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유아 돕기 운동 통해 새로운 희망과 믿음의 밀알 뿌릴 것”

  • 입력 2013.12.17 18:31
  • 기자명 이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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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자|지성웰빙의원 원장 / 사랑요양병원 원장 / 의학박사 / 대한의사협회 고문

[피플투데이 이문중 기자]= 그간 범지구적인 의료봉사활동과 모범적 여성리더로서 의료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문용자 박사가 이제는 북한 영유아를 위한 희생적 행보를 시작해 주목받고 있다. 이미 이념과 인종,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애 본연의 인술을 펼치고 있는 문용자 박사는 부천 참빛교회에서 열린 북아해 사랑단 이사회에서 초대회장으로서 희생 사역을 부여받았다. 문 박사는 앞으로 나진·선봉을 거점으로 연변/평양과기대 등과 함께 북한 어린이들의 기아대책 마련을 위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매년 수 만 명씩 기아로 사망하는 북한 영유아을 돕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는 문 박사. 언제나 봉사와 기도의 자세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헌신의 길을 걸어온 그를 찾아 가치 있는 삶의 조건과 앞으로의 봉사 계획에 대해 인터뷰했다.

순수 의료지원 및 기아 해소를 위해 설립된 ‘북(北) 아해 사랑단’
최근 문용자 박사는 북한 영유아를 돕는데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북아해사랑단’의 초대 회장으로서 무겁고 힘들지만 숭고한 사명을 받아 봉사 여정의 끝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북아해사랑단’의 회장을 맡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한 뒤안길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죠. 그러나 ‘현 정부 및 통일부와의 긴밀한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문용자 뿐’이라며 연변/평양과기대 김진경 총장과 유신일 부총장의 끈질긴 설득과 부탁에 의해 회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그간의 고된 봉사 여정으로 많이 지쳤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실 복된 사업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며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을 결심했습니다”라며 겸손하지만 열정 가득한 소감을 밝힌 문용자 박사는 이어 ‘북아해사랑단’의 소개를 이어갔다.
“‘북아해사랑단’은 연변/평양과학기술대학교 이사회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산하의 기구입니다. 북한 어린이를 돕는데 집중하는 단체로서, 연변/평양과기대는 1990년 초부터 꾸준히 북한 어린이를 도와온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연변/평양과기대는 10여 년 전 북한 나진·선봉지구에 약 500여명 규모의 ‘라선 어린이집’을 건설, 본격적으로 북한 어린이 구호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지금도 함경북도, 양강도, 나선시 등 지역에 209개 시설, 약 3만 4천여 명의 북한 어린이에게 꾸준히 식량과 각종 생활 필수품을 지원해오고 있다.
“본래 제가 북한 영유아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건 1978년 소망교회 개척 당시였습니다. 연변/평양과기대도 개척 12년 후 교회의 지원으로 건립됐습니다. 당시 소망교회 의사 장로와 권사 부부가 평생의 소망으로 고아원 설립을 부탁하며 거액을 기탁했고, 건립 후에는 연편/평양과기대 교수들과 교직원의 지원으로 고아원과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에 자생적인 영유아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 문용자 박사는 북한 어린이들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말을 이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북한의 열악한 실태에 대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고 있지요. 우리 정부도 한동안 대규모의 쌀과 자금 지원을 했었지만, 이런 지원들이 북한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고 오히려 대남 도발을 위한 군자금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우려 때문에 이명박 정권 때부터 대북 지원에 인색해졌죠. 저희 ‘북아해사랑단’은 순수하게 북한 어린이를 돕는 단체입니다. 통일부에서도 영유아 지원에는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시하고 있으며, 국내 봉사단체들에게 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NGO들이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저희의 경우에는 연변/평양과기대 졸업생들과 교직원을 통해 부족한 식량과 구호물자를 직접 북한 영유아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타 단체들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북아해사랑단’은 이렇듯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헌신적인 방법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국제적으로 희생적인 의료봉사활동을 지속해온 문용자 박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기에, ‘북아해사랑단’의 활동이 더 적극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 박사 장녀 신혜정 박사 피아노 독주회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온정의 손길로 가득’
지난 8월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신혜정 피아노 독주회 ‘리스트와 함께 떠나는 순례 여행’은 수익금 전액을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기탁하는 취지로 열려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은바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인 피아니스트 신혜정 박사는, 문용자 박사의 장녀로서 그의 종교적 열망과 모친의 희생봉사정신을 빼닮은 듯하다. ‘Invocation 시작기도 (1847)’, ‘ Pater Noster 주의기도 (1853)’, ‘Apres une Lecture de Dante 단테의 신곡을 읽고’, ‘Fantasia quasi Sonata (1858)’, ‘Les Jeux d'eau a la villa d’ Este - 에스테 장의 분수 (1877)’, ‘Sunt lacrymae rerum - 헝가리풍의 비가 (1872)’, ‘Marche funebre - 장송곡 (1867)’, ‘Sursum Corda - 마음을 정결하게 올려드리는 기도 (1877)’ 등 리스트의 연주곡 중 종교적 엄숙함과 성스러움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Poetic and Religious Harmonies 시적이며 종교적인 선율’, ‘Years of Pilgrimage Second Year : 순례의 해 (제2년)’과 ‘Years of Pilgrimage Third Year : 순례의 해 (제3년)’의 세가지 테마로 묶어 연주했다. 연주 후에는 직접 관객들에게 이번 연주회의 취지를 설명하는 한편 북한 어린이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그들이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남다른 예술적 아우라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제 딸 신혜정 박사의 연주회를 통해 약 1100만 원이 성금으로 적립됐습니다. 이는 즉시 동북아재단에 전달됐고, 북한아이들 1000명에게 약 한 달간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성 겸비한 의료봉사정신의 상징
경북 달성 현풍 출생인 문 박사는 6.25전쟁이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성장한 과정을 목격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는 경북여고 재학 당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이후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 ‘한미장학재단 장학금’으로 6년을 마친 뒤 스칸디나비아 재단인 국립의료원 내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문 박사는 의사로서 물질의 부유나 사회적 명예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삶에 관심을 두었다. 1976년 배 밭으로 우거진 강남 압구정동에 개원하면서 인술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서울시의원에 출마해 최초의 여성시의원으로 당선돼 오늘날의 강남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45년 동안 라오스 최북단 우등사이 마을에서부터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및 남미의 파라과이 아스콘 빈민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22개국을 돌며 의료봉사를 펼친 그는 지난 1990년 하노이 주위 석산마을에 의료사업체인  RED CROSS SUNNY KOREA CLINIC을 설립, 후원회장으로서 캄보디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를 향한 선교 활동과 의료 봉사를 열정적으로 펼쳐왔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심을 통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경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일을 소명 삼아 자신의 의술이 선용될 수 있는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2007년 전 세계 의료시설이 부족한 곳에 인술을 펼치는 ‘그린 닥터스’를 설립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린 닥터스는 국제적 재난지역과 국가재해, 대형 인명사고 등 응급 의료 구급체계가 필요한 곳에 의사들을 파견한다.
 문 박사는 “그린 닥터스 공동대표로서 그동안 중국 쓰촨성 지진과 미얀마 쓰나미 재난 때도 의료팀을 가장 먼저 파견하는 등 큰 역할을 앞장서서 감당했다”며 “베풂과 나눔의 미덕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일은 국가발전을 위한 참된 봉사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부터는 개성공단 남북 협력병원 진료를 맡고 있기도 하다. 6.25전쟁 직후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경제 지원을 받은 국가로서 더 어려운 국가에게 이를 되돌려 준다는 마음 가짐으로 개성지역에 위치한 제3차 종합병원에 의료지원을 하고 응급환자를 위한 ‘남북통일병원’을 건립하는 등 통일에 일조하는 의료봉사에도 매진하고 있는 것. 그는 “100년 전 서양의료 선교사가 문맹퇴치와 의료시설로 생명을 구했듯 의료봉사를 통해 통일의 지름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년에는 필리핀과 중국 심천, 캄보디아 등지에서 수백명 환자에게 무료 검진과 의료상담을 실시하고 20대 한중 청소년들과의 상호 기술교류 방안 등을 논의했다. 본 의료 봉사는 대한기독여자의사회가 주관하는 제8차 중국단기의료선교활동의 일환으로 벌써 8년째 문용자 박사가 직접 이끌어오고 있다.

소외된 노인들의 안식처 ‘사랑요양병원’
평소 문용자 박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인술을 배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받아왔다고 한다.
“의사인 동시에 병원을 경영해나가는 입장에서 돈 없는 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부담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이 현실적인 부분에 불과하고, 저는 의사로서 본분에 충실할 생각이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저 전문성을 활용해나갈 생각입니다. 이번에 개원한 사랑요양병원도 저의 꿈과 비전을 실현할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어려운 노인 분들을 위한 의료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1970년 경 문용자 박사의 부군인 신요철 박사는 열악한 영등포 지역에 종합병원을 설립하고 의료봉사를 펼쳤었다. 매우 의미 있는 당시 건물에는 현재 노인들의 치유 시설인 ‘사랑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사랑요양병원은 문용자 박사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안식처이자 치유공간으로서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영등포에서 우수한 의료진과 다양한 재활치료 시설 및 체계적 의료서비스로 소외계층 환자 모두에게 희망과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 재활치료팀, 양·한방 협진 체제, 지속적인 환자 상태 관찰, 베테랑 간호사와 쾌적한 시설을 갖춘 사랑요양병원은 치매 등 각종 노인성 질병을 경감하고 회복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랑요양병원의 발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밝히는 문용자 박사에게서 요양병원에 대한 각별한 열정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용자 박사는 항상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선교사들처럼 해외에서 봉사하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애틋한 봉사정신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금년 5월 하버드 대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손자가 “할머니께서 아프리카, 파라과이 등에 뿌린 봉사의 철학을 이어받아 인류애를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며, 자신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은 가족들, 특히 목동 이화의료원 정형외과 교수이자 진료 협력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상진 교수의 정신적인 지지와 응원이 있기에 힘을 얻고 있음을 밝혔다. 이렇듯 작은 것에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문용자 박사는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봉사의 마지막 꿈을 펼치며 주님께서 부여하신 의료선교 소명을 마지막 순간까지 펼쳐나가고 싶다며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종교적 열정과 충실한 의사정신으로 평생을 헌신해온 문용자 박사. 그의 기념비적인 봉사 업적이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돼, 남북 통일에 있어 소중한 반석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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