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수상하다’

  • 입력 2013.04.08 16:20
  • 기자명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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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반도가 수상하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로 전운 감돌아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 다지기일수도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지난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지난 3월 11일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되자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면서 한반도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
또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 사흘째인 3월 13일 “괴뢰군부 호전광들의 광기어린 추태는 청와대 안방을 다시 차지하고 일으키는 독기어린 치맛바람과 무관치 않다”고 언급, 간접적이나마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을 볼 때 국지적 도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북한 내에서 김정은 제거 음모도 확인되는 등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를 위한 내적 결속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60년 만에 깨진 ‘정전협정’
한반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12년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남북관계는 점차 경색 국면을 이어왔다.
이러한 경색 국면에는 지난 1월 22일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결의 2087호도 한 몫 했다. 다음날인 23일 북한의 외무성이 비핵화 포기 선언이 이어지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양상이었다.
이어 북한은 2.12 핵실험을 강행했고 급기야 3월 11일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이 뒤따랐다. 북한은 지난 3월 14일 외무성 대변인의 입을 빌려 “다른 협정들과 달리 정전협정은 특성상 쌍방이 합의하여 파기할 성격의 협정이 아니며 어느 일방이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백지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이같이 드러난 북한의 의도는, 최근 대규모 한미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 등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비난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사실상 조선정전협정은 지난 60년 동안 지속돼 온 미국의 체계적인 파괴행위와 그를 비호 두둔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부당한 처사로 하여 이미 백지화되고도 남은 상태였다”며 “지금까지 정전이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어 올 수 있은 것은 오로지 우리가 최대한의 자제력과 인내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 외무부 대변인의 언급은,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 대한 강경책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겨냥한 포사격 훈련을 직접 지도하고 북한 내부에서 군에 입대시켜달라고 탄원한 청년이 100만 명을 넘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하는 등 북한 내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또 현영철 북한군 참모장이 지난 3월 9일 판문점을 시찰한 일도 의례적이지 않아 묘한 여운을 줬다.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3월 11일에는 주민들의 전투 준비를 독려하며 판문점 연락 채널을 단절하기도 했다.
북한이 박 대통령을 비난한 3월 13일, 미국 정보당국 최고책임자는 의회에서 북한이 불시에 제한적 수준으로 대남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군은 사전 경고 없이 제한된 공격을 가할 태세를 잘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 것.
국제사회의 시각도 비슷한 분위기다. 국제전략정보업체 ‘스트랫포’는 지난 3월 8일 ‘북한의 긴장고조 욕구(North Korea’s Appetite for Escalation)‘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2000년 이후 한반도에서 정착된 상대적인 평화를 이제 끊임없는 군사적 마찰 상태로 전환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덧붙여 향후 수개월 내에 남북한이 군사충돌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도발을 할 경우 반드시 전쟁의 형태만이 아니라 북한 함정의 서해 NLL 침범이나 잠수함의 남한 해역 침투, 한국군 초소 공격, 잠수정을 이용한 소규모 병력 침투 등 다양한 방식의 도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발에는 강력대응, 변화에는 신뢰프로세스
이와 함께 북한의 적대행위와 국경 지대에서의 충돌이 한국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국제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북한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던 중국도 최근 북한의 호전적 태도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도 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월 1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사의 베이징 주재 수석기자를 인용한 사설을 통해 중국이 대북 정책을 미세하게나마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침해와 현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충성심 부족, 날로 높아지는 중국 내 반북 정서 등이 중국 지도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게 된 중요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제재 조치를 내놓을 것에는 중국이 동조하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북한 정부를 자극할 만큼 지나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대응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대처 수위는 엇갈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는 강경책을,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류길재 통일부장관 측은 유화적 제스처가 감지된다.
김장수 실장이 적 도발시 강력하고 단호히 응징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윤병세 장관과 류길재 장관은 청문회에서 “엄중한 상황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6자 회담 재개를 포함한 비핵화 협의를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기 때문.  
이러한 입장은 ‘도발에는 강력대응, 변화에는 신뢰프로세스’로, 북한의 행동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한이 태도를 바꿀 때는 언제든 열린 자세로 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해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에 참여했던 미국 핵잠수함 등이 훈련이 끝난 뒤에도 한반도 인근 해역에 잔류하며 북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 간 ‘핵우산 제공’이라는 기존 합의에 따른 것이다. ‘핵우산’이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이를 보유한 동맹국가의 핵전력에 의존해 적국의 핵 공격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양국 간 이 같은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미국 특사 등을 통해 핵 수단을 통해 북핵에 대응할 필요성을 미 측에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이 한미합동군사연습과 유엔의 대북제재에 위협으로 대응한 것이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키 리졸브’ 훈련 때에도 북한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거족적인 성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서남전선지구의 4군단 예하 부대와 판문점을 직접 시찰했다. 올해와 비슷한 수위의 도발이었다.
또 같은 해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때에는 판문점대표부가 성명을 발표해 ‘무자비한 물리적 행사’를 선언하고 김 제1위원장은 무도방어대 등 연평도 포격부대와 동부전선 부대를 차례로 시찰하며 위기감을 키웠었다.

제재 가시화, 한반도 냉각 오래 지속될 수도
이처럼 한?미 간 합동군사훈련과 유엔 대북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그간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올해 유난히 강한 톤으로 위기감을 높이는 것은 시기적으로 두 사안이 겹치면서 반발이 더 증폭되고 있기 때문.
그렇다면 북한이 왜 이토록 한반도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결국 이런 상황을 이용해 북한이 이후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는 정략이 숨어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특히 북한이 주장해 온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북한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것.
여기에 현재 악화된 경제상황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국면들을 효과적으로 전환할 목적인 듯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강성대국’을 꿈꿨던 김정일 유산의 계승 발전과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 추구, 추락한 북한 주민들의 자긍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 등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한편,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이후 서구 세계의 대북조치가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엔 안보리와 유럽연합이 대북제재를 결의했고 유럽의회 역시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제재가 가시권에 들었다.
유럽의회는 “북한이 핵계획을 포기하고 미사일 계획과 관련된 모든 활동 중단해야 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도 약속대로 이행하라”고 강조한 뒤 “6자회담과 관련해서는 북한 핵문제의 정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모든 당사국들이 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북한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이대로 가면 멸망할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경고한 뒤 “북한은 정책 변환을 통해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지난 3월 15일 NHK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밝혔다.
북한의 최근 강경 행보에 ‘김정은 체제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하원의 마이크 로저스 정보위원장은 지난 3월 17일 CNN의 일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뒤 이같이 밝혔다. 마이크 로저스 위원장은 “28세에 불과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체제의 안정성에 의문이 든다”며 “김 위원장은 군부에 자신의 통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최대의 위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한반도 주변국들과 대내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마다 북한의 위협이 ‘판박이’ 행보였고 훈련 기간 동안 북한의 특별한 도발이 없었던 점을 감안할 때 비교적 큰 위기국면은 아니라는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안보대처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라는 의견도 있어 추후 남북관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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