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수의 조경칼럼] 귀하의 집은 양택(陽宅)인가 음택(陰宅)인가?

  • 입력 2018.07.04 13:17
  • 수정 2018.07.04 13:26
  • 기자명 정정수 조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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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택과 음택, 산 자와 죽은 자
집은 입지와 거주환경에 따라 양택과 음택으로 나뉜다. 풍수지리상 양택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공간, 즉 주거지 입지를 말하고 음택은 죽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 즉 묘지 입지를 말한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창문을 기준으로 하자면, 양택은 창문이 반드시 필요하며 빛과 통풍을 위해 중요하다. 반면 음택에는 창문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발견한 건물 전면을 제외한 삼면이 창 없는 벽이다. 넓은 면이 부담스러웠는지 기능과 관계없는 아치를 그려 넣었다. 박물관 등 죽은 것들이 머무는 곳에는 창이 없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발견한 건물 전면을 제외한 삼면이 창 없는 벽이다. 넓은 면이 부담스러웠는지 기능과 관계없는 아치를 그려 넣었다. 박물관 등 죽은 것들이 머무는 곳에는 창이 없다.

 
과거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을 철저히 양택과 음택의 기준에 따라 꾸몄는데, 현대에는 산 자를 위한 공간에도 종종 음택을 적용하고 있다. 창을 없애고 실내에서 빛과 온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현대식 빌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혹은 창이 있더라도 벽면 전체를 통유리로 시공하여 통풍은 철저히 인공으로 조절하는 소위 '모던'한 공간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죽은 사람을 위한 무덤처럼 창문이 없어야 하는 공간도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그렇다. 움직이지 않는 전시 작품들, 즉 생명이 없는 물건들은 태양빛을 받거나 바람에 노출되면 보존상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음택의 조건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이용하고 있는 건물에 창을 없애고 묘지처럼 꾸미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점(조명과 통풍)을 자연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사람 손으로 해결하려 할까? 자연에서 멀어지려는 이러한 시도로 인해 현대인들의 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기능은 디자인에 우선한다
형태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는 편리함을 위한 기능적 요소와 아름다움을 위한 디자인적 요소가 동시에 고려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디자인에 치우친 나머지 기능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예술에 가까워지는 일이라기 보다는, 본질에서 벗어나는, 그래서 오히려 예술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이용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면 당연히 기능의 충족을 우선으로 고려할텐데, 겉모습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능은 대충 끼워 넣고 방향성 없는 디자인에 사람을 맞추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가위의 형태를 보자. 가위는 무언가를 잘라내기 위해 존재한다. 가윗날과 손잡이를 잇는 부분의 지렛대, 엄지가 들어갈 손잡이와 나머지 손가락이 들어갈 또 다른 손잡이는 모두 무언가를 싹둑 잘라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위가 아름다운 이유는 가위의 디자인이 가위의 본질인 '자르는' 기능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능은 디자인에 우선한다. 그러니 사람이 생활하는 건물 역시 자연과 소통의 접경으로서의 집의 기능을 무시하고 디자인만을 강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창은 풍경을 담는 액자이다. 벽초지 수목원 사무실에서 garden이 보이는 창은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을 액자 속에 담아내고 있다. 스케치(우측 하단)는 석조건물의 창을 디자인한 것이다.(2002년 작업)
창은 풍경을 담는 액자이다. 벽초지 수목원 사무실에서 garden이 보이는 창은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을 액자 속에 담아내고 있다. 스케치(우측 하단)는 석조건물의 창을 디자인한 것이다.(2002년 작업)

 

풍경, 조경 그리고 그림 
창이란 빛을 실내로 들여오는 역할도 하지만 액자틀처럼 밖의 풍경을 담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창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한 폭의 그림이라고 여긴다. 
 
도심의 '풍경(風景)'을 생각할 때는 빌딩으로 꽉 찬 인공적인 모습만이 떠오르지만, 원래 풍경이란 단어는 산이나 들, 강, 바다 등의 자연이나 지역 경관의 모습이라고 정의된다. 영어 사전에서는 풍경을 'landscape'이라고 하는데, 조경(造景) 역시 같은 단어를 쓰며, 풍경화(風景畵) 또한 이 단어로 쓰인다. 서양이든 한국이든 풍경과 조경, 그림을 하나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미술과 자연, 그리고 조경이 본질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서양화가인 필자가 조경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이 만들어준 필연일 것이다. 

파주 벽초지 정원의 문
파주 벽초지 정원의 문

 
소통의 문을 통해 받는 자연의 선물
우리는 혹시 방범을 이유로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외부로부터 자신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차단시키며 자신의 것만 지키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귀를 닫고 살짝만 경계를 넘어와도 죄인으로 만드는 사회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소통의 문을 만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그 문을 열고 나가 자연이 주는 지혜를 흡수하기를, 그래서 포용과 아량으로 가득한, 모든 곳이 내 집과 정원처럼 안온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자연에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조경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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