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전달하는 전 인류 평화의 메신저

경노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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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싸워 극복해야 하는 대상은 비단 현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조리한 현실부터 작가의 정신과 세계관까지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파고들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특히, 전쟁과 같이 참혹한 현실을 직접 경험하거나 그로 인해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경노현 화백은 달랐다. 그는 비극적인 유년시절의 기억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처참하고 아픈 기억을 그림으로 승화

경노현 화백은 1943년 충북 청주 석교동의 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게 되지만 오래지 않아 가족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말에 북해도로 징용된 후 탄광사고로 인해 척추를 심하게 다친 후 한국전쟁 휴전 직전에 가장 치열했던 양구․화천 일대의 전투까지 참전하는 비운을 겪게 되고, 누이동생과 어린 아우는 전쟁 통에 쏟아진 포화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는 등 어린 나이에 겪기 힘든 소식과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피난길 도중 한적한 시골에 정착해 살게 된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절에 벌어진 잔혹한 가족사는 그의 마음에도 어둡고 두려움이 큰 상처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어린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통해 지금까지 겪은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던 그에게 역동적인 한국 근현대사를 직접 살아오며 겪어온 다양한 사건들과 감정은 역설적이게도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었고,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평화라는 주제가 자리 잡게 된다.

이런 경 화백에게 그림이란 유년 시절에 겪은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삶 자체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다. 그 역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곧 삶이요 인생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전쟁 세대를 보내온 사람으로서 겪은 역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겠지만,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두웠던 상황 속에서 그림은 그에게 빛이자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소년기에 겪었던 참혹한 슬픔과 비극을 전부 그림으로 승화했던 그는 그림이 모든 길을 열어준 스승이라고 회고했다.

실력을 인정받으며 생겨난 습관

그는 군대 입대 후 공모전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등 수많은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이 무렵부터 그에게는 습관이 생겨나게 된다. 시간을 쪼개가며 힘들게 그려 완성한 작품을 부대원들이나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전시하거나 개인적으로 그림을 부탁해온 사람을 위해 정성껏 그린 그림을 아무 조건 없이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런 덕 때문이었는지 현역 복무시절에는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떠올리며 김수로왕릉을 참배한 후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고 한다.

부대에서는 전군제일탑 도안공모전을 비롯해 잠시 외출이나 휴가 때 해운대나 다대포, 송정리 등을 다녀온 후 바다풍경을 화폭으로 옮겨 장교 및 사병식당, 구내이발소에 그림을 걸기도 했고, 장병들의 부모 사진을 보고 그려주기도 했다. 이는 이후 그가 그림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하고 싶은 평화의 메시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제대를 앞두고는 당시 김해 합성국민학교 현관 벽화와 인근 고등학교 과학실에 작품을 청탁받는 등 부대 밖에서도 그의 그림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10여명의 교수에게 그림 실력을 인정받으며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창작자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계 극복해야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그림에 반영하기 위해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 사진 등과 같은 예술 장르를 섭렵하는 등 다양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예술은 그림을 그릴 때 기술, 실력 같은 소위 ‘손재주’와 같은 기본적인 실력과 기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심오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데 주력한다. 세계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라고 밝힌 그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지속적인 문예활동을 겸하면서 이후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한다.

오로지 기술로만 그리는 그림은 한계가 있기에 사진을 찍는다거나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달리 표현해내는 방식을 익히고 넓혀나감으로써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 화백은 문학을 접하면서 비구상이나 반추상, 추상 분야의 그림을 시도하는 등 작품의 다양성을 더 넓힐 수 있었고, 하나의 테마를 밀고 나가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창작자로서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일관된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다시는 전쟁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을 염원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화폭에 담으며 그림 그 자체로 평화를 상징하고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의 그림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기억에 소환되고 있다. 경 화백 스스로도 모든 종교의 뜻과 이념은 하나 같이 평화를 지향하고 있듯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종교가 바로 ‘그림’이라고 말한다. 고난과 방황 속에서 길을 잡아준 그림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하나의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삶의 방식으로 정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자연과 우주의 유기적인 흐름은 평화를 향한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에서 말하고 있는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빛과 어둠, 원과 눈물, 자연과 동물, 무지개로 요약될 수 있다. 태초에 우주가 생겨나고 빛과 어둠이 존재하기 시작한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우주 만물과 생명체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사물은 외부와 단절된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빛과 어둠이 단순히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대체하는 보완제로서 역할을 한다. 생명이 어둠 속에서 자라기 시작해 세상에 나와 빛으로 성장하듯이, 눈물 역시 단순히 부정적 의미의 슬픔을 나타내는 매개체가 아니라 어둠에 빛을 투여함으로써 슬픔을 극복하고 깨달음(행복)을 얻은 상징적인 의미를 뜻하거나 물에서 모든 생명이 시작되듯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만물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무지개는 공기 중 수분이 빛을 만나 펼쳐지는 자연현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다양한 색채로 확장되며 빛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빛과 어둠, 눈물과 무지개는 보편적인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경 화백이 평화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시하는 관념체이자 자연과 우주의 유기적인 흐름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평화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원은 우주나 원형을 뜻하기도 하고, 화가가 말하고 싶은 축약된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연과 동물 등 다양한 생명체를 담음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평화 아래 하나 된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평화의 메시지

아마 경노현 화백처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외국에 보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늘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아 그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전달돼 그 나라의 평화의 초석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가 작품을 보내는 나라는 약 12년 전부터 대통령 순방국을 중심으로 영국 황실, 사우디아라비아 총리실 등을 비롯해 한국 전쟁 참전국 16개국, 의료지원단 5개국 등 21개국 정부에 이른다. 현재 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 갤러리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의 주요 작품은 약 135점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터키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노르망디, 독일. 중국세계박람회 미술대제전 위해 박물관, 하와이KCC 대학, 호주 시드니 초청 전시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미국(뉴욕, LA, 하와이),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 도쿄, 홍콩관광청, 호주 시드니, 그리스, 터키, 독일 등지에서 단체전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 아이젠하워 승전 탑 전면, 고흐가 머물던 시골 교회정원, 모네의 정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북유럽 5개국 한적한 오슬로 바닷가, 블라디보스토크 레닌광장 등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도 100회에 이른다.

그는 앞으로 한국 전쟁 당시 참전국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나 하와이에서 활동하고 싶은 의지를 보이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 종식과 인류의 평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쓰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경노현 화백은 이미 설립된 ‘경노현아트재단’에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미술관을 세워 그의 작품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특색을 갖춘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해 전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Profile

1943 청주 출생

1996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20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제3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서양화 개인전 45회 터키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노르망디, 독일. 중국세계박람회 미술대제전 위해 박물관, 하와이KCC 대학, 호주 시드니 초청 전시 등 국내·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설치미술 오송역 개통 초대전

퍼포먼스 100 회: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 아이젠하워 승전 탑 전면, 고흐가 머물던 시골 교회정원, 모네의 정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북유럽 5개국 한적한 오슬로 바닷가, 블라디보스토크 레닌광장

수상

회화대전 및 미술대전 50여회 (대상2, 우수상6, 특별상3, 동상1, 특선 12회 등)

장관표창 외 100회(충청북도 새마을운동 성공사례발표대회 최우수상 ‘79)

청주시 청원군 각 면사무소 등 작품 10호~100호 충북일원 100여점 무료전시 및 기증(1988 전국소년체전시~20여년)

우수예술인상. 대한민국원로 국제예술인상

대한민국 전군(육·해·공군) 제일탑 도안공모전 채택(탑건립 보전) ‘66

단체전 850여회: 미국(뉴욕, LA, 하와이),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 도쿄, 홍콩관광청, 호주 시드니, 그리스, 터키, 독일. 서울, 부산, 대전, 청주 등 국내외 ‘71~

주요작품 소장

터키 정부, 터키 국립현대미술관, 유엔참전용사 사무국 대사관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이태리, 벨기에, 일본 영국 황실 세계 각국 대통령 정상 등 UN참전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등 21개국 정부 미술관·박물관 갤러리 국내외 1000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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