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 제6회 벳푸한일국제영화제 '토크쇼' 감독 이명세, 한재림 배우 조정석,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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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한일 국제영화제 왼쪽부터 조정석(배우), 한재림(감독), 엄지원(배우), 이명세(감독)>
<제6회 한일 국제영화제 왼쪽부터 조정석(배우), 한재림(감독), 엄지원(배우), 이명세(감독)>

  [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  2014년 한일차세대교류영화제의 주인공은 ‘관상’과 ‘소원’
‘벳푸한일국제영화제’가 지난 3월28일 6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올해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이명세감독과 2013년 최고의 화제작 ‘관상’의 한재림 감독 그리고 관상과 소원으로 각각 한국영화평론가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조정석’과 ‘엄지원’이 각각 위원장과 게스트로 초청되었다. 이에 대해 ‘피플투데이’가 단독으로 참가하여 이 영화제를 만든 오이타현예술단기대학 교수 ‘시모카와 마사하루’와 영화제의 주인공인 관상의 감독‘한재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 일문제 단순하지 않지만, 영화를 매개체로 상호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양국만을 위한 영화제를 만든 이가 바로 ‘시모카와 마사하루’라고 하는 일본인 교수다. 그의 라이프워크는 ‘한국과 일본의 상호이해’다. 그는 이를 위해 영화를 매개체로 한 ‘한일차세대교류영화제’를 세웠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학생을 중심으로 단편영화의 합동제작과 함께 젊은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미래를 향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발전하였다.

‘시모카와 마사하루’는 원래 마이니치신문기자였다. 한국으로의 어학 유학 뒤,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5년간 근무했다. 55세 신문사에서 퇴직 후, 한국외국어대학 객원교수로써 2년간 교수직을 역임하다, 일본에 있는 부모님의 간호를 위해 귀국했다. 그 후 2007년 오이타현립예술단기대학(이하 오이타예단)의 정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로 취임해서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오이타예단학생들과 함께 차세대 영화제를 만들 당시 ‘반일혐한’이라는 단어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반일혐한이라는 단어를 한데 묶어 사용할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그 사회에는 다양함이 섞여 있다. 먼저 서로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는 다양성을 통한 종합예술이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역설하며 영화를 매개체로 한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한일차세대교류영화제를 만들기까지
"영화를 좋아해서 한국에서의 특파원 당시 옷만 갖추어 입고 있으면 영화관으로 향했다"고 말하는 시모카와 교수가 영화의 힘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은 오이타예단 교수로 취임한 2007년 서울에서의 일이였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시대에 제작된 조선영화가 발굴되어 한국영상자료원이 4편의 DVD로 제작하여 배포한 일이 있었다. 이 4편의 DVD는 1940년대 영화지만, 경성(현 서울)의 근대적인 마을의 모습이나 생활 등이 그려져 있었고, 신문이나 역사서로는 알 수 없는 당시의 삶의 박력이 그려져 있었다. 시모카와 교수는 우연한 기회로 이 DVD를 보게 되었고 그 내용과 기술력에 경악하고 감동했다. DVD를 보자마자 시모카와 교수는 한국영상자료원을 방문했고 이 방문이 지금의 벳부한일국제영화제가 만들어지는 역사적인 첫걸음의 순간으로 이어졌다. 시모카와 교수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방문했을 때 가끔씩 이곳을 찾던 영화평론가 겸 동국대학교겸임교수인 김정원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DVD의 해설자가 그였던 것이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시모카와 교수는 2007년 12월 일본 오이타 시에서 '발굴된 과거'라는 이름으로 DVD 4편의 상영회를 개최시키고 김정원 교수를 해설자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DVD가 일본에서 상영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모카와 교수의 영상교류활동의 출발점이었다. 또한 오이타예술단기대학의 학생들이 전쟁이 있기 전의 경성을 알고 있는 연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교육의 장이었다. 시모카와 교수는 지금까지도 김정원 교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데, "많은 한국의 정치가나 지식인들이 반일이라는 명분만을 갖고 이야기 한다. 김정원 선생님은 편견 없는 따듯함을 갖고 사실만을 말하는 매우 드문 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둘은 힘을 합쳐 양국의 교류를 위해 힘쓰기로 약속하고, 다음해인 2008년 '한일차세대교류영화제'를 기획하는 것으로 이어져, 2008년 11월,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그의 작품의 주연여배우들을 초대해 오이타 현 벳푸 시에서 ‘제1회 벳푸한일국제영화제’를 개최시켰다.


한일영화교류의 새 지평을 열다
‘벳푸한일국제영화제’는 이 후 한국의 국민적배우 안성기가 방문하여 그 이름이 알려지며 2014년 지금까지, 한국영화와 일본영화중 그 한 해중 가장 유명했던 작품을 상영하며 이와 관련된 감독과 배우를 함께 초청해 토크쇼와 교류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시모카와 교수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는 진정성 있는 교류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의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자”는 포부를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에 전달하며 ‘한일학생단편영화제작교류’도 함께 시작했다. 매 해 한국 측으로부터 7~8명의 학생을 일본으로 초대하여, 예술단기대학생 30~40명이 참여해 1주일동안 합숙생활을 하면서 단편영화를 합동 제작하는데, 이는 아시아나국제영화제에서 한일영화교류에 새 지평을 연 프로젝트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2년 한국정부주최의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금상을 받고 상록수단편영화제에서 입상을 하기도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관객들과 항상 소통하고 싶은 감독 ‘한재림’
벳부한일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 둘째 날 300여명의 일본 관객이 모인 앞에서 관상의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한재림 감독의 토크쇼가 진행되는 내내 사전에 인터뷰를 진행해서였을까, 한재림 감독이 말하는 의미의 대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또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와 닿았다.

▲벳푸한일영화제에 참가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가끔씩 관광차 일본에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한일영화제든, 뉴욕영화제든 장소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두진 않는다.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를 좋아하는 모두가 모여 치루는 하나의 축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마운 시간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다.

▲요새 근황은 어떠한가?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하고, 제작사와 투자사에서 주는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좋은 시나리오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나리오를 아직 찾지 못해서 다음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만 가능한 빠른 시일 내 다음 작품을 촬영하고 싶다.

▲취향이라면 어떤 취향?

-감독에게는 하나의 작품이 몇 개월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애인같은 존재이며, 평생 남는 이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 가장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요새는 독특한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이 좋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했으면 좋겠고, 인간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영화는?

-우선 공포영화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공포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잘 찍을 자신도 없다.

Paul Thomas Anderson 감독의 ‘펀치 드렁큰 러브’나 Martin Scorsese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에릭 로메르’라는 영화도 좋아한다. 나열한 영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좋아하는 작품이 어떤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아하는 작품이 있고, 좋아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특별히 어떤 장르를 좋아하기 보다는 음악을 잘 풀어낸 영화를 좋아한다. 음악이 잘 쓰인 영화들은 시간을 잊게 해준다. 영화에 푹 빠지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중에 음악에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연애의 목적에서는 유림이가 홍과 자려고 애를 쓰다가 겨우 자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장면은 솔직하고 야한 섹스신이지만, 내가 보는 관점은 이 순간조차 아름다운 한 때이며 로맨틱한 순간이라는 것을 의미화 하고 싶어 아름답고 로맨틱한 음악을 집어넣었다.

우아한 세계에서는 임구라는 캐릭터가 라면을 깨던 지는 장면이 있는데 장면 자체는 비극적이지만 관객들에게 ‘이러한 모습이 참 우습지 않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코믹스러운 음악을 사용했고, 관상은 위에 두 영화와는 다르게 관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음악적 연출 또한 장면의 의미화 보다는 극대화를 시키는데 그 중점을 두었다. 대신 이러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사극이 주는 한국적인 미, 그러니까 당시의 시대감이나 공간감을 느끼게 하기 보단 인물들이 갖고 있는 욕망들의 감정을 보편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악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왜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나?

-단순히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시험기간이 오면 시험 끝나고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시험기간을 좋아했다. 그렇게 하루에 두, 세편씩 비디오를 보며 학창시절을 지냈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향이 제주도인 탓에 주위에 영화를 전공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노량진으로 상경했고, 하숙집에 거취를 잡았는데 그 집에서 우연히 영화과를 가려던 학생을 알게 되었다. 영화잡지가 있었던 사실도 몰랐던 난 그 친구와 친해지며 많은 영화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난 서울예술전문대학에 입학해서 지금의 감독직 까지 오르게 되었고, 그 친구는 수상한 그녀의 프로듀서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외 음악듣기와 독서가 취미인데 이는 모두 영화와 관련된 것이다. 취미가 직업으로 이어져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와 같은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관상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관상 개봉전과 후의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를 개봉했을 때는 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이 많았다. 지금은 관객 분들이 좋아해준다.

이는 각각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많이 본다. 이 때문에 영화 하나하나의 의미를 많이 두며 현존하지 않은 독특한 영화에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관객들은 일주일에 피로를 풀고 싶어 영화관을 찾고, 이 때문에 단순히 웃음과 감동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고 있는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우아한 세계, 연애의 목적은 대중적인 고민을 안 했다. 관상은 대중적인 고민만 했다. 이제는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상이 1000만 관객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무엇보다 배우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송강호 선배가 주는 국민적인 신뢰, 작품의 무게감을 주는 배우 김혜수, 이정재 영화적 세련됨을 더해주는 조정석과 이종석의 신선함 거기에 백윤식 선생님의 아우라가 어우러져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극이란 장르를 선택한 이유

-원래 사극을 해보고 싶었던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극이라는 것은 의상부터 공간까지 감독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기 좋은 장르이기도 하고, 관객이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부분 때문에 감독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극을 연출 해보니까 현대극과는 다르게 현장에서 어려움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식사시간이 될 때마다 분장을 다시 해야 하는 애로점이나, 계획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 불가능한 환경요소들… 그래서 영화를 마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한 번 더 사극을 찍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현재 한국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자본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영화계가 발달하기 위해선 자본주의에 의한 산업화가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예전과 같이 대규모 영화나 소규모 영화를 차별 없이 만날 수 있었던 부분이 차단된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영화시장에 자본의 흐름에 대한 예상이 가능해졌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투자를 했을 때 회수가 되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산업으로 확장 되었고 이는 더 많은 투자자들을 낳게 하였다. 이 때문에 연출부나 제작부와 같은 영화 노동자들은 더 나은 환경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감독만 해도 예전에는 재능이 있어도 데뷔를 못 했다. 누군가 보증을 해 줘야 했고, 그래서 사람한테 잘 했던 조감독이 감독데뷔를 했다. 나만해도 1년에 400만원 받고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감독 밑에 들어가서 무보수로 일하는 도제시스템과 같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몇몇의 개인이 영화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폐단이 많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인한 투명화로 이러한 것이 많이 없어졌다. 반대로 자본주의 잠식으로 인한 규격화가 진행되어 예전에 비해서 개성 있고 독특한 영화를 만드는 엄청난 신인들이나 그에 따른 작품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혜화동이나 무산일기와 같은 작은 독립영화이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은 현재 산업화의 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각 각 장점과 단점이 공존해 있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영화계에는 자본주의에 의한 산업화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지금 한국영화계의 문제점은 이러한 자본주의보단 관객들이나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없어진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우선 나 자신이 투자사의 주문에 맞게 대응하면서도, 나만의 색깔을 반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서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요새는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와 같은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을만한 대작들을 투자사, 감독 심지어 관객까지 찾지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예전에는 영화를 문화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문화적 경험보단 레저, 오락거리로 친숙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관객이 늘게 된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대부분 우리영화가 관객들의 즐거움과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새로운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영화하는 사람들’은 관객들의 입맛을 맞추면서도 콘텐츠개발에 대한 고찰과 공부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관객들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영화하는 사람들은 우리 영화계가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현재 우리 영화계에는 이러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참신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문화는 결국엔 추락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마음과 친근하게 즐겨주시는 모습에 감사를 표하고 싶고, 이런 힘들이 우리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굉장히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관객의 기대에 실망스럽지 않은 영화, 새로운 콘텐츠의 영화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관객들의 영리함에 보답하는 감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약력> 


한재림
1975년 출생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 졸업
2005년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
2006년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 <연애의 목적>
2007년 제28회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우아한 세계>
2013년 제50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관상>


시모카와 마사하루
1949년 출생
1973년 오사카 대학 법학부 졸업 후 마이니치신문입사 후 서울 지국장, 방콕 지국장, 평론위원 등을 역임
2005~200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
2007~현재 오이타현립예술단기대학 교수역임과 함께 영화감독, 제작과 함께 한일학생의 교류활동을 기획,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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