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1] 가야산(伽倻山), “팔만대장경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산”

  • 입력 2024.03.16 14:23
  • 수정 2024.03.19 17:49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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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산봉_김석기 작가
▲ 가야산 산봉_김석기 작가

1972년에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된 가야산국립공원은 경상남도와 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성주군, 합천군, 거창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해동의 명승지 조선8경중의 하나로 옛날 가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하여 가야산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산세의 모양이 소의 머리와도 같다 하여 우두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산의 높이는 해발 1,430m이다.

 

“아홉 굽이 날아 내리는 물 격노한 우레런가

떨어진 붉은 꽃잎 끝없이 물결 따라 흘러오네 

무릉도원 가는 길 이제도록 몰랐더니

오늘에야 산 빛조차 시샘하는 그 곳에 다다르리“

 

▲ 가야산산사_김석기 작가

조선초기의 문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홍류동 계곡을 오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해인사로 접어드는 10리길 계곡이 온통 붉은 단풍의 핏빛으로 현란하다. 계곡의 이름이 홍류(紅流)라고 붙여진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붉은 단풍잎을 갈아 만든 순정의 선홍색 즙으로 가득 채워진 홍류계곡을 따라 걷는다. 점필재 김종직, 목은 이색, 매월당 김시습, 만해 한용운 그리고 고운 최치원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홍류를 예찬하였다. 계곡의 중간에서 목조 다리를 건너니 숲 속에 아담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사각 정자가 하나 있다. ‘籠山亭(농산정)’이라 쓰여진 현판이 눈길을 끈다. 그 곁에는 최치원의 적거지(謫居址)에 세워진 문창후유허비(文昌候遺墟碑)가 있다. 천년의 역사가 흘렀어도 옛 어른들의 시어(詩語)가 아직도 선명하게 바위 위에서 필력을 자랑한다.  

최치원은 경주최씨의 시조로 일찍이 ‘계림은 누른 잎과 같고, 송도는 푸른 소나무와 같다’ 하여 신라의 정치 몰락을 개탄하였으며, 고려가 신흥국가로 융성하리라는 내용의 사연을 왕건에게 보내어 고려의 개국에 공헌 하였다. 그의 자손들과 문하생들은 고려 건국 초에 출사하여 벼슬을 지냈고, 고운이 죽은 후에도 현종임금은 그를 내사령(內史令)에 증직하고, 문창후(文昌候)를 증시(贈諡)하였다. 또한 조선 왕조는 최치원이 동방의 이학시조(理學始祖)라 하여 그의 자손은 귀천이나 적서를 막론하고 군역(軍役)에 동원하지 않는 특혜를 주었다.   

▲ 해인사에서_김석기 작가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법보종찰인 해인사가 있다. 국보 32호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대장경과 경판전이 바로 그것이다. 호국 불교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만든 대장경 목판으로 그 수가 팔만 천이백 오십 팔매에 달한다. 그 안에는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 또는 일체경(一切經)이라 부르는 불교경전을 비롯한 불교관계 내용들이 집대성 되어 있다. 1232년(고종19)에 최초로 조각된 고려대장경 판은 몽고군에 의하여 불타버렸다. 그러나 그 후 국가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다시 16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 현재의 팔만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은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수장되었다가 1318년(충숙왕 5년)이후에 선원사로 옮겨졌고, 다시1398년(태조 7년)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주련(株聯)에 ‘원각도량 하처 현금생사즉시’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라는 글귀가 있다. ‘깨달음의 도량이 어디란 말인가? 지금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이 세상이 바로 거기가 아니겠는가?  

계곡의 웅장하고 남성적인 암벽들이 가야산 풍광의 진수를 보여준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맑은 계곡의 물은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신선감을 더해준다. 칠불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비슬산, 화왕산, 자굴산, 백운산, 수도산, 대덕산의 광활한 전경과 발아래 남산제일봉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가야산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바위로 이루어져 산을 찾는 이들을 매료시킨다는 매화산이다. 

▲ 매화산의 운해_김석기 작가

매화산을 오르는 길은 해인사로 들어서는 홍류동 계곡 입구에서 왼쪽으로 개천을 건너 청량사로 들어서는 길과,  홍류동 계곡의 농산정에서 직접 오르는 길이 있다. 해인사의 그늘에 가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청량사는 조용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석탑, 석등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고운의 형님이 스님으로 있어 고운이 자주 찾았던 곳이다. 불가에서는 천개의 불상이 뒤덮고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천불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해발 954.4m로 기기묘묘하게 이어지는 바위의 군락들이 장쾌하게 전개된다. 석화들이 피어 성을 이루듯 솟아오른 암봉들 사이사이로 만들어진 등산로를 오르는 산행이야 말로 일품이다. 철계단, 홈통바위, 파이프 난간들을 따라 절벽을 횡단하기도 하고 수직으로 오르기도 한다. 긴장감이 계속되는 산행이다. 봄이면 암벽사이에서 진달래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들로 온통 산이 붉게 물든다. 아마도 이곳이 홍류 계곡을 붉게 만드는 신비의 붉은 가루를 만드는 요정들이 살고 있는 곳인가 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위한 스님의 목탁 소리는 여전한데 1935년에 이곳에 인연을 맺은 이후 해인사 백련암에서 말년을 보냈던 성철스님은 어디 계신지.... 1993년 11월 4일 부처님으로 추앙받아 오던 조계종 종정 성철 큰 스님이 열반에 들었던 곳, 그곳에 서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불법을 몰랐던 초년시절 지리산 대원사에서 기행을 보이며 평생수행을 시작하여 해인사의 하동산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기까지 성철스님은 가야산과 매화산을 넘나들며 깨달음의 선경에 머무르지 않았던가? 

▲ 매화산정상 기암_김석기 작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7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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