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소년이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얻기까지…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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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뉴시스
사진=AP 뉴시스

한국의 소심한 소년이 아카데미 수상의 영예를 안다

제가 어렸을 때 마음에 항상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말입니다.
그의 첫 소감은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에 대한 마음의 고백이었다. 소심한 영화광이었던 소년이 세계의 거장들 속에서 202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봉준호 감독은 “저는 어린 시절 너무 소심한 나머지 집에서 TV영화를 밤새워 보며 감독의 꿈을 꾸었던 아이였습니다.” 
중3 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그의 다짐은 군복무를 마치고 연세대 사회학과를 진학하여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의 첫 단편 영화는 “백색인”이다. 산업재해를 소재로 노동자의 열약한 환경을 담아내면서 자신의 영화 안에 있는 사회적 문제를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졸업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충무로에서 조연출로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였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며 가정을 지키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 봉준호 감독은 사회에 대한 생각을 깊게 가졌을지도 모른다. 생활고에 영화감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에게는 가장 큰 조력자인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생활고에 어려웠지만 지속적인 내조를 통해서 지금의 봉준호가 세상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의 묵묵함과 내조가 세계의 영화감독으로 만든 것이다.  
 
봉준호 장편 영화의 시작  
2000년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를 통해서 IMF 직후 붕괴된 중산층의 불안과 우울증에 대한 내용을 통해 사회구조의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꼬집었으며 독특한 영화의 색이 나타났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하였지만, 봉준호 감독의 “봉준호 장르”가 되는 초석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가 담겨져 있다.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지만 그 문제를 어렵게 다루지 않고, 쉽고 날카로운 웃음을 추구했다. 그의 모든 영화는 스릴러 같은 철저한 상업 장르 영화의 틀을 사용하여 흥행 성적이 좋았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 550만 명”, “괴물”은 1091만 명이었다. ‘기생충’은 한국관객 1009만 명이다. 미국에서도 기생충 상영관 수가 3000개가 넘어가며 기생충의 인기가 점점 증가 되고 있다. 이미 9일 기준 영화수입 3547만 달러이다. 
가디언에서는 기생충 영화를 통해 “웃기고 정치적이며 뼈 때리는 한국 영화가 세계최고가 되다.” 라며 찬사를 보내며 기생충 영화는 오늘 날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음을 말했다.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상은 로컬이다."
미국 대중문화잡지 “벌처” 기자는 질문했다 “한국 영화는 왜 20년 동안 아카데미 상 후보에도 못 올랐을까요?” 봉준호 감독은 단 네 어절로 대답했다. “They are very local” 
아카데미상을 두고 지역영화제라고 일축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미국 영화계에 큰 충격을 넘어 아카데미상 자체가 자국 중심적인 영화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입담은 수상 속감에서 계속 나타났다.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1인치 장벽을 뛰어 넘으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 말은 보수적인 미국관객들이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특히 일부에선 올해 아카데미 측이 외국어상(Foreign Language Film)을 국제영화상(Best-international Feature Film)으로 고친 것을 두고 봉준호 감독의 입담에 의한 변경으로 보는 분석이 있었다. 

기생충의 충무로 사람들 
“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습니다.” 제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필름메이커와 스토리텔러에게 이 영광을 누리고 싶습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각본상을 공동수상한 충무로의 이야기꾼 한진원 작가가 있다. 극중 등장하는 운전기사, 가사도우미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 영화의 쫄깃한 대사를 직접 만들어내며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동행이다", "실전은 기세야 기세" 이다. 
한 작가는 아카데미 시상 뒤에 기자간담회에서 “자료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들을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불꽃이 일어나는 독특한 대사들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하나로 움직이고 있음을 자주 느꼈다.” 며 작업 내내 힘들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말했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공동프로듀서로 작품상을 받은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기생충의 첫 독자이다. “대표 자리에 올라 두 번의 실패 이후 만난 작품이 바로 A4용지 15페이지로 만들어진 ‘데칼코마니’이란 제목으로 지금의 기생충이었다며” 작품을 보면서 그 떨렸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곽대표는 시상상식에서 “상징적이며 시의적절한 역사를 쓴 기분이다.” 하고 소감을 밝혔고 이 상은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여성 최조의 수상으로 기록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메시지를 기대하다
2월 12일 봉준호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9년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과 2020년 아카데미 영화제 이후 다소 지쳐 보였지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그의 들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세계가 이제는 대한민국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처럼 그의 메시지는 세계를 강타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영화를 하나의 언어로 “1인 장벽을 넘으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영화가 이제는 봉준호 장르가 되어 세상에 새로운 메시지를 제시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을 만든 것이 아니다. 세계의 영화감독을 만들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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