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오로라 호, '러·일 전쟁에 참여한 전함'

  • 입력 2019.03.12 16:04
  • 수정 2019.03.12 16:05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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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호
오로라호

러시아의 수도였던 쌍트페테르브르크는 실질적으로 러시아 문화의 꽃이 피었던 곳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8대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아름다운 궁전과 기념비들이 가득한 자연 속 대형 박물관이다. 
도시와 섬을 운하와 다리로 연결한 아름다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일은 역사적인 일이다.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대 산맥을 이루던 시대에 소련은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공포감을 주었다. 그 공산주의의 심장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침 일찍 호텔 밖으로 나오니 공기도 상쾌하고, 출렁이는 네바강의 아침 인사가 신선하다. 선잠으로 하룻밤을 보낸 불편한 마음을 시원한 바람에 말끔히 씻어버리고 스케치 북을 편다. 네바 강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사원들도 그린다. 이름 모를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의 풍경과 네바 강변에 정박해 있는 전함 오로라호도 그린다.  
러시아의 유명한 발트함대의 일원으로 볼셰비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오로라호는 1901년에 제작된 초특급 전함이다. 6700톤 급 철제 군함으로 940톤의 엔진과 500명의 승선인원을 자랑한다. 말로만 듣던 오로라호를 스케치 북에 옮기면서 갖가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순양함 오로라호_김석기 작가
순양함 오로라호_김석기 작가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을 독점하려던 일본의 계획이 러시아의 간섭으로 중단되고, 독자적인 힘으로 러시아와 싸워 승리할 자신이 없었던 일본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외교적·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러시아도 조선에서 이권을 챙기려 했으나 조선인들의 반대 운동과 영국과 일본의 방해로 만주에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만들었다. 
1905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라는 명을 받은 러시아의 제3 발트함대는 당시 세계 최강으로 영국조차도 맞서기 꺼려 하는 함대였다. 전함 오로라호를 포함해 40여 척으로 이루어진 발트함대는 러시아의 발트 해를 출발한 후 대서양을 종단하고,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치는 28,800km의 항해로 8개월을 보낸 끝에, 대마도 해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연료는 고갈되어가고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최악의 상황이었다. 발트함대가 1905년 5월 27일 새벽, 대마도 해협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 연합 함대는 분명 발트 함대에 비해 약세였다. 그러나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도고 헤이하치로’는‘황국의 흥망이 이 일전에 달렸다. 죽음으로 싸우자’라고 외쳤고, 부하들은 사령관의 명을 따라 목숨을 걸고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 그들의 사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대한해협에서 북상 중인 발트함대를 발견한 일본 초계함은 조선 진해항에서 러시아 해군을 기다리던 일본 연합함대와 함께 동아시아의 지배권을 둘러싼 마지막 해전을 벌렸다. 러시아 함대는 19척이 침몰하고 4,800명이 전사했으며, 사령관‘로제스트벤스키’를 포함하여 6,000명이 포로가 되면서 한 시간도 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에 참패하고 말았다. 

뱃머리 장식의 탑_김석기 작가
뱃머리 장식의 탑_김석기 작가

전함 오로라호는 측면에 포탄을 맞고 파손되어 침몰은 겨우 모면하였으며, 당시 미국령이던 필리핀으로 돌아가 파손 부분을 수리하고 러시아로 귀환하였다. 그때 돌아온 전함이 겨우 4 척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오로라호가 네바 강에 거대한 모습을 아직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러일 전쟁으로 인하여 러시아의 왕정은 파멸을 자초하였고, 일본은 대륙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게 되었다. 러일전쟁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분할을 위한 열강간의 세력 전쟁이었으며, 단순히 한국과 만주를 둘러싼 국가 간의 무력충돌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의 배후에는 영국과 미국이 있었고, 러시아의 배경에는 프랑스가 있어서 결국 세계전쟁의 양상으로 비화되었으며 이 전쟁을 계기로 조선만이 열강들의 묵인하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던 것이 아닌가?

러시아는 봉건주의 왕정 하에서 절대 빈곤과 착취에 신음하며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던 없다고 판단한 민중과 군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레닌의 뜻을 따라 1917년 혁명을 일으켰다. 1차 혁명 후 부르조아 정치파와 레닌의 사상을 추앙하던 프롤레타리아 세력 간의 연합으로 임시정부가 구성되고 왕정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 간 갈등은 계속되었다. 그 당시 제정러시아는 독일과 전쟁 상태였는데 부르조아 정치파들은 독일과의 1차 대전에 계속 참전하기를 원하였고, 노동자, 농민 세력이 중심인 프롤레타리아파는 종전을 원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귀국하여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전 러시아에 선포하였고, 개혁에 착수하면서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불셰비키를 지지하는 오로라 호의 수병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귀족의 자제들인 장교들을 사살하고 배를 점령한 후 네바 강으로 올라와 민중을 지지하는 징표로 겨울궁전인 에르미따쥐를 향해 사격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오로라 호에 실탄은 없었고 공포탄 한 발 밖에 없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오로라호의 공포탄 발사의 함포 소리는 민중들에게 혁명을 지지하는 군의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공포탄 한 발이 러시아를 침몰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연 것이다.

많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오로라호는 아직도 그 임무가 끝나지 않은 듯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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