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진 국가원로의 재능

봉사로서 사회 곳곳에 훈기를 전해준 인생

  • 입력 2016.05.31 16:07
  • 수정 2016.05.31 16:27
  • 기자명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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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교육자이면서 문학가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향토사연구, 봉사활동과 종교활동, 그리고 고미술수집과 차생활까지 겸비해 온 학자의 이야기가 사회에 훈훈한 감동이 되고 있다. 바로 부산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터전을 닦은 김기원(79) 새생명광명회 회장 이야기이다. 어린시절부터 호국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평생을 봉사의 삶으로 이어온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평생 이어온 봉사의 삶
(사)새생명광명회는 경남 지역을 돌며 무료로 농촌검진활동 을 펼치는 단체다. 경상대학교 의료팀과 지역보건소, 그 외 다 양한 봉사단체와 연을 갖고 시력저하 환자를 위한 안경기증 과 종합병원 정밀검진 주선의 활동을 펼친다.
김기원 회장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총 119명에게 감로심 장회의 이름으로 무료 심장수술을 이어갔지만 좋지만은 못했다.순수한 봉사를 색안경 끼고보는 시선이 가중되어 기금 1억3천여 만원을 사회로 환원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수술에만 2~300씩 드는 비용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어요. 조직을 꾸리고 이리저리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활동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았죠. 1994년 이후에는 진주불교사업연합회에서 운영하게 되었지만, 사방에서 투서가 들어오고 시끄러운 때도 있었습니다“.

   김기원 회장은 불교정화운동을 했던 청담스님의 도움으로 1963년 9월 창립한 대불련(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1기생으로 수료 후 1995년에 진주불교 학생회를 개설하고 호불학생회로 이어갔다.
“서부경남 학생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제대로 정신수련이 필요한 단체와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66년에 불교학생회를 조직하고 매주말에 법회를 이어갔습니다. 종교 를 통한 인격화 작업이었죠.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에 취직하 면서 진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전국으로 흩어졌습니다. 지금은 대학교수나 전문의 등 다양하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기원 회장의 인생에서 직업은 대학교수이며 문학가이며 예술인으로서 하는 활동이었다. 진주시내 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한 문학활동도 올해까지 23회째 이어지고 있다.

한 생명의 안타까움을 보며 봉사에 앞장서
지난날 김기원 회장이 첫 봉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한 학생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면서였다.
항상 타의 모범이 되던 한 여학생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 겨‘일기장’을 몰래 보았는데 ‘나는 왜 죽어야 하나?’라는 유서가 적혀 있었고, 심장이 멎는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 여학생의 심장병을 알고는 이후 당시 1300여 만원의 거금을 마련하 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지역 방송과 신문을 통해 그 학생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던 김기원 회장은 제자였던 라디오PD의 도움으로 수회 연속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간 정신없이 모은 돈이 2,500여 만원이 되었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이후 남은 사재를 모아 심장수술로 108명에게 의미깊은 불교의 자비를 베풀고자 봉사를 시작했다.

새생명광명회는 김기원 회장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퇴임 후에도 이어가는 무료봉사 단체로 남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1994년 병원에서 많은 안과질환자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안과질환 환자를 보며 365명에게 무료수술을 해 주고자 그해 10월10일에 시작했다. 개인의원이나 치과와 연 계해 의료고문으로 활동하며 후에 경상대병원, 부산대병원이 나 동아대병원까지 후원을 받으며 이어나갔다. 각 지역의 독 지가 후원으로 개안수술을 거쳐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처럼 경남도내를 순회하며 농촌 오지의 주민들에게 무료의 료검진을 해주고 지역민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며 ‘광명의 삶’을 선사했던 김기원 회장은 지난 2012~13년이 가장 열띤 활동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지역 로타리봉사단체의 활동으로 1년에 300여명의 수술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이미 눈관련 수술의 혜택을 받은 분만 540명이 넘었고, 다른 봉사활동도 많이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김기원 회장은 인간의 관계에서 남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실천 중이다.
“가족들은 싫어하는 얘기이지만, 내가 내 복으로 살아가는게 아니에요. 내가 남을 위해 일함으로서 나에게 복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남이 알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죠. 그냥 성실하고 근면함이 내 복의 밑자락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1966년부터 타기 시작한 자전거를 오늘도 타고 다니며 뜻깊 은 봉사활동을 펼치는 김기원 회장.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삶과 자전거, 그리고 차(茶) 라고 전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의 고귀한 희생을 보며 세상의 큰 빛으로 앞으로도 새생명광명회의 봉사가 10년, 100년 찬란하게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Profile>
現) (사)새생명광명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1994년 시인으로 등단) 국가원로회 원로위원

* 1990년 3월 감로심장회 창립 1994년 어린이 심장병무료수술 115 명 수술달성
* 1994년 10월 새생명광명회 창립 2015년 무료 개안수술 5043명 달성 안개나눔 12,340개
* 1995년 6월 진주시청소년 고교문학동아리 창립(석류꽃 피는날) 2015년 20주년 행사
경남과학기술대학교(전 진주산업대) 명예교수 68년간 문학가의 삶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 창립(문교부허가)
한국차인연합회 감사 18년간 역임
향토생활문화연구원장
진주시청소년단체 협의회 발기조직 책임 부회장 1994년제1회진주시청소년축제창립및단체연합회장 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부산문협, 황령문학, 진주문학 회원 민족통일운동본부 공동대표 (사)한국차문화학술원장
국민훈장 모련장 / 홍조근정훈장 진주문화원 문화대학장 시집‘녹차빛향기’,‘차몇잔마셨냐’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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