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가 탄생하는 조각들, 고영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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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연장인 목공구를 몰래 가져다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했던 고영환 조각가는 195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일반과 소묘를 공부한 후 양평군에서 운영하는 목공예 교육센터에서 비로소 현대조각을 배우게 된다. 당시 교육센터는 지방문화재와 인간문화재 등 문화재급 인재를 다수 육성한 유명한 곳으로, 이후 부산과 천안에서의 조각가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

우연히 놀러간 부산에서 잠시 머무르던 그는 83년 ‘부산미술대전’에서 구상조각으로 여인상을 표현한 <象-A83>으로 특선을, 86년 ‘전국실기공모전’에서 <잉어동자>가 당선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고, 부산에서 천안으로 거주지를 옮겨 독립기념관에서 2007년까지 20년 넘게 ‘목조각 및 체험교실’을 운영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환경미술대전’에서 <Bloo-ming>이 최우수상에 선정된다.

자신만의 작품세계의 확장과 구축

활동 초기 구상계열 작품 중심이던 작품세계도 반구상과 비구상으로 확장되게 된다. 이와 같은 세계관을 변화는 있는 그대로의 형상을 벗어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 나름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보하게 된다. 물론, 세계관의 확장에는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듯이 실험작품을 발표하면서 개인적인 방황과 비판적인 평론에 직면하기도 한다. 한번은 작품에 오방색을 채색한 일로 큰 비판을 받아 작품활동에 대한 의지가 꺾이기도 했지만, 이후 뉴욕 개인부스전에서 <Bloo-ming>계열 작품 7점이 판매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물질에는 영속적인 가치가 있으며, 이를 발견하고 발현해내어 관람하는 이들과 물질의 사이에서 작용을 이루어내는 것이 곧 작가의 업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는 그의 블로그 대문에 ‘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태어나지 못하는 조각들’이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물질과 물질이 만나서 삶을 이루게 되지만 각자의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삶을 함축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2013년 ‘대한민국환경사랑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가족사랑>은 폐콘크리트를 재활용한 작품으로 사회적 이슈를 던지면서도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일면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주변에 버려지거나 우연히 구할 수 있는 소재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도치 않았던 삶이 주는 기회와 의미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 2차 접종 부작용으로 심한 고생을 하면서 그가 빠져든 것이 디지털 아트였다. 처음에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이나 보내자고 시작한 것인데, 디지털 아트의 표현성이 입체에 비해 광범위하고 자유스러워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모든 작품활동이 설레기 때문에 개인생활과 구분 지을 수 없지만, 가끔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들 때면 음악이나 영화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2007년 사업 실패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청년사업가가 당시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아 생각을 바꾸게 됐고, 이러한 사실을 이후 다른 전시회 뒤풀이 자리에서 그 청년사업가가 사연을 밝히면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누군가의 작품 하나가 한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2020년에 이어 2022년에도 전시회를 통해 구상과 반구상 작품을 선보였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최근 예술인에 대한 실제적인 지원이 축소되면서 예술인들을 상업예술로 치우치도록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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