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기의 시대,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 입력 2019.05.30 17:19
  • 수정 2019.05.30 17:26
  • 기자명 손병기 <두 번째 인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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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후 누이, 아버지 등 가족들을 차례로 잃어가면서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뭉크는 평범한 산책길에서도 공포와 우울을 느낄 정도로, 한평 생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공황발작이라는 정신병의 강박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불안은 그의 영혼을 마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잠들어 있던 내면의 예술성을 더 자극했다. 불안은 오직 불안의 실체를 알고 대면해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도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특히 인생의 위기라고 생각하는 실직 앞에서는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첫 번째 두려움은 단연코 돈 문제다. 먹고 살 일이 걱정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대출금, 교육비, 자동차 할부금, 카드 대금, 통신비 등 내 주머니 사정은 봐주지 않고 꼬박꼬박 내야 하는 돈들이 나를 어렵게 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돈 때문일까? 걱정과 불안이 전부 돈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돈이 가져오는 불안의 이면에는 수입이 더 이상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구조적인 면이 자리한다. 조직이 사라지고 정해진 날짜에 급여가 나오지 않으니 불안감과 심각한 무질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피폐해지는 남편을 어느 아내라고 좋아할까? 처음에는 저녁에 함께 있을 수 있겠다고 좋아하던 아이들이 슬슬 아빠 눈치를 본다.  

실직은 이제 과거의 무질서한 삶의 방식과 작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얘기해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듯이 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 당장 돈이 좀 부족하다고 서두르지 마라. 실직을 다시 반복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인은 상하관계로 훈련된다. 직장에는 오직 지시하는 자와 지시받는 자만 있다. 직장인은 어느덧 지시받는 자로 길들여진다.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을 때 더욱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안정은 사람을 수동적인 프레임 속에 가둬서 도전 정신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사실 인생길은 도전의 연속이 아닌가. 자신 앞에 있는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도전할 수 있다. 

어느덧 내 앞에 나타나 있는 두려움을 발견한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안정이라는 감정을 갈망한다. 그러나 안정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직장을 다녀도, 직장을 나와도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이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회피하면 반드시 더 강한 두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을 잠시 멈추고 내려놓아야 한다. 정직한 직면을 통해,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 원인을 찾아 정직한 답을 본인에게 할 때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중립 지대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결단과 혼란의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혼란스러운 상태는 우리 삶이 마치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래된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과 아직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뒤섞여 다가오고, 믿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대혼란 상태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바로 이 상태다. 그러므로 중립 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창조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윌리엄 브리지스는 변환을 3단계로 정의했다. 변환의 3단계는 ‘끝-중립 지대-새로운 시작’이다. 첫 번째 단계는 끝이다. 끝은 과거의 나와 단절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나온 과거 속의 자신을 과거에 묻어버린다. 그래서 끝이다. 과거의 나는 끝내야 한다. 그래야 변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중립 지대다. 중립 지대는 과거와 현재의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심리적인 무인 지대에 해당한다. 또한 과거의 정체성과 현재의 정체성 간의 혼돈을 경험하는 시기로, 과거의 방식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방식을 편안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힘든 때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과거는 해체되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가 탄생한다. 변환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끝-중립 지대-새로운 시작’, 이 세 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중립 지대는 주택 리모델링과 같다. 아주 낡은 주택을 떠올려보라. 문도 잘 닫히지 않고 마룻바닥은 삐걱거리며, 벽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어서 비만 오면 틈새로 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피는 집. 이제 이 집을 기본 골격만 놔두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주택 리모델링 공사 현장이 바로 중립 지대가 된다.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전부 먼지투성이에 자재들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다. 여기저기 벽돌이 나뒹군다. 인부들이 자재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작업 중이다. 온통 소란스럽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삶의 중립 지대도 주택 리모델링처럼 혼란스러운 공사 기간이다. 이 중립 지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새로운 변환의 모습을 맞이하게 된다. 

끝이 있어야 중립 지대를 만날 수 있다. 중립 지대에서 만나는 고통, 두려움, 불안함 등 혼란스러운 시간을 거쳐야 진정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불안해하지 않는 것은 실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불안함 가운데 뛰어들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 불안도 작아진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새로운 시작을 향해 가는 환승역이다. 

Profile
헤세드정보기술(주) 대표이사
<두 번째 인생> 저자
한국코치협회인증코치(KPC)
국민대 경영대학원 리더십코칭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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