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과 색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한국적 이미지…신종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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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과 색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한국적 이미지
한국적 이미지를 향한 쉼 없는 정진 ‘자연의 소리’


신종섭
화백

거대한 암봉들로 우뚝 서서 수 십의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는 북한산. 그 자락에 자리한 신종섭 화백의 작업실은 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난 넓은 창 너머로 햇살이 풍성했다. 마치 북한산의 기운이 작업실 안으로 넘쳐흘러 들어오듯이 말이다.
뉴스보이캡을 멋스럽게 쓰고 온화한 얼굴로 맞아주던 그에게선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커다란 산처럼 푸근함과 넉넉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간결하고 힘 있는 목소리와 말투에선 산을 타고 흐르는 커다란 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그는 산을 닮아 있었다.

서정성 짙은 반추상의 세계에서 ‘산의 소리’로
신종섭 화백은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으로 가득했고 그것들은 언제나 그의 안에서 용솟음 치고 있었다. 그래서 교단을 떠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한 그의 재능과 열정을 꽃피워 나가기 시작했다.
신종섭 화백의 60년대 작품들은 한국의 정서를 담은 반추상 계열의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경향은 홍익대학교 시절의 서정성 짙은 반추상의 세계로부터 시작된다.

『 1962년 5월 “지금 뒷산에서 꾀꼬리가 우네. 점심시간이라 학생 전원이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한가로이 담소들을 하고 있네, 참 아름다운 평화로운 정경일세. 우리 미술학부 교수실에는 자네가 두고 간 그림이 정면에 걸려 있다네. 자네 작품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네. 어디 꼭 붓을 들어야만 작품이 되겠나? 예술이란 정신적 준비 기간도 있는 법이니 장차 군의 군복무 생활이 살이 되고 피가 될지도 모르는 굳센 정신 훈련이 있기를 바라며 우리 학생들도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네.”
1962년 8월 “교정엔 자네의 후배들이 꼭 차 있고 가을 꽃들이 그 중에도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네. <중략> 예술에의 꿈은 못 견디게 고독의 골목에 있을지도 모르네. 부디 명랑하고 아름다운 꿈을 잊지 마소.” 』

육군 101보충중대 이등병 시절 수화 김환기 선생이 아끼는 제자에게 보낸 격려 편지글이다. 신종섭 화백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깨닫게 하는 감성 변화의 계기에는 이렇게 그를 아꼈던, 타계하신 수화 김환기 선생이 있었다.
그는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풍경, 정물, 인물, 누드 등을 고루 폭넓게 섭렵하고 다양한 양식을 천착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찾아갔다. 이런 그에게는 항상 화가로서의 강한 실험정신과 주변의 현실과의 충돌과 대립이 그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추상적인 추상회화를 답습, 모방, 재창조 하는 행위가 미술 흐름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신종섭 화백은 추상회화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평범한 풍경화가로 머물 것이냐 하는 갈등과 고뇌는 끊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추상화와 풍경화를 동시에 수용할 수 없을까 하는 물음에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그 절충적인 방법의 선택은 ‘풍경화와 색면 컴포지션의 접목’이었다. 그 접목을 과감히 자신의 양식으로 정착시키기로 결심하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986년에 시작된 ‘붉은산’의 풍경화이다. 풍경화이면서 추상회화이고, 추상회화이면서 풍경화인 셈이다.

신종섭만의 이미지로 재탄생한 산과 그 소리
많은 대상물중 신종섭 화백이 산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우리의 것들 중 다른 민족의 것과 다른 고유성과 오랜 역사를 함께 이어온 항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창작의 방향에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산에는 소리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냥 산이 아닌 ‘산의 소리’인 것이다.
그 ‘소리’의 의미를 신종섭 화백은 대화를 통한 소통이라고 말한다. 산이라는 가시적인 피사체의 객관적 외형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산과의 대화를 통한 창작 과정에서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작가만의 산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산의 소리’라는 주제로 1990년부터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다양한 산을 연작 형식으로 화폭에 담아왔다.
신종섭 화백의 주관적인 산의 특징 중 하나는 원근을 배제해버린 과감한 평면기법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붓이 아닌 나이프로만 작업을 하고 그의 나이프작업은 작품의 평면화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앞서 말한 ‘풍경화와 색면 컴포지션의 접목’이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양식을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그의 산에는 아기자기한 산형이나 능선, 산자락, 계곡 등과 같은 모든 형상이 압축되어있고 생략되어 있다. 산을 표현함에 있어 장황하거나 구체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하나의 큰 덩어리로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극도로 클로즈업 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앞에 성큼 다가와 바로 눈앞에서 대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산과 자연의 장엄함과 웅대함을 더 없이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나무와 바위의 이미지를 곁들이기도 하지만 그조차 최소한에 그친다. 그마저도 산이라는 단순화된 커다란 덩어리를 떠올리는데 필요한 소도구로서의 역할이 전부이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보다는 산의 장엄함과 웅대함을 표현할 수 있는 단순화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조형미와 색채미의 울림 ‘자연의 소리’
신종섭 화백은 최근 수 년 동안 기존의 작업 ‘산의 소리’와는 다른,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하고자 변화를 모색해왔다. 그 변화는 전혀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획기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의 작업 자체를 부정하듯 전혀 새로운 조형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산의 형태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평면화 하고 청색과 붉은색 등의 강렬한 색채이미지로 표현하던 기존의 작업과는 어떤 연관성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롭다. 같은 화가가 산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두고 그처럼 전혀 다른 조형적, 색채적 해석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2010년경부터 시작된 연작 ‘자연의 소리’에 등장하는 산은 면이 아닌 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커다란 덩어리로 평면화 되어 보는 사람을 압도할 듯 강렬하게 화면을 채웠던 산은 화면 곳곳에 유려한 선들로 그 형태를 바꿔 부드럽게 채워져 있다.
그리고 작품의 색채에 있어서도 시각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기존의 작업이 원색적인 성향의 강렬한 색채이미지를 추구한데 비해 새로운 작업은 색상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물론 중간색 중심이다. 회색을 비롯하여 베이지색, 옅은 청색과 옅은 갈색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일까 시작적인 자극이 적을뿐더러 온화하고 차분하다는 인상이다. 이전의 작업이 넘쳐나는 열정의 감성적 표현이었다면 새로운 작업은 그 열정을 다스리는 이성적 표현처럼 느껴진다.
이전의 ‘산의 소리’가 클로즈업 이었다면 ‘자연의 소리’는 원경을 담아내는 롱샷과도 같다. 산의 크기와 배치에 따른 구도 뿐 아니라, 새, 꽃, 폭포, 해, 달, 구름 등과 같은 다양한 소재들의 등장을 보더라도 ‘자연의 소리’의 화폭 세계는 더 넓어지고 다양해져 있다. 아마도 세상을 바라보는 신종섭 화백의 시선이 더 넓어지고 여유로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자연의 소리’는 덜어 내는 작업이라고 한다. 색감을 덜어 내고 화면에 많은 것을 채우기보다 여백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적 이미지를 향한 쉼 없는 정진
신종섭 화백은 한국적 이미지의 표현을 위해 유화의 풍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이 아닌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산을 집중 탐구해 왔다. 그러나 그는 모든 동양화가 한국적이라는 ‘동양화=한국적 이미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양화 안에서도 한국적인 것, 한국적 이미지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오랜 그의 노력의 결과로 ‘자연의 소리’의 연작을 통해 한국적 이미지를 담아낸 작품들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우선 ‘자연의 소리’에서 조형적 변화인 선의 등장이 그것이다. 작품 속 유려한 선들은 처음 대면한 순간에도 오랜 시간 우리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던 선처럼 친근하다. 처마 선, 초가의 선, 옷섶의 선, 버선의 선, 옹기의 선 등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색채에 있어서도 우리 황토의 색, 기와의 색, 서까래의 색, 볏짚의 색 등과 같이 온화하고 따스한 색채들로 화폭에 물들어 있다.
그는 “요즘 대다수가 서구적인 것에만 심취하고 빠져있다. 개중에 한국적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정을 못 받고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어떠한 재료를 쓰든 어떠한 기법으로 그리든 작가의 냄새가 나야하고 한국적인 냄새가 나야한다. 그래서 다양한 한국적 이미지가 나와야 한다. 나 또한 한국적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계속 노력해왔고,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10년 이상 더 해야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산의 소리’에서 ‘자연의 소리’로 창작 전환점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신종섭 화백은 앞으로도 자신만의 한국적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갖고 작품 활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신진 화가 못지않은 열정으로 자신의 작품세계 완성을 위해 외로운 창작 활동에 정진하는 신종섭 화백의 향후 10년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우리의 선과 색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아름다운 한국적 이미지들이 세계인들의 마음속에서도 살아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신 종 섭  SHIN, JONG-SUP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1962)
·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초대전」
· 서울시 초대 「서울미술대전」
· 해외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필리핀, 중국, 호주, 몽골)
· 미술단체 「상형전」회장 역임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장, 조직위원 역임
· 「한국구상미술 원로작가회전」
· 개인전 24회
· 현재 : 한국미술협회 고문,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고문, 상형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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