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돼지찌개입니까 섞어찌개입니까

카카오 블라인드 채용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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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홍대에 있는 ‘돼지찌개’ 전문점에 가봤다. 돼지찌개는 돼지고기,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와 다를 바가 없다. 돼지고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김치찌개란 단어 대신 돼지찌개란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반면 ‘섞어찌개’의 경우 말 그대로 이것저것 섞어서 찌개로 만든 음식이다. 곱창도 들어가고 오징어도 들어가고 돼지고기도 들어가고 소시지도 들어가는데, 부대찌개랑 이름만 다르고 정체성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돼지찌개보다 섞어찌개가 더 끌려 보인다.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가서 같은 돈을 내더라도 더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섞어찌개 음식점을 잘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들도 더 좋아할 것 같고 기존 김치찌개에서 재료 몇 가지만 추가시키면 될 텐데, 왜 잘 안 보일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를 추가하는 것은 쉽지만, 많은 재료를 가지고 그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게끔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김치찌개에 몸에 좋은 전복이나 인삼도 넣고, 비싼 재료인 랍스타, 돔도 넣을 수도 있지만, 맛은 보장하지 못한다. 즉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이다. 

취업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은 단군이래 역대 최고 스펙을 보유하고 있고 ‘스펙 8종 세트’ 란 말이 있을 정도로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자격증, 대외활동, 인턴이라는 스펙을 맹목적으로 쌓게 되면, 돼지찌개가 아닌 섞어찌개가 되어버린다. 이것에 대한 방증이 기업 인사담당자가 ‘그놈이 그놈이다’ 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섞어찌개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특별하게 노력하지만, 결국 평범하다고 평가받는 상황에 있다. 앞서 말했지만, 많은 것을 섞었지만 좋은 맛을 내기는 쉽지 않다. 우선 음식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이름을 섞어찌개라고 지어서 ‘나는 섞어찌개’ 라는 정체성을 정립해야 문제가 없다.

섞어찌개와 사촌격인 부대찌개의 경우 섞어찌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재료를 넣지만, 6.25 이후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의 영양 보충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의의가 있다. 취업시장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하지 않던 시기, IMF 이후 인적 자본론이 한국에 도입된 직후에는 돼지찌개보다 ‘부대찌개형 인재’를 선호했지만, 지금같이 스펙 인플레 상황일 때는 부대찌개보다 ‘돼지찌개형 인재’가 주목받는다. 즉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된다.

작년 카카오 채용이 그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2017년 카카오는 소프트웨어 개발 직무에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하였고, 23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최종합격자 44명 중 41%가 지방대 출신이다. 합격자 대부분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기계공학, 토목공학, 경영, 경제학을 복수 전공한 것으로 나타났고, 나이도 22세부터 32세까지 다양했으며 대부분 경력직이 아닌 사회초년생들이었다.

아직 카카오 같은 IT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앞으로 모든 분야에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로 오징어, 돼지고기, 참치 등 모든 것을 섞어서 정말 맛있는 섞어찌개를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면 돼지찌개, 오징어를 좋아하면 오징어 찌개, 참치를 좋아하면 참지찌개를 만드는 것이다. ‘섞어찌개가 틀리다 돼지찌개가 맞다’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뿐이고, 섞어찌개와 돼지찌개 모두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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