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_다큐멘터리 추천

  • 입력 2017.08.30 12:03
  • 수정 2017.08.30 12:04
  • 기자명 김나영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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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인 갈등은 없어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갈등은 잔잔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의 많은 장르 중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잔잔한 갈등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러므로 ‘내가 겪을 수 있는’ 이야기. 어쩌면 이것이 다큐멘터리를 정의하는 가장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과 기억으로 남겨두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전자는 하나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감정을 배제하고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기억은 하나의 사건을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연관 지어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우리가 한 사건에 대해 기록할 때는 최대한 객과적인 자세로 사건의 순서를 기록하는 반면에, 한 사건을 기억할 때는 그 사건이 본인에게 남긴 어떤 충격이나 감정에 대해 주관적인 태도로 기억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큐멘터리는 이 기록과 기억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기록하는 동시에 기억함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지닌 다큐멘터리 세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꿈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서칭 포 슈가맨 (2012)>
JTBC에서 방영했던 <슈가맨>은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불러온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 방송은 추억 속에 머무르던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땐 그랬지.”하는 공감을 이끌어냈다.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휩쓴 말릭 벤젤룰의 <서칭 포 슈가맨 (2012)>이 바로 예능 <슈가맨>의 모티프가 된 영화이다. <서칭 포 슈가맨 (2012)>의 카피 문구인 “2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의 가수, 자기 자신도 몰랐던 그의 놀라운 이야기”는 <슈가맨>의 중심 주제가 되어 사라진 가수들을 조명했다.

<서칭 포 슈가맨 (2012)>은 단 두 장의 앨범을 끝으로 사라진 가수 로드리 게즈를 찾는 영화로, 로드리 게즈는 프로듀서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국에서 성공을 하지 못했다. 성공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판매량은 저조했고 결국 그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음악이 알려지게 된 곳은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한 미국이 아닌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당시 남아공은 백인 정권의 유색인종 차별정책으로 극심한 핍박이 가득한 곳이었다, 암울한 분위기로 인해 남아공 국민들의 고통이 커져만 갈 때 로드리 게즈의 ‘Cold fact’는 민중들의 주제가가 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저항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로드리 게즈의 노래들은 모두 검열에 걸려 금지곡이 되었지만 복제품을 만들어 노래를 듣는 등 남아공에서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영화는 단 2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가수를 찾는 두 명의 열성팬의 모습과 함께 진행된다. 모두가 ‘죽거나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로드리 게즈는 살아있었고, 그는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무대에 서게 된다.

영화는 사라진 가수를 찾으며 그의 음악이 남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성공은커녕 실패한 가수라고 이야기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로드리 게즈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잊게 하는 음악이었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약이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꿈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전달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미래가 불안하다고 해서 꿈마저 가난할 필요는 없다. 꿈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꿈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 <서칭 포 슈가맨 (2012)>을 추천한다.

“나이키 운동화를 만들었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수는 없었던”
<위로 공단 (2015)>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이 노래는 단순한 봄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이 노래는 70년대 ‘공순이’(공장에 다니는 여성 노동자)의 고된 삶에 대해 부르짖는 노래이다. 고속 경제성장 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공장에서 하루 평균 13시간을 미싱을 돌려야 했다. 고등학교는 고사하고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이들에게 노동법은 너무나 먼 존재였다. 법전을 펼칠 시간은 물론이고 잠시 쉴 틈도 없던 가혹한 노동의 굴레 안에서 이들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에도 이들의 미싱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번 돈은 기껏해야 한 달을 겨우 먹고살 수 있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 그럼에도 이들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학교에 진학하는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바쳐야 했다.

<위로 공단>은 70년대 구로공단을 넘어 현재의 대기업에 이르는 꽤나 긴 시간을 조명한다.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하는 담담한 회고를 보여준다. 특히나 가발을 만들었다는 한 노동자의 인터뷰와 함께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가발을 쓰는 여성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 영화가 말하는 대상이란 결국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 임을 확인시킨다.

수 백, 수 천 켤레의 나이키 운동화를 만들었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수는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 위로를 건네기 위해 ‘기억’하고 ‘기록’한 <위로 공단 (2015)>을 모두에게 추천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은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달팽이의 별 (2012)>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사랑은 굳건히 존재한다. 애초에 보이는 사랑이나 들리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니 어쩌면 이 말은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어떤 시인의 말처럼 사랑을 관장하는 신인 에로스의 그림 속엔 에로스의 눈이 감겨 있거나 가려져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이는 사랑을 하면 보이는 게 없게 된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사랑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인류의 공통적 감성인 것이다.

한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등을 두드린다. 타자를 두드리는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감정을 교류한다. 소리 없는 대화는 영찬 씨와 순호 씨의 다정한 일상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서 조금 느린 영찬 씨와 척추장애로 인해 남들보다 작은 몸의 순호 씨는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평범한 연인이다. 촉각에 의해 세상을 읽는 영찬 씨는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것이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불필요하고 값싼 동정심은 한순간 영찬 씨의 말 앞에서 침묵하게 된다.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지해 조금 느린 삶을 살지만 영찬 씨는 누구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연인이 있고 자신의 삶에 당당한 자세를 고수한다. 앞이 보이고 너무 잘 들리는 우리와 영찬씨의 차이는 별로 없다.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 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자신처럼 우주인이 되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영찬 씨의 말은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의 무게와 진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의 눈은 정말 보이는 그대로 보고 있을까? 우리의 귀는 진정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일까? 너무 많은 것들을 왜곡해서 보고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평범하다’는 기준의 정의는 다수가 만든 규칙이고 이 규칙은 놀라울 정도로 의미도 진정성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규칙에 속박되어 여전히 사슬에 얽힌 죄수처럼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영찬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은 없지만, 별이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조금 느린 영찬 씨와 순호 씨가 사는 ‘달팽이의 별’은 잠시의 틈도 없이 지나쳐가는 우리의 삶을 조금은 느슨히 걸어도 된다고 권유한다. 빠르게 지나는 삶의 순간 속에서 지칠 때는 <달팽이의 별 (2012)>과 함께 쉬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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