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시 한 복판에서 발견한 친환경 삶의 양식

  • 입력 2013.05.02 14:01
  • 기자명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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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평론가 K의 ‘숨겨진 걸작’>

회색도시 한 복판에서 발견한 친환경 삶의 양식
로라 개버트, 저스틴 쉐인의 <노 임팩트 맨>(2009)

‘르포르타주’, 혹은 기록영화로도 불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확실한 주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이용되는, 영화 제작방식 가운데 하나다. 영화 역사상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무겁고 진중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근세기 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트렌드는 주제의식과 더불어 영화적 재미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 긴장감 있는 내러티브의 가미 등으로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 임팩트 맨>은 이러한 최근 경향에 적절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걸작이다. 이미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된 바 있는 <노 임팩트 맨>은 주인공 콜린 베번을 통해,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의 문제를 결합시켜 좌충우돌 유쾌한 1년의 ‘반문명적’ 삶의 그림을 그려낸다.
2009년 ‘선댄스 영화제’, ‘실버독스 영화제’, ‘LA필름 페스티벌’ 등 미국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적으로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노 임팩트 맨>은 대중성과 오락성을 두루 겸비해 2000년 이후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들 가운데 가장 유쾌하고 흥미로운 ‘웰메이드 환경 다큐멘터리 무비’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구 환경을 지키려는 소시민의 노력
<노 임팩트 맨>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영웅으로서의 ‘콜린’이 아닌, 심각한 환경의 문제에 첫 발을 내디딘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콜린’의 도전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구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이른바 ‘노 임팩트 프로젝트(No Impact Project)’. 이 프로젝트는 환경 문제에 관해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던 ‘콜린’의 기발한 발상으로 출발한다. 익숙한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급진적인 실험을 시작하면서, 콜린은 절대 뉴욕을 떠나지 않고 정면으로 도심 속 ‘야생의 삶’에 도전한다.
그는 도시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통해 이미 야기된 폐해를 상쇄하기도 하며, 환경문제를 두고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대립시켜 죄책감만 양산하는 논리에도 동의하지 않는 유연함을 지닌다. 단지, 주인공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은둔자는 더더욱 아닌 콜린이 겪어야 할 고통과 불편은 그렇기에 당연해 보이며 더욱 커 보이기까지 한다. 카페인과 TV 중독자인 아내와 함께, 냉장고 없이 보관해야 하는 우유를 마셔야 하거나 전기를 끊고 희미한 촛불 앞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들 부부는 하루하루를 힘들어한다. 
하지만 1년간의 짧지 않은 색다른 경험을 통해 콜린과 가족들은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얼굴과 마주한다. TV를 끄고 나서 가족 간의 대화를 되찾기도 하고, 일회용품에 담긴 테이크아웃 음식을 포기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로컬 푸드를 찾아 나선 재래시장에서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배운다. 강변 쓰레기를 치우며 함께 걸어 나갈 이웃을 발견하며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대신 자전거와 킥보드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도시의 한 복판에서 문명을 거부한 채 온갖 장해물과 부딪치며 실험을 벌인 덕분에 콜린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까지 얻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를 넘어서
콜린과 그의 가족들이 직접 실천한 1년간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 임팩트 프로젝트’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무분별한 소비와 배출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자행했는지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2013년 현재, 각 개인이 딛고 있는 현실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한 전 지구적 환경재앙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닥친다는 엄연한 현실을 <노 임팩트 맨>은 강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혼자만의 변화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변화를 추구한다면 희망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라는 콜린의 언급처럼 <노 임팩트 맨>은 희망의 전언도 아끼지 않는다. 단, 각 개인의 의식 변화를 통한 실천이 전제돼야 한다.   
<노 임팩트 맨>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고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솔직한 보고서이며 동시에 최소한의 것으로도 충분히 인간적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기도 하다.
<노 임팩트 맨>은 다큐멘터리 영화 특유의 진지함과 무거움을 배제하고 쏠쏠한 재미를 추구했다. 특히 진보주의자인 남편 콜린과 명품가방 등 다양한 물품의 쇼핑을 즐기는 아내 미셸의 상반된 캐릭터가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재미와 유쾌함을 배가시킨다.
<노 임팩트 맨>은 어쩌면 미셸 콜린이 죽고 못 사는 TV 리얼리티 쇼처럼 작위적일 수도 있겠지만, 뉴욕의 한 복판에서 도시 문명을 배제한 채 생존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했다는 사실과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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