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중국 하얼빈(Harbin),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하얼빈”

  • 입력 2023.07.31 19:59
  • 수정 2023.07.31 20:01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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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기암_김석기 작가
고산기암_김석기 작가

2008년 8월 8일 제29회 베이징올림픽의 막이 오르고,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장중한 서곡의 개막은 이 세상에 중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역사성과 시대성을 강조한 무서운 작품이었다. 
  
중국은 개방을 급속도로 진행하면서 세계를 주도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인건비가 싸다고 우후죽순 격으로 공장들을 세우면서 중국으로 들어갔던 나라와 기업들이 기술과 장비만을 중국에 제공한 채 이제 빈손으로 돌아서야 하는 시기가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메이드인 차이나'(Made in China)로 점유하는 중국의 강력한 힘은 이제 세계 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하얼빈가는 길_김석기 작가
하얼빈가는 길_김석기 작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위해 화해무드가 한창이던 1992년 여름 중국의 흑룡강성 미술관에서 초대전시회를 갖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김포국제공항에서 천진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수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주도 남단을 돌아 세 시간 이상의 비행 끝에 천진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주 가까운 곳을 멀리 돌아온 중국의 첫인상은 어둡고 두려운 암흑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었다. 천진에서 북경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였다. 시속 60㎞를 준수하며 달리는 기상천외한 달밤의 질주는 고속도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그러나 초췌하게 보이는 운전수의 옆모습에서 정직하고 진실 된 성실한 삶의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북경의 하룻밤은 길고 지루한 순간이었으나 북경의 아침을 밝히는 찬란한 태양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고, 중국을 지켜온 만리장성은 운해 속에서 그 장중한 모습을 드러냈다. 첩첩이 쌓인 산 능선 따라 연결되어 있는 만리장성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지 그 시종을 가늠할 수가 없다. 달나라에 가서 지구를 바라보아도 만리장성은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 규모가 크고 엄청나기도 하다. 이 엄청난 만리장성을 누가 누구의 행복을 위해 축조했단 말인가? 엄청난 역사의 오류를 만들어낸 옛 왕조들의 기가 막힌 폭력 앞에 분노를 느낀다. 대를 이어가며 만리장성 쌓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요 자신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순수한 중국인들의 피가 엉켜있는 만리장성을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이곳에서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달래기라도 해보려는 듯 조용히 스케치북을 편다. 좁은 스케치북 위에 만리장성을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스케치북 위에 순수했던 중국인들의 마음만은 그릴 수가 있지 않겠는가?

고산기암_김석기 작가
고산기암_김석기 작가

  
북경에는 중국의 거대한 스케일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재가 있다.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그것이 바로 중국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자금성을 헤매는 하루가 피곤하다. 자금성을 돌아보면서 중국의 건축, 공예, 회화 등 중국의 역사와 유물을 단번에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걸어 다녀도 다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는 거대한 자금성의 스케일 앞에 다시 한번 놀랄 뿐이다. 
  
북경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넘게 날아 하얼빈 공항에 도착했다. 하얼빈 공항은 시골 기차역을 연상하리만큼 초라하고 허술하다. 안중근 의사의 전설 같은 이야기와 그의 기념관이 있는 도시이다. 하얼빈 역을 찾아 안중근 의사가 이등방문을 저격한 그 현장을 보고 싶어 정거장으로 들어선다. 새롭게 건축된 하얼빈 역의 거대한 대합실에 수많은 인파들이 북적대고 있다. 어쩌면 피난민 수용소와도 같은 분위기다. 어찌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을까? 옛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롭게 축조된 역사(驛舍) 앞에서 흘러간 역사(歷史)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얼빈에서_김석기 작가
하얼빈에서_김석기 작가

 
하얼빈 거리의 건축양식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유럽풍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그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송화 강변에 있는 광장에 붉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천리마운동의 기수들을 주제로 한 역동적인 조각 작품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광장 한복판에 서서 이질적인 문화와 이념적 차이를 실감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바람 따라 펄럭이는 붉은 깃발 아래 송화강변에서 고기를 낚고 있는 어부들이 있다. 그들의 생활 모습이 옹색하고 사회적으로 어려운 경제 속에 있다는 분위기를 충분히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넉넉한 상상과 여유로움 속에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는 강태공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한국현대미술전’의 흑룡강성 미술관 개최를 중국 공산당 하얼빈 본부에 통보하였으나 수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이라는 국가 공식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여러 차례 교섭을 했지만 허사다. 결국 ‘한국’이라는 국명이 빠진 아쉬운 ‘현대미술전’은 공산당간부들과 미술계, 언론계 인사들이 함께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막을 하였다. 
 
언어의 불편함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초청해 준 흑룡강성 사범대학 노후순 부총장 부부에게 감사하며 일주일간의 하얼빈 체류를 마감하고,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순간이 되었다. 듬뿍 들어버린 정을 두고 선뜻 떠나기가 힘들어 안타까운 아쉬움으로 서로를 달랜다. 다시 만나는 미래를 기약하며 서로가 건강하게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노후순 부부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한 권의 성경을 건넨다. 기쁜 표정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부총장 부부의 손을 꼭 잡고 이 한권의 성경이 우리들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부총장 부부의 행복을 소망하는 기도를 한다. 

 

만리장성에서 김석기 작가
만리장성에서 김석기 작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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