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딛고 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사나이

“대한민국 뷰티의 세계화에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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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아름다움은 놓칠 수 없는 존재다. 아름다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상승하면서 뷰티 관련 사업도 나날이 성장세다. 그러나 뷰티 제품을 소비하는 층이 주로 여성들로 편중된 탓에 뷰티 관련 사업도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하지만 금남(禁男)의 영역으로 불리는 뷰티업계에 과감히 도전한 남성이 화제다. 바로 뷰티는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추교익프리미엄뷰티의 추교익 대표이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이 깃든 교육체계

뷰티아티스트로 활동한 지 올해로 19년차인 추교익 대표는 뷰티인재 양성을 위해 뷰티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교육기간은 최소 3개월부터 2년의 과정으로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전문가를 배출한다. 법을 준수하며 철저한 위생을 중시하는 추 대표의 평소 철학은 교육생을 가르칠 때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무래도 뷰티제품은 피부와 직접적인 접촉이 많기 때문에 항상 위생을 강조합니다. 제품을 사용할 때에도 식품약정처의 인증 받은 제품만을 사용합니다. 물론 뷰티샵의 수익 창출을 위해 저렴한 제품들도 존재하지만, 위생이 곧 뷰티의 생명력인 만큼 제품 선정에 만전을 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교육생에게도 이를 강조하여 위생 인증 제품 사용을 권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생을 뽑을 때에도 평소 그의 소신을 기준으로 뽑는다.
“저는 어느 정도 가치관과 인성이 확립된 성인만을 가르칩니다. 미성년자는 제가 그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영웅심리나 잘못된 가치관을 가질까 염려가 됩니다. 게다가 교육 시, 연습을 통해 시술방법을 익혀야하는데 미성년자의 경우 친구를 모델로 시술하는 등의 불법적인 소지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절대 뽑지 않습니다.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은 지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추교익 대표는 자신이 가르치는 교육생들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교육생들이 자리를 잡고 부와 명예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보람을 느꼈다.
“어떤 제자는 생활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대구까지 와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생계가 어려워 수강료환불을 요청했습니다. 제자가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설득을 거듭했어요. 지금만 견디면 너의 미래는 창대할 거라고 용기를 북돋우며 말이죠. 이에 제자는 용기를 얻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은 자신만의 뷰티샵을 창업해 전문가로 활동 중입니다. 성공한 제자를 바라보면서 스승으로서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미술을 좋아하던 소년에서
1세대 남성 뷰티아티스트로

“학창시절 음악, 미술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예술대학 진학을 권유하셨을 정도로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든든한 멘토였던 아버지께서는 저의 사업가적인 기질과 가치를 보다 사회에서 진취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추교익 대표의 예술적 재능 이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바라보셨고 색다른 진로를 꿈꾸게 하셨다. 그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자신만의 브랜드 사업을 결심했다. 추 대표는 본격적으로 판매관리학과에 졸업해 여러 일을 도맡으며 사회와 부딪혀 나갔다. 공무원 9급 사무직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취직하기도 하였다. 현대자동차 영업사원, 가전제품 유통, 보일러 수리, 에어컨 수리 등 다양한 일을 해왔던 그는 새로운 내일을 생각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다양한 업무를 몸소 배우니  ‘한 우물만 파야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친한 친구가 네일 재료 사업을 했는데, 곁에서 보니 네일아트의 가치와 비전을 보고 뛰어들었습니다.”
추교익 대표가 활동하기 시작한 1998년은 네일 아티스트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하던 때였다.  따라서 네일을 포함한 뷰티아트의 구체적인 커리큘럼이나 교육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2000년 초에는 네일 협회 모임에 총 9명의 아티스트만이 참여할 정도로 종사자 수 또한 현저히 적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추교익 대표는 뷰티아트의 가치 있는 향후 전망을 보았다.
“뷰티아티스트로 길은 미래가 밝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뷰티’라는 의미도 희미했고, 종사하는 전문가의 수도 적었습니다. 남성 뷰티아티스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 비전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추교익 대표는 전문가로서 소양을 갖춘 후 대구 칠곡군 왜관읍 근처에 네일샵을 창업했고 미군 뷰티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뷰티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지만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뷰티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첫 달 매출이 30만원이었어요. 재료 공급해주던 친구와 공평하게 나누니 그마저도 15만원으로 줄어버렸어요. 수입이 뭐 거의 없었죠.”
그럼에도 추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전문가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뷰티아티스트였지만 저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책임감이 남달랐습니다. 정신력을 강화하려 5년간 매일 아침 앞산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저와의 싸움을 계속 했습니다. 저의 상황을 마주하고 돌아보니 결국 이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은 제 실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나은 뷰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습했습니다.” 추교익 대표의 이런 피나는 노력 덕분에 뷰티샵은 나날이 성장해나갔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자하는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다.

뷰티업계의 향후 전망과 걸림돌

추교익 대표는 뷰티업계에서 미래 지향적인 사업으로 반영구 시술을 꼽았다. 반영구 시술은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스러운 반영구 시술이 가능하다. 초창기 뷰티 사업 당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반영구 시술을 익혔던 추교익 대표는 해외에서도 한류의 연장선상에서 K-뷰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반영구 시술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추 대표는 반영구 시술의 발전을 위해서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며 제도적 보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행 법상 반영구 시술, 특히 타투의 경우 합법적인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해 뷰티 전문가들에게 기회가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추교익 대표는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뷰티대회의 대회당 외국인 참가자 수가 4000명 수준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뷰티가 외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하며 타투의 합법적인 기준이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나 정부에서 타투 합법화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른 기관처럼 타투 같은 반영구 시술의 합법화가 이루어진다면 유능한 국내 전문가들이 교육기관 설립 등 절차와 체계를 이행하고 갖춰나갈 의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추교익 대표는 2017년 한국의료뷰티산업진흥원의 대표로 취임하면서 뷰티와 의료를 접목시켜 뷰티의료 관광의 중추적인 매개체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또한 2017년도 대구시장배 반영구 대회를 개최하여 대한민국 뷰티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내·외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통해 해외 교류 확대와 추교익프리미엄뷰티의 해외 진출을 가시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뷰티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어 국내 방문을 유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추교익 대표는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 닥터추를 통해 뷰티아티스트로서 제자들과 닦아온 노하우를 공유하여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혼자 잘되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함께 잘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꿈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뷰티아티스트 추교익 대표와 추교익프리미엄뷰티의 교육생들은 각자 분야에서 뷰티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의 뷰티 파워를 널리 알리기 위해 또 다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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