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중국 남경전쟁기념관(南京戰爭記念館), “남경대학살의 현장”

  • 입력 2023.10.04 15:24
  • 수정 2023.10.04 15:25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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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_김석기 작가
만리장성_김석기 작가

2003년 여름 중국의 남경 서화원에서 한․중 작품 교류전을 갖기 위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남경공항의 활주로에 도착한다. 의형제로 서로의 믿음이 깊어가고 있는 남경서화원 원장 주도평을 찾아 서화원으로 달린다. 고속도로 주변의 여유로운 풍경과 현대화되어 가는 모습들이 이미 중국이 한 단계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경시의 한복판에는 거대한 현무호가 있고 그곳에는 다섯 개의 커다란 섬이 있다. 그중에 하나인 취주섬에 남경서화원이 있다. 주도평과 나는 결속된 형제의 우애를 자랑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전시회를 개막하였다.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의 주도평을 만날 때마다 젊은 나이에 중국의 1인자가 된 그가 자랑스럽다.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중국의 문화정책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산 가는 길_김석기 작가

2003년 8월 12일 밤 호텔에 특별연회장을 마련하고 중국 서화 작가들을 초대했다. 순수하고 우둔한 묵감을 보여주는 이강(李强), 날렵한 필치로 여인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허회화(許懷華), 산수와 인물을 폭넓게 넘나드는 장위(張偉), 대담한 묵의 필치로 대범함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미모의 서예가 손효운(孫曉雲), 인물의 철저한 묘사력으로 기초를 강조하는 백발의 진국랑(秦國浪), 백묘법의 담백함으로 개성적인 그림을 그리는 주신건(朱新建), 집요하게 동물의 세계를 파고드는 호금산(胡金山) 등 남경서화원의 작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은 뛰어난 창의력과 개성으로 남경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성격과 작품성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리만큼 우리는 친숙해졌다. 그동안 친해온 우정으로 맺어진 중국작가들과의 만남은 만날 때마다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언어의 불편함을 넘어 즐겁기만 한 밤은 깊어만 간다. 술에 취한 중국작가들의 흐트러지는 모습들이 옛날 왕희지가 난정에서 만났던 벗들과 술을 나누며 시를 읊고 ‘난정서’를 썼던 그 순간과 무엇이 다를까? 물론 만날 때마다 단절된 언어의 벽을 느끼며 잔정을 나눌 수 없는 안타까움도 많다. 주도평은 ‘정은 말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지 말라고 한다. 

중국의 장강에서_김석기 작가

술에 취해 흔들거리던 남경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다시 새아침을 맞는다. 남경의 동쪽 자금산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현무호에 짙게 드리운 아침안개가 햇살에 옷을 벗는다. 신선한 하루가 상쾌하게 시작된다. 녹색의 숲들로 뒤덮인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 속에 민족의 지도자 손문 선생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중산능이 있다. 멀리 남경을 끼고 흐르는 장강에는 6,700m의 대교가 출렁이고 그 아래로 강폭의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물굽이가 유유히 흐른다.

남경은 오나라의 손권이 도읍을 정한 이래로 역대 10개 왕조와 정부가 도읍을 정한 곳이다. 명대에 만들어진 당시의 성벽이 지금도 남아 그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신해혁명 이후 1912년 손문선생도 이곳을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수도로 정했다. 

총통부에서 중산 손문선생이 생전에 집무를 보던 사무실을 들여다본다. 검소한 생활 분위기로 중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좁은 방에서 손문 선생의 체취를 느낀다. 옆에는 장개석 총통의 방도 있다.

남경은 1937년 일본군이 대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남녀노소 30만의 중국인을 악랄하게 학살한 일본인들의 만행이 아직도 전쟁기념관에 생생하게 유골들의 처참한 모습들로 남아 그 당시의 아픔을 전해준다. 

천자산의 기암_김석기 작가
천자산의 기암_김석기 작가

전쟁기념관 정문에 쓰여 있는 강택민 주석의 ‘청소년교육장’이라는 붉은 글씨와 ‘도살현장’이라는 글귀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사연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1937년 12월 13일 오후 일본군이 남경에 진입하면서 무차별적으로 피난민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면서 남경은 시민들의 신음소리와 얼룩진 핏자국으로 온 시가지가 지옥으로 변하고, 악마와 같은 일본군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1938년 2월 9일자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일본군 초급장교의 살인게임에 대한 기사가 있다. 누가 먼저 100명을 죽이나 친선게임으로 하자는 천인공로 할 ‘무카이도시이키’와 ‘노다다케시’라는 두 장교의 이야기다. 두 장교 모두 백 명을 넘는 사람들을 사살했다는 기사와 함께 ‘노다다케시’는 1,000명을 목표로 하는 게임을 다시 하자는 제안을 ‘무카이도시이키’에게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물론 전쟁 후 전쟁범으로 총살형을 받았지만 일본인이 남경에서 자행된 30만 명의 대학살은 중국 역사 속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일본사람들이 어떤 사죄를 한들 그 빚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기념관의 유리방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유골들이 지층을 이루어 눈뜨고 들여다볼 수가 없다. 어린이도 여인도 앙상한 뼈로 겹겹이 쌓여있다.

이제 슬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는 남경사람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남경시의 한복판에 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지고, 차량과 도시의 풍경이 화려하게 그리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다. 자랑스럽고 부자로 변신하는 남경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는 아우 주도평이 그의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남경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황산비취계곡에서_김석기 작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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