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전업 작가의 길, 실천으로 피워낸 정감 있는 화폭 -김혜옥 작가, ‘꽃밭시리즈’에 일상의 소도구 담아 미적 영감으로 승화

김혜옥 작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 자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다른 사람이 억지로 손에 쥐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생활은 아름답고도 충만할 것이기에 늘 선한 영향력으로 가득하다. 예컨대 작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수백수천 개의 사과를 품고 있듯이 삶을 대하는 올곧은 자세와 인간적인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김혜옥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입체파 화가들의 전신은 세잔이다.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세잔은 사과가 놓인 수많은 정물화를 그리면서도 기존의 원근법 공식을 파괴하며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한다. 작품을 구현해 내는 기법도 다양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물화의 아버지로 불리던 인상파 화가 세잔의 후기 작품은 그래서 더 한층 주목받게 된다. ‘생 빅토르 산’이나 ‘목욕하는 사람들’은 입체파가 태동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김혜옥 작가는 어떤가. 김 작가의 경우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이 주효했노라고 자부한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 김 작가를 찾아가 그의 화업(畫業)과 함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영감은 주로 어떻게 끌어내는가?

“나에겐 모든 게 그림의 대상이다. 어려서부터 꿈이 화가였다. 자연히 눈앞의 대상들을 이리저리 살핀다. 전동차 안에서 마찬가지다. 가령 착석하고 앉아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과 맞닥뜨리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구나. 나와 상관없이 저런 소품을 들고 다니는구나’ 하면서 생각의 쳇바퀴를 쉼 없이 돌리곤 한다.” 이어 “나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고마운 것들에 대한 애정을 빼놓을 수 없다. 하다못해 자주 이용하는 안경 하나에도 ‘이 안경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를 생각하면서 나에게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작은 생활 도구에 진심을 담아 말을 걸곤 한다.”

김 작가는 이어 “내 앞의 사소한 것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물성 특유의 속성과 교감하게 된다”고 밝힌다. 영감을 끌어내는 다양한 시도인 셈이다. 이러한 김 작가의 특성은 ‘작가 일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늘 행복한 정원을 꿈꾼다. 나를 설레게 하는 생활 속의 많은 소재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포근한 의자와 달콤 쌉싸름한 커피, 코끝에 맴도는 꽃향기의 그윽함, 잠시 빠져드는 엉뚱하고도 자유로운 상상’ 이런 것들을 모아 그림일기를 쓰듯이 화폭에 담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는 독특한 작품이나 신사조가 나오기 위해서는 선험 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그의 저서 시학(詩學)에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혜옥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34년의 교직 생활을 통하여 순수한 동심을 가슴에 휘감고서 부단히 노력한 결과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색감을 중시했다. 주로 유화 작품을 통해서 마티에르, 즉 물감이 만들어내는 재질감을 즐기는 편이다. 물감이 서로 교차하고 섞일 때 빚어내는 나만의 따뜻한 색을 만들어 왔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시선

하교 후, 김혜옥은 창가로 다가선다. 창가에 놓인 풀꽃을 보기 위해서다. 화분에는 저마다 화분 주인의 이름이 적혀있다. 김혜옥은 나무 블록에 창가의 꽃을 그렸다. 이튿날 꽃 그림 블록을 본 아이들은 경쟁이나 하듯이 ‘선생님 이 그림 저 주세요!’하고 재잘거린다. 교실에 놓인 풀꽃 화분은 어느덧 김혜옥이 즐겨 그리는 작품 소재가 됐다. “그림을 그리니 행복하구나!” 김혜옥은 한눈팔지 않고 동심이라는 자양분 속에서 작가적 역량을 키워왔던 것이다. 그 덕분에 초등미술연구회 회원들과 ‘초미연’ 그룹전을 16회나 이어 갈 수 있었다.

김혜옥-우아(優雅)함, 그레이스(grace)

“저를 작가로 키운 것은 아버지였어요.” 작가의 부친은 그림 소질이 대단한 분이셨다. 장래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상 그러지 못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아 그림에 소질을 보이는 딸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감싸주셨다. 남들이라면 ‘미술도구 사는 데 웬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니?’하고 한마디 했을 법할 때도 늘 아낌없는 후원자가 돼 주셨다.

헌데 김 작가는 미술대학으로 직진하지는 않았다. 교육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때까지 줄기차게 “난 커서 반드시 화가가 될 테야!”라고 다짐하던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아이들과 같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즐겨 떠올리고는 했다. 이럴까 저럴까,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면 혼잣말을 내뱉곤 했다. “난 아직 어리잖아? 그리고 꿈이 꼭 하나만이어야 한다는 법이 어딨어?” 대학입시가 가까워지자, 김혜옥은 스스로 생각해도 발칙한 생각을 드러내게 된다. “난 둘 다 하는 사람이 될 거야!”

김혜옥은 경인교육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교직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미술 연구수업은 늘 도맡아 했다. 김혜옥은 단순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선생을 부르는 별칭도 많았다. ‘좋은 선생, 예쁜 선생님’은 기본이고 ‘예술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하나 더 따라붙었다. 아이들도 동료 교사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예컨대 김혜옥만의 예술적인 감성과 멋이 작동한 까닭이었다. 그렇다. ‘김혜옥은 자칭타칭 그레이스(grace)’였다.

롤 모델과 좋아하는 화가

“김환기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한다. 선생님은 점·선·면 그리고 다양한 색채를 통해서 본인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데 탁월했고 선생님의 화법은 ‘전면점화’로 귀결된다. 선생님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림 테라피를 받는 느낌이 들곤 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선생님의 그 유명한 작품이다. 정말 멋지다. 한편으로는 장욱진 선생님도 좋아한다. 작가가 스케치 능력이 없어서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을 그렸겠나. 그러면서도 구성이 꽉 차있다.” 장욱진 화가의 작품은 독특한 형태와 구도, 경쾌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고 평단에서는 말한다. 말을 멈추며 잠시 숨을 고르는 김 작가다. 그러더니 나직하게 속삭인다. “꿈을 향해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 나는 김혜옥이야.”

요즘 하는 작업과 작품전 성과

“주로 하는 시리즈가 있다. 지금은 꽃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그리는 꽃은 아름다운 모든 것을 상징한다. 꽃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일 수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거실의 가구도 차를 마실 때 자주 애용하는 찻잔일 수도 있다.” 김 작가는 2015년에 퇴직을 했다. 직장에서 막 놓여난 직후 해외여행도 가고 지인을 만나는 등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이후 화폭 앞에 앉았을 때는 코로나가 찾아온다. 정말 우울했다. 온 세상이 생각지도 않은 펜데믹 모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김혜옥은 최우선적으로 가까운 것에 시선을 멈춘다. 행복도 작품 소재도 지근거리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것에 집중하자 활력이 돌아오고 생활이 다시 즐거워졌다. 김 작가의 작품 세계는 크게 ‘동심을 기반으로 한 여인의 우아함’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꽃밭 또는 작가의 정원 시리즈 속에는 하이힐, 핸드백, 선글라스, 엔틱가구 위에 놓인 찻잔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인의 손때가 묻은 소재인 것이다.

‘초미연(초등미술연구회)’을 결성하여 꾸준히 활동했다. 겸재정선시립미술관에서 총 16회의 그룹전을 열었고 퇴직 후에도 미술교사 7명과 함께 ‘아르엔’이라는 그룹전을 7회째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23년 7월 서울 강남구 소재 세텍(SETEC)에서 열린 제2회 서울아트페어는 김 작가에게 많은 성취를 안겨줬다. 총 11점의 출품작이 판매되는 등의 기염을 토한다. 이 여세를 몰아 내년에는 개인전 2건을 열 예정이고 말이다.

작가 생활에 대한 소회가 남다른 시점이다. 그중에는 한국 화단에 대한 바람도 빼놓을 수 없다. “화폭을 여러 개 놓고 마치 공산품을 생산하듯이 그림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부디 영혼 없는 그림들이 범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편으로는 작가정신이 투철한 젊은 층들의 성장에 관해서다. 작품 활동을 위한 공간도 마련하고 작품을 통하여 경제적인 돌파구를 열어가길 바란다. 나 역시 새해엔 2건의 전시회가 예정돼 있는 만큼 열심히 할 계획이다.”

가치 있는 결정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만큼 화업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은 긴 호흡으로 가야 할 작가의 몫이다. 모처럼 잡힌 김혜옥 작가의 전시회 일정이 성공하길 빌면서 꾸준한 정진과 활동을 기대한다.

Profile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경인교육대학교대학원 미술교육 석사졸업

<단체전 및 초대전>

초미연 1회~16회 (서울초등미술연구회)

한하나회 17회~20회 (경인교대 동문전)

아르엔 1회~6회 (겸재정선미술관 초대전)

카페로뎀 8회(개인전)

서울아트페어 1회

제3회 교직원미술대상전 금상

제3회 교직원미술대상전 입선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