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왜

뤽 베송 감독, <잔 다르크> 정지원 기자l승인2019.02.21l수정2019.02.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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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대검 한 자루를 줍게 됐을 때, 그 대검이 하늘에서 구름 사이를 뚫고 자신에게 내려준 신의 대검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그 대검 한 자루를 신의 계시라고만 믿고 모든 인생을 내던졌다. 그러나 내려온 적 없는 사명이 이루어질 리 없다.

백년 전쟁, 잔은 무너지던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선봉에서 싸워 결국 오를레앙을 수복한다. 프랑스 전체가 그녀에게 환호하고, 샤를 7세는 그토록 원하던 왕관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새로운 왕과 잔의 생각은 달랐다. 잔은 영국 전체를 굴복시키고 완전한 프랑스의 승리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치가와 성직자들은 많은 피를 원하지 않았다. 타협하고 순응하며 최대의 이득을 취할 줄 아는 이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싸움을 좋아하나 명분이 식어버리고 이해관계가 옅어지면 급격하게 무기력해진다. 결국 명분을 잃어버리고 왕의 지원을 받지 못한 잔은 전장에서 참혹하게 패배한다.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힌 잔은 병사들에게 얻어맞으며 프랑스의 영웅에서 영국군의 포로로 비참하게 전락한다. 그녀의 앞에 갑자기 ‘양심’이 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냉정하게 질문한다. 너는 결국 무엇을 원했느냐. 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느냐,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으로 파괴하려 했느냐. 잔은 어린 시절 언니를 잃었다. 언니는 마을에 쳐들어온 영국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벽장에 숨었던 잔은 영국군 병사가 언니의 배에, 공교롭게도 ‘대검’을 찔러 넣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양심은 조롱한다. 잔디밭에 대검이 떨어질 경우의 수를 늘어놓는다. 말을 타고 싸우던 병사가 상대의 칼을 맞아 자신의 칼을 떨어뜨렸을 경우. 술에 취해 사소한 실랑이가 붙어 주먹을 휘두르다 허리에 찬 검을 떨어뜨렸을 경우. 그리고 그냥 칼을 차고 걷다가, 단지 무겁다는 이유로 내던져버렸을 경우. 너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외면하고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가장 믿기 어려운, 그리고 가장 신성한 경우를 선택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것이 단지 ‘우연’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운명’으로 승화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우니까. 되돌릴 수 없을 끔찍한 기억을 신의 이름으로 지워내려 했던 것이다. 너는 신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운 것이다.

뤽 베송 감독은 기독교의 신화 속 성녀를 데려와 고뇌하고 실패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라는 어린 소녀는 그의 영화에서 성녀가 아닌 인간으로 살다 죽는다. 하루아침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군대의 선봉에 서서 프랑스군에게 오를레앙을 되돌려 주고, 갑자기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소녀. 그런 사람은 추앙받는 영웅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성녀가 아니라 피해자다. 감독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빼앗겨 버린, 아주 당연한 섭리를 회복하려 한다. 전쟁은 전쟁이며, 폭력은 폭력이다.
폭력을 담보하는 한, 그 어떤 신의 계시가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건장한 남자들이 군대를 이뤄 칼과 도끼와 철퇴를 휘둘러 서로를 죽일 때 어린 여자아이를 선봉에 세워 사기를 진작시켜서 이겼다면, 그것을 과연 승전이고 성전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성이 지워진 종교사에서, 감독은 진정 부활해야 할 것을 부활시켰다.

성스럽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고 했던 잔 다르크는 그 성스러움을 증명하지 못했다. 있지도 않은 사명을 다하지 못해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토록 믿었던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조롱당했다. 그리고 마녀로 화형대에 끌려가는 결말을 맞는다. 대체 어느 신이 화형대를 만들어 살아 있는 인간을 불태우라 했는가. 그 불은 인간이 인간에게 지피는 불이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 올린 추악함, ‘폭력에 대한 갈증’이다. 불에 타 죽고 싶지 않았던 잔은 글도 읽을 줄 몰라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서약서에 가위표를 긋는다. 그 서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당신은 신을 믿는가?’ 

어린 시절 잔은 고해성사를 받았다. “신부님, 제가 신발이 없는 사람에게 신발을 주었어요.” 신부는 칭찬해 주었다. “잘했구나, 잔.” 그러나 잔은 죄를 고백하고 만다. “신부님, 그것은 제 신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발이었어요.” 그러자 신부는 말한다.

“신께서는 용서하실 거다.”

이 영화는 단순한 지적의 수준을 넘었다. 명징하면서도 섬뜩한 대사는 처참한 장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전쟁 장면을 보면서도 박진감을 느낄 수 없다. 남는 것은 질문뿐이다. 잔의 딜레마에 공감하기는 쉽다. 그러나 왜 아직도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대검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정지원 기자  jeongj3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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