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Vol. 5 영원한 청년, 윤봉길 의사를 기억하다

윤봉길 의사 한일애국단 입단

  • 입력 2018.07.05 15:49
  • 수정 2018.07.05 16:37
  • 기자명 박소연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인애국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제 주요인물의 암살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한인애국단이 조직될 당시 국내외의 독립운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내에서는 ‘문화정치’라는 이름의 일제의 식민지 동화정책이 무려 10년간에 걸쳐 강행되고 있었다. 시베리아 연해주 지방 등에서 독립군을 중심으로 하는 항일 운동 또한 곤경에 처해 있었다. 

한인애국단 단장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사진출처=(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한인애국단 단장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사진출처=(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한일애국단의 일원이 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비밀공격 조직을 통해 주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활동을 계획했다.  한일애국단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김구 선생이 애국청년 80여 명을 모아 1931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했다. 일본의 주요 인물 등 소수의 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국가운영체계나 대외침략을 막는 등의 큰 성과를 올리려는 것이 목표였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 단원이 됐다. 한인애국단은 김구 선생이 단장을 맡았으며 김석, 안공근, 이수봉, 이유필 등이 간부로 활동했다. 윤봉길 의사를 비롯해 유상근, 유진만, 이덕주, 이봉창, 최홍식 등의 단원이 있었다. 

홍커우의거 결심
일제는 일본 국왕 생일인 천장절을 기해 전승기념축전을 상하이의 홍커우공원에서 개최할 것임을 알렸다. 윤 의사는 홍커우공원 의거를 결심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 단원으로서 태극기 앞에서 의거를 결행하였음을 선서했다.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문(사진출처=(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문(사진출처=(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 일원이 되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 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윤 의사는 김구 선생으로부터 중국 은화로 2백 냥을 받아 의거를 실행하기 위한 옷과 시계를 구입한다. 일제 총사령관 시라라카 대장, 해군 함대사령관 노무라의 사진을 구해 얼굴을 익히기도 했다. 당일에 그들이 서 있을 위치와 주위에 있을 사람들의 신상도 파악했다. 

홍커우공원 의거를 앞둔 4월 27일, 윤 의사는 '동방공우'에서 김구 선생에게 유언을 썼다. 그 속에는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전하는「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도 들어 있었다. 

4·29 의거 기록화_일랑 이종상 화백 작품
4·29 의거 기록화_일랑 이종상 화백 작품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모순模淳 담淡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