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영혼과 심신을 위한 그대만의 5일 장(場)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l승인2019.08.21l수정2019.08.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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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퍼스트레이디 미셀 오바마는 그녀의 자서전 「비커밍 (BECOMING)」에서 변호사와 저자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오바마의 기괴한 습성을 소개한다. 그는 가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방에 책이 널린 공간을 필요로 했는데 미셀은 그곳을 ‘굴’이라고 표현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책을 읽고 쓸 수 있는 폐쇄된 공간을 말한다. 굴은 오바마에게 통찰이 태어나고 명료함이 찾아드는 일종의 성소다.

계몽주의 지성 몽테뉴도 38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포도주로 유명한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에 위치한 곳에 자신의 성채를 마련, 칩거를 시작했다. 성채의 탑 속 외딴 방에서 몽테뉴는 적어 내려갔다.

“루브르 궁전이나 군중 속에 있으면 나는 내 껍데기 속에 틀어박힌다. 외떨어진 곳에 외롭게 있으면 밖을 향한 내 시야는 크게 넓어진다. 나는 고독할 때 오히려 국가와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한다.”

세상과 분리된 자신만의 굴에 들어앉아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고 집필에 몰두했다. 그는 <수상록>에서 “자기 한 사람만의 궁전을 차릴만한 곳, 몸을 감출만한 곳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그 신세가 참으로 비참하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결핍(carencia)을 보충하는 일종의 충전소인 셈이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 <자기만의 방>에서 남성에 비해 글을 쓸 만한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여성도 1년에 500파운드 가량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외딴 곳에 파묻혀 사는 자연인이란 남자들에게는 로망이요 여자들에게는 무덤이라는 속설이 깨지는 일종의 모반이다.

인간을 갈대로 여겼던 파스칼도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고 깨달은 후 사치와 허영과 야망과 세속의 삶을 버리고 수도원에 은거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자기 자신과의 내면의 시간을 나누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옛 인디언들은 사냥을 위해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멈추곤 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 인간은 영적이며 심신을 지닌 피조물(pneumato-psychosomatic)이다.
몰두하고 몰입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일한 만큼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남미사람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한낮의 시에스타(Siesta), 낮잠을 취하는 이유도 바로 하루 중의 쉼을 보충하자는 취지다.

지난 1년간 적용이 유예됐던 버스업계와 방송·금융업계, 대학 등에도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제가 시행되는 것도 워라밸, 곧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꾀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루 중의 쉼도 필요하고 일주일 가운데 쉼은 더더욱 중요하다. 종교에서 안식일은 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작 쉼을 누리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쉼을 5일 시장에 빗댄다. 시골에서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가운데 먹거리와 돈을 마련하는 잔치자리요 생활의 활력소다.

연극이 끝나고 객석에 홀로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는가?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 고독만이 흐른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쉼은 ‘성채’나 ‘굴’ 혹은 ‘자기만의 방’일 필요도 없다. 나는 그것을 길 위의 풍경과 시장에서 찾는다. 
자연의 쉼터는 양평 두물머리의 한적한 생태공원이고 치열한 삶의 장터는 가까운 경동시장이다. 
그래서 한 주 5일째 되는 날은 나만의 ‘영혼과 심신의 5일장’을 찾기로 했다.
때론 조용하고 한적함 때론 왁자지껄한 삶의 현장 속에서는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말문을 연다. 고요하고 때론 번잡한 일상으로 떠나는 길은 영혼과 심신의 망명도 칩거도 아닌 또 하나의 창조와 삶의 사색 그리고 발길의 모색이다.

어차피 우리는 세상의 순례자요 장돌뱅이기 때문이다.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  yesall4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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