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예계의 거목

  • 입력 2013.12.19 14:24
  • 기자명 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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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조수호(東江 趙守鎬) 서예가

[피플투데이 정혜미 기자]= 올곧은 신념과 예술을 향한 집념으로 85년간 서예에 천착해온 동강 조수호 선생. 그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서예가로서, ‘마음이 바른 사람은 筆法(필법)도 스스로 바르다’는 심정필정(心正筆正)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도(道)를 구하듯 한평생 붓글씨에 매진해왔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10월의 오후, 한국 서예의 맥을 지키며, 서단의 활성화를 위해 저변확대 및 후학양성에 공헌해온 동강선생을 찾아 묵향을 오롯이 드리운 예인(藝人)의 고결한 삶을 조명해 보았다.

“서예는 접의 예술, 붓 끝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느껴야 한다”
 한국 서단의 최고 어른으로 추대 받는 동강선생은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했다. 그는 몇 해 전까지 ‘팔순청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임서에 매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동강선생이 이토록 서예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굳은 집념과 의지, 그리고 서예를 향한 끝없는 애정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동강선생이 이룩한 업적과 명성은 실로 대단하다. 그의 삶은 서예의 국제적 교류 및 가치 위상을 높였고, 그간 이룩한 독자적인 작품세계는 국가를 대표하는 한국 서예의 ‘얼굴’이 됐다. 

동강선생은 “서예는 접의 예술이다. 붓촉 끝이 지면에 닿을 때 그 접촉에 무한한 생명력을 느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맞춤 하듯 붓이 나아가는 일점일획마다 빛이 나고, 산들바람이 불고, 불멸의 꽃이 필 것이다”라며 서예술에 대한 철학을 밝힌 바 있다.
일찍이 동강선생이 주창한 ‘맛있는 글씨’, ‘매력있는 글씨’, ‘현대성있는 글씨’, 예술성 있는 글씨’ 등 현대 명필 4대 요소에 대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맛있는 글씨를 써야 서예의 대가가 될 수 있다. 맛있는 글씨는 신비롭고 오묘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글씨를 쓰는 이나 보는 이나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 점과 획이 제자리를 얻으면 화목하고, 점과 획이 생명력을 얻으면 운치와 호소력이 있어, 유현(幽玄)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고 말했다. 더불어 동강선생은 “작가는 한 유파에 고정되지 말고, 옛 대가들의 서체를 두루 섭렵해야 하며, 그 장점을 집대성하고 묘용(妙用)하는 독자성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맛을 조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글씨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며, 서법은 기(技)가 아닌 도(道)로서 가치 추구의 진실을 체험해야 한다”라며 매력적이고, 현대적이며 예술성이 있는, 맛있는 글씨를 쓰기 위한 작가의 독자성에 대해 강조했다.

미술평론가 이규일씨는 “동강의 서예작품은 독자적인 행서(行書)가 특징이며, 이 글씨를 서단에서는 ‘비운유수(飛雲流水)’ 같은 동강체로 일컫는다. 동강체의 장점은 격이 있고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또한 서양화를 전공한 서화가여서 그런지 문인화도 품격이 있다”고 평했다.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예술가가 되기에는 선택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결코 작품이 쉬운 건 아닙니다. 진실을 깨우쳐 주고 양심을 건드리는 작품이라야 진정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진실 되어야 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뜻이죠.”
동강선생은 서예의 기본을 학문에 두고, 그 방법을 인품과 덕망에서 찾는다. “위대한 인간의 글씨만이 역사에 남는다”고 믿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동, 서의 풍부한 안목을 갖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
동강선생은 경북 선산 출생이다. 5세 때부터 붓을 잡았으며, 묵객이 드나드는 집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묵향에 젖어들었다고 회고한다. 동강선생은 일정 때 수재들이 모여들었던 대구사범 심상과를 나와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서예로 전향했다. 이에 동강선생은 “서양철학을 공부해야 우리의 것이 더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예술철학과 창조정신에 다채로운 가치관을 수용, 흡수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소리를 내기 마련이듯, 서양화 공부는 지금의 작품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대학시절의 탐구는 틀에 박힌 붓글씨에서 벗어나 동, 서의 풍부한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뜻있는 과정이었음을 밝혔다.

학창시절부터 붓글씨에 소질을 보였던 동강선생은 대학 1학년 때 제 1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는다. 이후 국전 6, 7, 8, 9회 연 5회 특선을 기록하며, 36세 때 최연소로 국전 심사위원 대열에 올라섰다. 1974년 국전 초대작가상 수상을 비롯해 국전 운영위원, 국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동강선생은 국제적으로 활동했다. 1960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미술학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1978년에는 중국 문화대학, 작전대학, 예술전문학교에 초청을 받아 서법 특별 강연을 했다. 또한, 그는 1962년부터 1985년까지 한국 문교부 중학교, 고등학교 미술교육과정 심사위원직을 담당했으며 동시에 1968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교육대학 교수로 재직해 후학양성에 기여했다. 동강선생의 역사적인 공로는, 아세아 현대 서화 명가 연합회전의 대회장으로서 1, 2, 3회에 걸쳐 개최한 업적을 꼽는다. 그는 1986년 첫 개인전 이후 21년 만인 2007년에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제 2회의 개인전을 갖고, 200여점의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동강선생은 한국국제서법연맹회장, 한국서가협회 공동회장, 한국예술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주현대미술관 저지예술인마을에 입주해 서도(書道)에 정진하고 있다. 

매사에 진실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붓글씨에 매진하는 동강 조수호 선생. 그의 땀과 정성이 담긴 작품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더해 후세에 값진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국내 서예계의 활성화를 선도하는 중핵으로서, 모쪼록 건강을 유지해 찬란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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