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2] 금강산(金剛山) “천화대의 신기한 봉우리 얼기설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금강산 만물상_김석기 작가
▲ 금강산 만물상_김석기 작가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간직한 천선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내려줄 두레박을 기다리는 나무꾼이 되어 하늘의 천사를 만나고 싶어 간절한 소망으로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심연(深淵)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만물상의 기암들이 진주알처럼 눈이 부시다. 

겸제 정선이 이곳에서 금강산을 화폭에 옮기던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단원 김홍도는 같은 자리에 앉아 금강산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2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그들을 흠모하며 또 다른 금강산을 그린다.

정조 10년(1786)에 42세의 김홍도는 왕명을 받고 금강산에 입산하여 금강사군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그린 단원은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새 화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현대 화론에서 말하는 화면 구성의 공간 처리 문제를 가장 명쾌하게 해결했다. 그래서 단원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회화 이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정립시킨 화가가 되었다. 겸제의 금강전도에서 느낄 수 있는 신기에 가까운 준법의 표현도, 단원의 화론도 모두가 상상을 초월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섭리 속에서 얻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거장의 혼을 사로잡은 금강산의 여러 명승지 가운데 제일 손꼽히는 곳 중의 하나가 구룡연 계곡이다. 

▲ 세존봉입구_김석기 작가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신계사 터가 문필봉 아래 넓은 공터로 남아있다. 통일신라 법흥왕 6년에 건립된 이 사찰은 1951년 전란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3층 석탑 홀로 세월의 이끼를 머금고 이곳을 지키고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한참을 걷자 1983년에 지었다는 목련관이 나타나고, 그 입구에 잘 축조된 목련다리가 나를 반긴다. 숲속의 산행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쉼터에서 약수를 마신다. ‘삼록수(蔘鹿水)’라 쓰인 약수터다. 산삼과 녹용이 녹아있다 하여 김일성이 붙였다는 약수터에서 마시는 한잔의 약수가 산행의 기운을 돋운다. 삼록수로 목을 축이고 조금 오르니 집채 같은 바위들이 겹치고 쌓인 가운데로 구멍이 뚫려있다. 돌계단을 올라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돌문이다. 금강산에 여덟 개의 돌문이 있는데 그중 제일 묘하게 생긴 문이 바로 이 금강문이다. 여기서부터 험악한 오르막길이 전개되면서 금강산의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름다운 옥류동 계곡의 청자 빛 비취색 아름다운 물결이 감탄과 놀람으로 온몸을 적신다. 서둘러 그려나가는 스케치가 ‘겸제’인 듯 ‘단원’인양 기운 생동하는 화폭으로 가슴을 친다.   

  

▲ 금강산 절부암 설경_김석기 작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적 요소, 조건, 욕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완전한 조화를 보려면 옥류동을 찾아라’ 

 

육당 최남선은 옥류동을 두고 이렇게 예찬했다. 크고 작은 폭포들로 연결된 계곡을 좁은 스케치북에 담기에는 너무 벅차다. 금강산에서 제일 큰 소(沼)라고 하는 옥류담을 지난다. 물속이 너무나 투명하여 바닥이 들여다보인다. 그 깊이가 10m는 된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 위쪽에는 흰 물줄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백옥 같은 폭포가 있다. 바로 옥류폭포다. 그 높이의 길이가 50m나 되어 장관을 이룬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갑자기 하얀 물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높이 139m의 비봉폭포다.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폭포 앞에서 느꼈던 놀라운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낀다. 폭포가 길게 물방울을 날리면서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와 꼬리를 흔드는 듯하다. 한 마리의 비봉이 은빛 찬란한 깃털을 접기도 전에 나지막한 키로 뒤따르는 또 한 마리의 무봉이 있다. 봉황들이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을 춘다. 두 폭포 사이엔 봉황바위가 우뚝 솟아 변화무쌍한 한 폭의 그림으로 나타난다. 

▲ 금강산-귀면암_김석기 작가

금강문에서 두 시간쯤 올랐을까? 멀리 들리기 시작하는 굉음이 구룡동의 입구를 알린다. 금강산을 지키고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이 꿈틀대는 소리다. 유점사의 늪에서 오십삼불(五十三佛)에 의하여 쫓겨난 용들이 금강산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구룡폭포다. 그 길이가 74m이고 폭이 4m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폭포다. 거대한 화강암 위를 굴러내려 구룡연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에 시선은 멈춰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김홍도가 그렸던 구룡폭포의 대담한 구도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담하게 지어진 관폭정(觀瀑亭)에 앉아 금강산의 정기로 흠뻑 마음을 적신다. 폭포수 오른쪽 화강암 벽에 ‘彌勒佛’(미륵불)이라고 새겨진 서각 작품이 눈길을 끈다.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새겨진 서각으로 그 길이가 19m에 폭이 3.6m에 달한다. 불(佛)자의 마지막 획이 구룡폭포와 함께 끝도 없이 내리 뻗친다. 

흔들리는 줄다리를 건너 급경사의 철 난간을 오르고 또 오르는 힘겨운 산행 끝에 구룡대에 이른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벼랑 끝에 상팔담의 푸른 물이 넘실댄다. 청록색의 신비를 담고 있는 여덟 개의 소(沼)가 금강산의 비취 목걸이처럼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절경을 보여준다. 저 멀리 서남쪽으로는 비로봉이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옥녀봉이, 남쪽으로는 장군봉과 채화봉, 집선봉이 보인다. 절경의 극치를 이루는 이곳에서 틀림없이 ‘겸제’와 ‘단원’은 그림을 그렸다. 그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만났듯이, 새로운 회화의 이론을 정리했듯이,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자연으로 돌아갔듯이, 나도 이제 세상에 찌든 찌꺼기를 남김없이 버리고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야겠지. 변신을 향한 새로운 세계로, 나의 본향(本鄕)인 예술의 세계로 말이다. 

▲ 금강산 천선대_김석기 작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7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