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던져진 빛의 아름다움을 그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항상 그림에 대해, 색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남들과 똑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온 신경을 저의 작업 속에만 집중합니다. 같은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저는 그런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항상 새로움을 창조해야 합니다. 작가는 예술가이고 예술가란 곧 창작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최광선 화백(본지 기자와 인터뷰 中)
 
끊임없이 독자적 화풍을 구축하는 열정의 화가
최광선 화백은 ‘예술가란 항상 새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주의 정신을 통해 매번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의 장인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인의 본분은 예술을 통해 자기만의 언어와 어법, 사투리와 자화상을 찾는 자기완성이다. 60년이라는 기나긴 화업을 쌓아오면서 최광선 화백은 사실주의 아카데미즘에서 출발하여 리얼리즘, 인상주의 풍, 그리고 최근의 신자연주의 화풍 등 표현 방법상의 예술양식의 모든 영역을 샅샅이 섭렵하고 주파 했다. 이른바 자기완성을 위해 변신과 모색 등 체험과 자유의 미학을 모두 탐색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림을 갓 시작하게 된 60년대, 당시 최 화백은 사실과 추상을 함께 작업하던 당찬 신인이었다. 최 화백은 이 당시에 대해 ‘회화가 지닌 실험의 중요성에 눈뜨게 되었고 자연과 인간의 함수관계를 발견하게 되는 시기’라고 회상한다. 70년대에 최 화백은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과 정물 등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풍경과 정물속에서 회화라는 자신만의 표현양식을 정리해 보기 위해 여러 개인전과 유학생활 등을 하며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파 화풍에도 집중적인 실험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80년대에 들어 최 화백은 지방의 산천과 들과 숲, 계곡 등을 찾아다니며 자연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본질을 느끼는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자연과 인간의 함수관계 즉, 자연주의를 통하여 인간주의를 회복하려고 심혈을 쏟았던 적극적인 사고와 표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화단의 새로운 개혁바람으로 미술운동, 미술행정으로 화단 각 단체에서 뜻있는 동료들과 화단의 발전을 위하여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회화제와 한국수채협회 고문 등 크고 작은 미술 단체를 이끌어가며 활동하던 시기였다. 90년대에 들어 최 화백은 심상적 화풍으로 변모를 시도, 자연을 대상으로 그 자연의 외형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적 화가 제백석이 ‘10년간 나무를 심으면 숲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숲을 그리는 방법은 일생을 다 바쳐도 알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듯 최 화백은 숲의 특정 형식과 그 속에 내재된 나무의 생명력과 형상을 찾는데 50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 최 화백은 자신의 표현 감정과 조형 감각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한 색채대비와 불협화음 속의 난해한 색채 배영을 해봄으로 새로운 시작의 표현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 그 자신 스스로 말하길 “이제 70의 연륜 속에 색채와 형태의 새로운 원형을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창문이 열리고 있는 듯 하다”고 밝히고 있다.

 
“예술가란 늘 새로워야 한다”
봄의 기운이 싹트고 있던 3월의 어느 오후, 본 기자는 신사동에 위치한 최광선 화백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아직 제법 쌀쌀한 꽃샘추위로 완연한 봄이라 하기는 이렀지만 작업실에 비치되어 있는 최 화백의 장미꽃 그림들은 마치 이곳에만 봄이 먼저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흰 장미에서부터 붉은 장미, 황색 장미 등 지난 20여 년 동안 장미를 그려왔다는 최 화백은 신선하고 밝은, 그러면서 정감이 가는 장미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가끔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풍경 속에 장미를 접목시켜 자신만의 장미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또한 일주일에 3번 정도는 현장 스케치를 위해 직접 야외로 나간다. 일반적인 풍경들, 산, 구름, 들녘 등 야외 풍경들은 모두 밖에서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화실에서 정물을 그린다고 한다. 기자가 찾아간 그날 역시 최 화백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풍기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은은한 물감냄새와 장미그림이 가득한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그만의 아늑한 휴식공간에서 최 화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그간 다양한 창작활동을 해오셨는데요, 특히 화백님 하면 장미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백님에게 있어서 장미는 어떤 의미의 장미
인가요?

많이들 묻는 질문입니다만(웃음), 우선 장미라고 하면 꽃의 대명사잖아요. 꽃이라 하면 아름다워야 하고 향기가 있어야 하는데 장미는 이 모든 것을 훌륭히 충족시킵니다. 페르시아 전설에 의하면 원래 장미는 모두 흰색이었어요. 그런데 한 여인을 사랑하던 남자가 매일같이 장미를 꺾어 여인에게 바쳤는데 그러다 가시에 찔려 죽었고 그때 흘린 피로 물들여 진 것이 오늘날의 붉은 장미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도 장미는 열정과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또한 사랑의 대명사로 통하잖아요. 그 색깔이나 생김새에서 특별한 열정이 묻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 사랑을 장미의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서 표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빨간 장미를 선물하듯이 말이에요.
 

Q.기나긴 화업을 이어오고 있는 동안 전업작가로서 수천 개가 넘는 작품을 그리셨는데,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색으로 표현해야 하구요.......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항상 그림에 대해, 색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남들과 똑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온 신경을 저의 작업 속에만 집중합니다. 같은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저는 그런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항상 새로워야 합니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니까요. 늘 새로움과 또 그러한 새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무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나 또 자연도 아름다워야 하듯이 작품 속에도 아름다운 언어가 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초기에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작품을 그렸습니다만 최근에는 구성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소재를 시험하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유화와 수채화를 동시에 작업하기란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화는 기름, 수채화는 물인데 기본은 사실 같아요. 그런데 터치가 다릅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비올라나 첼로를 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현악기 던 관악기 던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훌륭한 작곡가가 되듯이 그림도 영역 가리지 않고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수채화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수채화는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표현하자면 수채화는 시와 수필, 유화는 장편 또는 단편 소설이죠. 물론 소설을 쓰는 사람이 수필을 쓸 수는 있지만 이렇게 다른 장르를 같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여기 있는 도자기도 제가 한 겁니다.
 
Q. 도자기와 장미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이색적인데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되셨습니까?
고전과 현대를 만나게 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죠. 현대 미술계에선 모든 것이 언밸런스한 것 역시 잘 어울리잖아요. 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자기그릇에도 장미를 꽂아보고 아주 고전적인 도자기에도 흰 장미를 꽂아보고 해서 그 뒤에 풍경이나 정물과 꽃이 어우러지게끔 맞춰나가죠. 그랬을 때 오히려 보는 사람들은 신선한 느낌을 받으니까 오히려 작가는 또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죠.

Q. 전업작가로서, 미술계의 대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림은 취미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념을 해야 되요. 저는 많은 양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농사꾼은 눈뜨면 낫과 호미를 들고 하루 종일 밭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365일 내내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자신이 만족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것이죠. 화가는 예술가입니다. 자신의 예술관을 가지고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죠. 저는 전업작가로서 이 집도 사고 생활도 하고 제 아이들 교육도 다 시켰습니다. 미술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믿고 끈기를 가지고 자신의 재능의 가치를 높이면 되는 것입니다.
 
올해로 77세를 맞이하는 최광선 화백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는 4월 30일 갤러리 미술세계 개관기념 초대전을 3, 4, 5층 전관에서 2주간 개최할 계획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과 그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간의 노력들을 모두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최 화백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늘 작품만을 구상하고 한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총 3번의 작업을 거쳐 그림의 깊이나 독특한 형태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다. 작품에만 온 집중을 다한다는 그는 미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젊은 패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진정한 화가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