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준배의 굽이굽이 돌아든 인생, 작은 거인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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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이여주 기자] = 자녀 인생에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당신은 아버지
누군가를 표현하고 표출해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자라고 지나온 환경을 무시 할 수는 없는 법이요 그가 거쳐 가는 인생 항로를 살펴 볼 일이니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며 공부하는 용곳마을의 천재라고 불리던 박준배 씨 역시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지는 잣대,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통념과 해답 또한 일반적인 수순과 정도를 비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도 김제 시민의 일원으로서 칭송을 받고 누구에게나 본받고 싶은 사람의 일 순위 대명사가 되었음에는 성실과 최선, 한결같음으로 살아온 그의 노력이 모든 사람에게 물이 스며들 듯 스며들었음으로 인한 결과요 함께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작용되어진 소중한 인연의 끈들이 그의 주변에 산재해 있음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고향은 어떠한 곳이며 그에게 있어 가족이란 어떤 의미 인지를 물었다.
“저에게 용곳마을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고향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말마다 고향집에 찾아들고 겨울이면 늘 보일러를 가동시키며 어머님께서 살아계시던 생전과 똑 같이 온기를 유지하면서 어머님의 향과 체취를 기억해냅니다. 또 넓지 않은 텃밭을 가꾸면서 어릴 적에 뛰어 놀던 추억에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 울컥 울컥 할 때도 있습니다. 문득문득 눈에 보이는 허연 귀밑머리를 보면서 지난 시절들이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쨌든 텃밭을 일구며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곤 하던 그 시절이 참 좋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텃밭은 제게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그렇게 작은 정성을 들여 친환경농법으로 가꾼 농작물을 또 마을 어른들과 함께 나눠 먹다보면 저절로 대화를 하면서 소통의 시간을 갖게 되고 그로부터 한걸음 더 성장하는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른들로부터 사랑받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기쁨이 배가되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정감을 주고받는 텃밭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제가 좀 더 모든 일에 열정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곤 합니다. 또 그분들의 전폭적인 아낌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가족은 저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특히 제 형제자매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이끌어줌으로 인해 각자 제 위치에서 빛나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제 식구와 아이들 덕분에 늘상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육십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즈음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고향 용곳마을은 자그마하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인정이 넘침은 물론 사소한 일상에서도 서로를 위하고 훈훈한 마음을 나누며 이웃사촌 모두를 내 피붙이 인양 품어주면서 등 두들겨 주기는 다반사요 서로 간에 이해와 배려를 해가면서 정을 나누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할 만큼 끈끈함이 넘쳐나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살이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인성은 특별히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저절로 익숙해지고 몸에 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니 타고난 품성 위에 덧 입혀지는 마을 인심이 인간 박준배의 기틀을 다지는 초석이 되었다.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식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모님의 내리사랑과 형제간의 우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박준배씨 가족의 끈끈한 정 또한 이미 입소문으로 무성할 지경이니 무시할 수는 없겠다. 그렇게 알뜰살뜰 인정을 나눠주던 이웃과 가족들의 격려에 힘입어 오늘의 그가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한때 작은 마을을 들썩이던 전설 같은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게으른 천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앞에는 따를 장사가 없다고 하였듯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열공의 자세를 놓지 않았던 그가 김제중학교에서 전주고등학교에 지원을 하여 720명 중에서 7등으로 입학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김제중학교를 빛낸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면서 그의 이름 석 자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는 것. 후에도 여전히 노력하는 천재로 평판이 자자한 박준배씨가 연이 닿지 않아 서울대학 입시에 실패를 하고 가정 여건상 지방직 9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에 첫발을 딛게 되면서 부터는 그의 명석한 두뇌와 식지 않는 열정이 어울린 탁월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후로 다양한 분야를 거치며 성장 경제와 창조 혁신을 위한 전문인으로서 혹은 직책에 알맞는 35년간의 공직생활은 정의와 청렴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업무추진력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다.
그런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고루하지만 진실의 가치를 지녔다.
정직, 청렴, 성실, 끈기, 열정, 소통, 노력, 존경, 사랑....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 앞에 붙이는 의미부여.
박준배 씨에게 물었다.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무슨 이유인지를.
“제 어릴 적 꿈은 황희 정승처럼 청렴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초가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최장수 재상으로서 민심을 살피고 직언하기를 서슴치 않으며 백성의 어려움을 간과하지 않았던 그의 길을 따르고 싶다는 열망이 저를 이 나이에도 열성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이끈 또 하나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황희 정승만큼은 아니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그로부터 비롯된 청렴과 정직, 성실의 가치를 끝까지 놓지는 않고 싶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제 아이들에게도 꼭 전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딸이자 뮤지컬 배우인 박예소 양 역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저희 아버지는 제 인생의 작은 거인이세요. 어린 시절부터 황희 정승 이야기를 통해 선한 가르침을 주셨어요. 그 덕분에 저 역시 진실된 태도와 일관된 모습으로 저의 길을 가고자 하며 당장에는 손해인 듯해도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얼마나 제게 큰 힘이 될지 알거든요. 또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자신의 일상을 하시면서도 다섯 시에는 저희들에게도 공부를 하라고 깨우시는데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졸립기도 하였지만 정작 당신은 새벽 세 시부터 일어나셔서 언어공부와 업무준비를 성실하고 끈기 있게 해내시는 것을 알고부터는 저희들도 불평 없이 새벽 공부에 동참을 하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그런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꾸준히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버지는 성실, 끈기, 정직을 말로만 이야기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 그 자체로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시니 존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 거죠.”
새벽 세 시부터 일하는 실천자 박준배
그의 일상 시작은 새벽 세시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의 의미는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찾는다와 동의어가 되겠다. 누구보다도 이르게 시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치열하고도 바쁘게 살아내는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국선도.
학문과 지식에서는 만인의 사표가 되고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는 세상의 모범이 되는 박준배씨의 근원적인 힘은 바쁜 일정 중에도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2001년부터 시작을 하게 된 국선도에 기인을 한다는 말인데 그가 국선도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제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국선도로부터 다져진 건강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업무 중에 받는 스트레스 역시 국선도로 이겨 낼 수 있었는데 동의보감으로부터 비롯된 국선도의 정기신을 양생하는 국선도 단전호흡법이 저를 지탱해주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국선도로 인해 우주의 기운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마다 더욱 더 국선도에 정진을 하게 되었고 지역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국선도를 전파하고자 하는 열망도 갖게 되어 현재는 덕당 국선도 전주 지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선도를 하고 나면 저절로 기운이 상승하게 되고 하루가 충만해짐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국선도를 하고 나서 필요한 영어 공부와 업무관련 자료를 보게 되면 더욱 더 집중력이 향상되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파악하게 되어 판단 능력 역시 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상생활에 국선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첫 신 새벽에 일어나 국선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르지 않을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한결같이 칭송을 하는 이유는 국선도가 발원지가 되었다.그로 인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계절이 변하면 옷을 갈아입듯이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 패턴이 달라짐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여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함은 물론 누구보다 다른 시야나 혜안을 갖게 된 것 역시 새벽 세 시부터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 깨치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런 그이기에 누구보다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터.
소통 네트워크에 앞장 선 리더
술은 못하지만 상하좌우로 소통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뛰어난 조직력을 가진 친구, 통칭적으로 그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에게 필수인 영어와 노트북 그리고 전주고 동기생과 고향 김제는 그가 살아오는 동안 늘 함께 하는 동반자요 그의 앞길에 디딤돌이 되어준 그리하여 그가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단합이라는 말로 소통을 할 수 있었던 보루이기도 하다.
그가 공직 생활을 하던 중 짧은 기간에 세 번이나 인연을 맺었다는 정찬용씨의 말을 빌린다.
“박준배씨는 부드럽고 창조적이며 감성적인 리더십과 솔선수범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입니다. 상하간의 거침없는 소통은 좋은 아이디어로 표출되어 능률성을 증대시키고 각계각층의 폭넓은 인맥, 외국인 투자유치 영문 브리핑, 남보다 한 발 앞선 행동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가끔은 상충된 의견도 있었지만 지혜와 슬기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덕목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항상 공부하고 의리가 있으며 강직하다를 또 다른 그의 매력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단계의 공부를 마무리 짓고 나면 그 다음 단계 공부를 완성시키고 싶어하는 열망, 그 열망이 그를 발전시키고 해박한 지식을 갖게 하며 사명의식을 고취시키고 함양시켜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바탕이 되어 소통의 네트워크를 완성 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배려와 넘치는 사랑으로 봉사를
천부적인 탐구정신과 성실성 그리고 과거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공직 생활 내내 작은 봉사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비록 퇴직을 하였어도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공직 생활을 하는 내내 많은 부분에서 산파 역할을 해내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하였노라고 말하는 박준배씨는 누구라도 불러만 준다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여전히 지렛대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이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 기회라고도 한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봉사라고 이름 지워진 일에는 언제나 동참할 기회를 가졌고 앞으로도 갖겠지만 그동안 그가 유지해온 전반부의 삶을 돌아보면서 인생 후반부를 좀 더 나은 혹은 살아온 가치를 추락시키지 않으며 유지 지탱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법의 테두리에서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싶다는 그는 한때 열정의 젊음으로 걸어온 길을 노회의 길로서 다시 한 번 재도약하기를 희망하는 중이다.
“ 굳이 봉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게 봉사의 정의를 다르게도 해석할 기회를 주신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누군가가 올바른 길을 걸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이 세상에 저렇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구나 인정을 하고 그의 길을 대를 이어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이 국민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준배씨 인생의 지향점이 보이는 듯하다. 누군가는 정의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자 그것을 본받아 후대가 함께 걸어오며 동행을 자처하는 것.
그가 상경하애 하고 남다른 열정을 바쳐 실천하며 살아온 날들, 지식 함양에 솔선수범하고 배려의 마음으로 지켜온 세월, 지역발전에 기여하고자 애쓰며 지나온 시간들, 혁신과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온 나날들이 집념과 추진력으로 무장된 사나이라는 명명아래 존재한다.
말하자면 박준배 이름 석 자 앞에 당당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함으로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매진하면서 입지적인 인물로 거듭나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하니 그가 성실성으로 일군 행정 경험과 추진력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활용되어지기 보다는 좀 더 너른 세상을 위해 공헌하는 기회로 전환되면 좋을 듯하다. 

참고: 박준배 프로필
김제동초등학교 15회, 김제중학교23회, 전주고등학교52회 졸업.

1976년 12월5일-1984년 1월15일 7급 공채 임용. 군 입대.
1984년 1월16일-1999년 12월31일 전라북도 기획관리실 및 새만금 개발 특별법 초안 작성.
1987년 2월 한국통신대학 행정학과 학사 졸업.
1994년 8월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졸업.
2000년 1월2일 - 2008년 2월2일 전라북도 산업정책과장 및 투자통상과장, 경제정책관.
2002년 2월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박사 졸업.
2003년 3월 - 2007년 2월 우석대학교 겸임교수.
2006년 1월2일 - 2011년 9월20일 세계 물류박람회조직위사무총장 및 새만금신경제 자유구역청산업본부장.
2011년 3월 - 2012년 2월 전주대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11년 9월20일 - 2013년 2월 전북발전연구원 파견근무
2013년 2월 - 현재 정의와 경제도약 포럼 대표.
저서 : 주인의 길 ( 정의와 도덕의 영도자를 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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