화를 책임지고 있다.
안 센터장은 “센터를 설립하고자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반 구축 사업으로 선정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플라스틱 가공 산업이 국내 경제의 밑거름이 되는 뿌리산업이란 점과 중국의 급속한 제조업 성장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약화 위기감 속에서 가공기술과 유변학의 투자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해 줄 전문가 집단과 관련 센터의 설립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센터설립을) 포기할 수 없었죠.”라고 전했다. 이어 “센터 설립 추진이 국내 기술발전을 고취시킨다는 명분에 여러 선배 학자님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함께 당시 담당자였던 이강진 사무관과 김현철 과장 등 정부관계자 또한 센터 설립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주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현재 ‘고분자·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는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30명의 교수진과 플라스틱 가공에 필요한 압출, 사출기를 구축해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시설망 구축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장비 구성을 통해 국내 플라스틱 가공 기술의 개발을 촉진하고 기업이 겪고 있는 기술 애로사항을 함께 해결해나가기 위해 산학 네트워크 구축 및 인력양성 활동, 기술 지원 체계까지 구축하고 있다.
 

‘고분자 · 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의 성과 사례와 존재 가치
이와 같이 센터는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많은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도움을 주며 큰 성과를 얻고 있다.
고분자나노 융합소재 가공기술센터 2014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수많은 기술 제공 및 성과 사례가 기록되어있지만 그중에서도 ‘흥보테크’ 와 ‘명일폼테크’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산업용 유화기 전문 업체인 흥보테크는 센터의 도움으로 40억 매출 증대를 기록했다.
2013년 봄, 센터와 처음 인연을 맺은 흥보테크는 당시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에 장비를 납품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중소기업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믹서의 특성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며, 제품의 우수성을 제시할 능력이 부족했다. 이에 센터는 화장품 시장을 대상으로 각종 화장품들의 유변학적 특성들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서로 다른 믹서별 제품 특성을 비교하여 믹서의 기술적 특징을 간접적으로 비교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흥보테크는 이 분석 자료를 통해 관련 기업에 납품할 수 있게 되었고 커다란 매출 증대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명일폼테크’도 이와 마찬가지다. XPS 폼 생산 업체인 명일폼테크는 센터로부터 설계 기술 지원을 통해 공장이전 조기안정화를 꾀했고 그 결과 150억 원의 추가 매출을 기록하고, 국내 매출 3위에서 1위로 올라서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국내 많은 기업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높은 기회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또한 기술 관련 교육에 관해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센터는 이러한 기업들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안경현 센터장은 “두 사례에서 보듯 센터는 기술 지원 활동 및 교육과 신기술동향 등의 정보제공을 통해 해당기업에 도움을 주고, 많은 기업이 가볍게 여기는 무형기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모색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지만 기업들이 기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아쉽습니다.”라고 전하며 보다 많은 기업들이 센터와의 교류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랐다.
앞으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경쟁력이 필수다. 그리고 그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센터가 설립된 지 1년에 불과하여 자립 기반이 충분치 않고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고분자·나노융합소재가공기술센터가 해답이 되 줄 수 있는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는 SKC와 사빅코리아, LG전자 등 대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갖는 등 활발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본 센터는 앞으로 고분자·나노융합소재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융합소재 분야 국가경쟁력 강화, 고기능·고성능 융합소재 성능 고도화를 목표에 두고 고분자·나노 융합소재 가공기술의 핵심거점 구축을 위해 힘쓸 예정이다.
무엇보다 본 센터의 존재가치의 중요성을 말하자면 이제는 국내 제조업 분야도 원천기술 개발을 통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센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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