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토박이로 지역발전을 위한 풍부한 행정 경험 갖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플투데이 박재찬기자]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끈끈한 유대관계에 의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돼왔다. 때로는 이 연고가 부정적인 관계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사례는 많다. 그 지역을 알고, 그 지역의 사람들을 잘 알고, 그 지역의 정서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지역의 현안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한 든든한 자원이고 지역을 대표할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덕목임에 틀림없다.
최동용 전 춘천부시장은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의 초․중․고를 졸업하고 춘천에서 41년간 공직생활을 한 춘천 토박이다. 그만큼 춘천처의 정서와 현안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춘천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역정과 공직생활에서의 업무처리 원칙을 들여다보면 절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 전 부시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계셨고, 동생은 어린 학생이라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은 공무원이었다. 말단직원, 그것도 직급자체도 없는 잡급직(지금의 비정규직)으로 출발했다.
잡급직으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시험을 통해 9급 공무원을 거쳐 2급 이사관 자리에 까지 올라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읍면동 공무원을 거쳐, 군청, 시청, 강원도청 근무까지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 고위직 공무원에 오르는 위업을 이루어 냈다.
그는 도청에서도 안 맡아본 업무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공직 경험이 있어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춘천의 구석구석을 두루 경험했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훌륭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잡급직에서 이사관까지의 41년 공직 생활
 

 
그가 41년간 공직에 몸을 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하급 공무원으로서는 박봉일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 초년시절에는 합기도 사범으로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합기도 사범생활을 하는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이 고단한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고 언제까지 두 가지 일을 병행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지 일을 택하기 위해 최 전 부시장은 공무원 보다는 보수가 좋은 사범 일을 택하려 했지만 당시 공무원이었던 매형이 공직생활을 하라는 간곡한 권유에 공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매형의 조언이 현재 최 전 부시장이 있게 한 계기가 됐고 선택은 옳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잡급직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이사관으로 정년퇴직한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정년퇴직하면서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것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행정가로서의 철학은 뚜렷하다. 소통을 통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자는 것. 이러한 그의 행정 철학은 부시장 시절 결재를 자리에 앉아서 하지 않고 각과를 순회하면서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최 부시장은 직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두 번씩 각 과를 돌아다니며 결재를 해주었다. 당시 시청 공무원들이 호평을 했던 것은 당연했다. 최 전부시장은 이를 통해 일선과의 분위기와 애로사항 등을 접할 수 있어 행정의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리에 앉아서 결재를 하면 서류밖에 볼 수 없지만 각 과를 순회하며 결재하다보니 직원들과 만나서 대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됐다.
 
대변불언(大辯不言) 가치관 가슴에 새겨
 
그의 이러한 행정가로서의 원칙은 그가 갖고 있는 가치관의 발로이기도 하다. 최 전부시장은 공무원을 하면서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이 대변불언(大辯不言)이다. 큰 변호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인데, 그는 그의 마음속에 시민들을 위한 일은 말로 해서는 안 되고,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 놓았다.
 

 
그는 민원이 생기면 새벽 2시에도 현장에 찾아가 해결을 위한 대화를 했고, 되도록 시민의 편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춘천에 25개 읍면동이 있는데, 아마 그의 땀방울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랜 공직 생활을 하다 보니 아쉬웠던 점도 없지 않았다. 도청에 근무할 때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는 춘천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았다. 춘천과 관련된 일이 생길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춘천을 위해 애썼다. 가끔은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고 타 지역 출신의 선후배들에게 춘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뼛속까지 춘천의 정서가 배어있는 최 전부시장은 41년의 공직 생활을 통해 현재 춘천이 안고 있는 현안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이를 해소 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춘천이 서울과 전철이 연결될 정도로 가까운 곳이지만 머물 곳, 볼 것, 즐길 거리,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도시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잇점을 살려 레저관광도시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춘천이 물과 산과 맑은 공기라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만큼 정책적인 뒷받침만 있다면 충분히 레저 관광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41년 행정경험 살려 춘천을 위해 봉사할 생각
 
최 전부시장은 춘천에서 41년 공직생활하면서 자치행정국장도 하고 체육회사무처장까지 하며 보람을 느꼈고 공직자로 춘천에서 일하며 춘천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정년퇴임 후 현재 종북 저격수로 유명해진 김진태 국회의원의 선거 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대선 때 국민소통본부 영서지역 특보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밤새워 가며 열심히 소임을 다했다. 또한 강원도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강원미래발전21포럼 춘천권역 대표로 활동 중이며, 새누리당에 당적을 두고 정당 활동도 하고 있다.
 
 
최 전부시장은 앞으로 춘천에서 존경받는 선배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춘천에서 앞으로 살아갈 후배,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춘천, 살기편한 춘천을 남겨 주고 싶기도 하다. 41년 동안 쌓아 온 행정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시민들과 나누고 싶어 이제 기회가 된다면 춘천을 위해 봉사할 생각이다. 춘천을 위해 일하면서 춘천시민들을 위한 행정정비를 통해 시민들에게 문턱을 낮추는 봉사정신을 가진 춘천행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2008년 강원 도청 자치행정국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한 최 전부시장은 2009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으로 1년간 일한 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춘천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경험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춘천 경제를 활성화가기위한 방안들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춘천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향토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춘천기업의 고충 고민 애로사항을 파악해서 향토 기업을 육성해야한다는 것. 향토기업의 육성은 일자리 창출과 춘천 시민들의 소득 향상은 물론, 향토기업의 육성을 통해 외부기업을 선별해서 유치하는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최 전부시장의 오랜 시간과 수많은 경험, 그리고 행정 철학은 춘천이 선진행정의 도시로, 레저 관광도시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