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➁] 남원 보절미술제 개최 성과와 이후의 전망

-김해곤 예술총감독에게 들어보는 미술제 전후 이야기

  • 입력 2023.12.15 13:06
  • 수정 2023.12.16 14:52
  • 기자명 박정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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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벚꽃 이야기

벚꽃과 관련한 내 기억들은 아름다운 추억의 연속이다. 벚꽃이 워낙 예쁜 꽃이다 보니 벚꽃동산을 드나들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의 일들은 지금도 오롯이 연분홍 꽃물이 들어 기억의 보물 상자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군산은 벚꽃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114년 전 일본인들에 의해 계획도시로 출발한 항구도시 군산은 경관이 좋은 곳마다 벚꽃이 심겨있었다. 벚꽃을 자기네의 대표적인 꽃으로 내세우고 있는 일본인이 부지런히 심은 결과다.

군산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는 월명공원과 은파호수공원이고, 주변에는 지금도 근 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꽃나무가 즐비하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50여 년 전 전주 군산 간 65km 도로에 벚꽃나무를 식재한 일이다. 전군도로 가로수는 기존의 통념을 깬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군산 이전에 그 어느 고장에서도 가로수 수종으로 벚꽃을 심어 놓은 일은 없으니까. 여담이지만 이후 타 도시에서도 너도나도 벚꽃나무 식재가 성행할 정도로 대유행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65km 구간이 다 벚꽃이라니! 꽃말이 아름다운 영혼,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인 꽃길을 감상하는 일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천천히 걷다가 마음에 드는 나무 밑에 머물며 완상하는 것도 좋겠다. 하트 모양의 꽃잎 5장으로 이루어진 작은 꽃들이 붉은 수술대를 중심으로 눈송이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꽃을 향하여 천천히 차를 몰며 다가서는 순수한 시간은 병정들처럼 열을 맞춰 선 봄꽃의 절정에 몰입하는 진선미의 시간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차를 멈추고 버드나무처럼 낮게 늘어진 꽃가지를 향해 팔을 뻗어 보는 일이다. 눈으로 보는 것에 더해 손끝에 닿는 촉감이 더해진다면 기억에 속의 벚꽃은 더욱 오래 머물게 된다.

 

어떤 사유(思惟)

벚꽃에 관한 기억 하나가 또 있다. 한 천주교 신부님의 벚꽃 상춘(賞春) 담이다. 신부님은 그때 어느 문학서적에서 가져온듯한 지독한 감상에 젖어 액션까지 섞어가면서 자신의 경험을 전해줬다. 귀를 쫑긋하고 듣는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리즈 시절을 최대한 아름답게 각색시키면서 말이다. 신부님은 말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후두둑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꽃비의 아름다움과 기모노 차림의 여인을 대비시켜가면서 찬탄해 마지않았음을. 이 일을 기화로 벚꽃 하면 어릴 적 군산이고, 군산 하면 출렁이는 금강을 발아래 깔고 서서 때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멋지게 쏟아주던 월명공원의 벚꽃에 대한 자부심이 떠올랐다.

그 꽃비를 맞으며 함박웃음을 짓던 주인공은 누구였던가. 그 주인공은 오래전 내재 과거 속에 조용히 있는 기억의 꽃다발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소환해냈다. 벚꽃은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 아니면 조금 진한 분홍색이다. 푸른 잎이 돋기 전에 꽃이 먼저 피어 만개 시에는 나무를 온통 뒤덮어 꽃만 보인다. 그러니 꽃송이는 비록 여리고 작지만 서로 의지하듯이 세 네 송이씩 무리를 지어 아름답고 귀물답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인다. 벚꽃은 말하자면 그 작음으로 인하여 애틋한 마음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꽃이다.

벚꽃의 특징을 보자. 비바람이 내리칠 때마다 낱낱이 흩어지는 속성 그자체이다. 바람이 불 때는 꽃바람이 되어 흩날리고 비가 오면 꽃비가 되어 쏟아진다. 그럴 작이면 풍광이 하도 아름답고도 전격적이다. 사람들은 이때를 기해서 갑자기 깨달은 듯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자각하게 된다. 이때 남는 것은 한숨뿐이다. 천지간에 뒤끝 없이 사라지니 그 찰나성에 속수무책이고 좀 더 그 모습을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뒤늦은 후회다. 그 어여쁨에 넋을 빼앗겼던 마음에 비해 그 꽃 그녀의 무심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가슴앓이를 한다. 벚꽃의 속성은 그래서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찰나성이다.

 

남원보절미술제 개막식(인사말을 하는 김해곤 작가)
남원보절미술제 개막식(인사말을 하는 김해곤 작가)

3개 공중파 방송과 24개 언론매체가 주목한 보절미술제

보절미술제는 단 열흘 정도 임시 공간에 그림을 거는 미술전시회였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린 미술제는 박물관이나 여느 미술관처럼 든든한 건물에서 열린 것이 아니다. 1관엔 볏짚더미와 왕겨를 이용한 설치미술로 꾸몄고 제2관은 창작의 숲회원들을 비롯한 전국의 54명의 화가들이 출품한 83점의 그림을 걸었다. 3관은 학생 224명의 글.그림과 400 여 명의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다. 면사무소 근처 빈 점포를 비질하고 닦아 참가자 11인의 서각 갤러리로 또 다른 점포에는 그림 책방을 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단 열흘 동안 한시적으로만 기능(技能)한다. 농한기라서 잠시 비어 있는 비닐하우스를 빌려서 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점이 다른 미술관들과 다르다. 미술제의 주체도 풀뿌리 농민들이다. 지역도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는 남원의 보절면 황벌리 은천마을 일대다. ‘보절미술제에서는 여러 가지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보절미술제는 기존의 미술제나 전시회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1년에 단 열흘 동안만 열리기에 매우 제한적이다. 그야말로 딱 열흘 동안 빌려 쓰는 한시적인 공간이라는 점도 다르다. 그것도 비나 우박이 채풍이 들이치면 지붕이 날라 가고 하우스를 받치고 있던 지주대가 와장창 무너지는 판이라서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임시적인 공간이다. 1년 중 단 열흘 동안만 관람이 가능한 하우스미술관, 이점이 보절미술제의 특성이다.

3개 공중파 방송과 24개 언론매체가 주목한 이유는, 보절미술제가 보절면 전체를 합해도 인구가 1370명뿐인 한미한 곳에 총 835가구 중 67.2%가 농가로 분류되는 특성을 주목했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은천마을의 비닐하우스 3개동에서 시작했으니 정말 몇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 점일 것이다. 사람 몇 안 되고 열악하기조차 한 시골 그것도 농민 소유의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했으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말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미술제는 작년에 출발했고 올해도 잘 치러냈다.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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