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개 시·군 전국마을미술프로젝트 총감독, 김해곤 작가가 펼치는 넓고 굵직한 발자국

김해곤 작가

  • 입력 2023.11.03 13:28
  • 수정 2023.11.04 11:48
  • 기자명 박정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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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곤 작가가 달리고 있다. 장거리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마라토너처럼 그만의 시간표를 차질 없이 채우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다. 마라토너가 42.195km 구간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과 지구력, 스피드와 경기를 끌고 나가는 자질 등이 필요하다. 한편 선수 앞에는 오르막길 내리막길 바람길 등 그야말로 온갖 형태의 길이 놓여있다. 이럴 때일수록 선수들은 각 구간의 특징에 맞춰 자신만의 주법과 대처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서야 결승점까지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달려 결승점에 닿은 선수라 할지라도 발군의 실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안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참신한 영감과 허물어지지 않는 투혼이 필요하다. 작가는 또 작품을 구현할 수 있는 그림 실력을 두루 갖추고서야 비로소 작품 제작에 임할 수 있다. 예컨대 해당 분야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바탕 삼고 꺾이지 않는 투혼과 창발성 넘치는 작가 고유의 영감을 투여할 때 명작·명화가 탄생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존립하는 한편 미술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내적 진리를 향한 전진과 영혼의 고양에 이바지하는 가치를 지닌다.

김해곤 작가는 오늘날 화가, 설치미술가, 미술기획자로 불린다. 김 작가는 어떤 경로를 거쳐 이러한 이력을 쌓게 되었으며 그만의 작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쳐왔는지 11월 3일부터 열흘간 ‘보절비닐하우스미술제’가 열리게 될 전북 남원으로 찾아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보절비닐하우스미술제에 관해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개최되는 미술제인데요. 비닐하우스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농민과 지역민 중심의 미술제입니다. 농작물을 심던 비닐하우스가 때마침 가을걷이로 인해 잠시 공간을 비우는 틈을 타 미술관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차분하게 설명하는 김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호수 위의 윤슬처럼 빛을 뿜어내는 그의 눈빛이 청량하기만 하다.

김 작가는 작년처럼 보절면 소재지 일원과 황벌리 일대의 비닐하우스 3개 동을 비롯한 유휴공간과 함께 ‘논길 따라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논길에서도 미술품을 만날 수 있도록 수많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논길에 설치될 이들 조형물은 볏단, 마대자루, 삽자루, 리어커, 경운기 등 보절 지역의 농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까지 활용하여 지역 예술가들의 자문을 받아 25개 마을주민이 직접 제작에 나선다.

새로운 시도, 비닐하우스미술관

비닐하우스 3개동에는 ‘남원 3미(米, 美, 味)’ 즉 쌀(米), 아름다움(美), 맛(味)을 주제별로 펼친다. 제1전시관 미(米)에는 행사 방문자센터 및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체험 교실을 운영하고, 제2전시관 미(美)에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특히 2021년에 결성된 ‘작가의창작숲’ 회원들과 전주와 남원을 비롯한 여러 지역 작가들의 출품작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또한 제3전시관인 미(味)에서는 초‧중‧고생들의 그림글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한편으로 ‘문화쌀농’을 운영할 계획인데 보절면사무소 뒤 농협창고를 이용한 일종의 농부박물관으로서 주민 100여 명의 삶에 얽힌 추억을 담아 꾸밀 예정이다. 이밖에 창고갤러리 옆 마당에서는 먹거리 장터가 운영되고 지역농산물 판매도 곁들인다. 전시회 내용은 회화(미술)전시, 사진, 조각, 영상, 설치미술 등이 총망라되어 구성될 전망이다.

특기할 점은 농사로 잔뼈가 굳은 보절면 황벌리 은천마을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풀뿌리 미술제라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미술제의 구경꾼이 아니라 조형물 제작에 직접 참여하여 전시까지 하게 되겠기에 도농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당사자이자 매개자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왜 남원인가, 노인을 위하여!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습니다. 고향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남원만의 포근한 정서와 문화적 매력이 저로 하여금 남원 1년 살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굳히게 했지요.”

사실 남원은 문화마을을 위한 ‘전국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에 3차례나 선정된 곳이라서 고 최명희 작가의 대하 장편소설 ‘혼불’을 배경으로 혼불 문화 미술 마을 조성의 일환으로 ‘피어라 매화낙지(梅花樂地)’프로젝트와 남원의 옛 서도역 일대에 ‘Com-서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김 작가는 감독 업무차 이곳을 여러 번 들리게 된다.

“어느 날이었어요. 동네 어르신과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90세 촌로께서 공터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을 가리키더니 ‘살면서 정부로부터 혜택이라고 받아본 것은 저것이 처음일세(…)’ 하시는 거예요. 이에 제가 여쭈었지요. ‘어르신 그림 전시 그런 거 보신적 없으세요? 저랑 미술관 구경 한번 가실래요? 제가 어르신 모시고 미술관 구경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릴게요.’” 내심 반색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고 있던 김 작가에게 돌아온 것은 “나랑은 상관없다”라는 거절의 말이었다. 김 작가는 눈앞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저 안에 그림을 전시한다면 보러 오실래요?” 하고 다시 한번 말을 건넨다. 그러자 노인은 “못 갈 것 없지. 저곳이라면 100번이라도 갈 수 있네.”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김 작가는 결심한다. ‘봄에는 작물을 재배하는 저곳을 가을에는 문화를 재배하는 곳으로 만들자.’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미술제를 여는 계획이 알려지자 보절면발전협의회와 기초생활거점위원회 그리고 보절면사무소가 적극 나서준다. 여기다 전라북도에서도 지원금을 보내주는 등 우군이 돼줬다. 특이한 콘셉트의 전시회라면서 언론들도 관심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스포츠서울이며 전북일보를 비롯한 24개 매체에 기사화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김 작가의 발자취

작가는 늘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갖길 원한다. 이른바 남들이 보기에는 불편하고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시선이다. 편하고 익숙한 것에 매몰됐다가는 복제품과 같은 식상하고 진부한 작품 밖에는 생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기를 쓰면서까지 낯설지만 늘 새로운 것에 목을 매게 된다. 김 작가는 1991년 홍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여러 차례 결이 다른 작품 경향을 선보이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인 이슈를 품으면서 대중들과의 접점을 이뤄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10여 년간의 반 추상 회화 작품을 멈춘 것은 30대 초반 21세기청년작가회의를 이끌며 <1998년 한강깃발전>을 열면서였다. 이어 공공미술로 강원 정선의 탄광촌에서 개최한 <탄광촌미술관>, 2002한‧일 월드컵공식문화행사인 <깃발미술제> 제주도 송악산 진지동굴에서의 <바람예술축제-결7호 작전> 그리고 서울시청 광장의 <광복 61돌 모뉴먼트프로젝트> 이에 더해 2009~2017년까지 전국 100여 곳을 대상으로 문화마을을 위한 <전국마을미술프로젝트>를 감독한 일이었다. 김 작가는 이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총괄감독으로서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오랜 기간 동안 전국을 누비게 된다. 이중 김 작가가 기획과 참여를 겸한 곳은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과 서귀포 유토피아로, 해남 우수영 마을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태껏 44회 이상의 주요 전시회를 기획하고 참가한 김 작가의 이력에는 개인전 16회에 2016년 10월 프랑스 노정-쉬르-마른 시청광장에서 <바람의 시-부표의 양면성>으로 해외 초대전까지 보태게 된다. 오늘날엔 11월3일 개막을 앞둔 남원의 <보절비닐하우스미술제>의 기획가로 헌신하고 있다.

화가, 설치미술, 대지미술, 공공미술 기획자

“전업 작가로 나선 지 32년째입니다. 시대정신과 지향점에 따라 작품의 경향과 메시지도 변하게 되는데요. 반 추상 회화 작품을 멈추면서 캔버스를 벗어나고 미술관이라는 폐쇄적인 공간도 벗어나게 됩니다.” 야외전시장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톡톡 튀는 곳이다. 관람객들은 그림 뒤에 숨기도 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왁자지껄 감상평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그들에게 ‘시끄럽다’고 제지할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감상의 자유가 유쾌하게 번지는 곳이다. ‘미술은 사회구성원의 생활을 모태로 하여 드러난다’라고 주장한 김 작가의 작가 관과 기획 의도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가 설치미술을 통한 대지미술이며 지역민들과 함께 엮어가는 풀뿌리 미술축제에 천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후 열릴 남원의 보절면 소재지 일원과 황벌리 일대의 비닐하우스 미술관에서 펼쳐질 미술축제가 기대된다.

 

Profile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2023. 미술슈퍼마켓 총감독(서울 롯데마트 송파점)

2019~2020. 노송늬우스박물관(전주) 기획 및 프로젝트 참여

개인전 18회 - 설치미술 + 회화전

주요 공공미술 기획(개인+단체전)

공공미술(정부+지방정부) 및 프로젝트 총감독

전국 마을미술프로젝트 총괄감독 역임

제주대학교 강사 역임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강사 역임,

사단법인 21세기청년작가협회 회장 겸 초대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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