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사의 자질은 무엇인가

손병문 보령의원 원장

  • 입력 2016.04.19 10:56
  • 수정 2016.04.19 12:34
  • 기자명 홍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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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문 보령의원 원장

30년째 울산에서 보령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손병문 원장은 울산에 남다른 애착심이 있다. 할아버지, 아들, 손주에 이르기까지 3대를 걸쳐 진료하고 있는 손 원장은 울산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쳤다. 그러나 그에게 후회란 없었다. 환자들이 자신을 의사가 아닌 ‘동네 아저씨’로 인지해주길 바라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는 진실한 의료인 손병문 원장을 만나보자.

보령의원 환자의 마음을 읽다
손병문 원장은 환자를 대하는데 있어 누구보다도 열성적이고 양심적이다. 환자가 방문했을 때 손 원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픔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상처까지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보험수가 문제로 30분 대기하고 5분 만에 진료가 끝나는 형태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는데, 손 원장은 환자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진료에 몰두한다.
감기에 걸린 환자가 내원할 경우 신체적인 문제와 함께 실질적으로 받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없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일종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간의 소통은 보다 정확한 진료가 가능하게끔 만들어준다. 내면까지 치유된 환자들은 손 원장을‘ 의사선생님’으로 대우하기 보다는 동네 주민이자 어른으로 인식하는데,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손 원장은 누구보다도 환자를 열심히 본다. 자신의 일이 삶의 낙(樂)인 손 원장은“ 제가 살면서 가장 보람될 때는 직접 치료하는 환자들이 나를 믿어줄 때 가장 보람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제겐 가치가 있는 일이죠. 환자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대해 동조하기 시작하다보면 다른 내면이 보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마음의 짐도 클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통해 저는 보람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지만 올해 손 원장의 계획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기 어렵듯, 몸의 건강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내원하는 아픈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진료하지만 쉽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혹시 내가 생활을 핑계로 소홀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합니다. 이전에는 저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까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환자를 대하는 진심을 전하는 말이 때로는 그 사람들은 삶 속에서 오히려 그들을 괴롭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울산시를 위한 무한한 애정
손병문 원장이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후 사회로 진출했을 당시, 의사들의 배타적이면서도 폐쇄적인 면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울산시의사회에 문을 두드렸다. 의사들의 사고가 의료발전과 사회변화를 꾀하며 일반사람들과 동조하는 데에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손원장은 80년대 후반에 보령의원을 개원하고 이후 울산시의사회에서 활동하며 의사들의 모임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려고 노력했다. 의사회에 들어와 의사들의 사고방식 개선을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한 것은 의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통신망의 구축이었다. 컴퓨터를 일찍 시작했던 손 원장은 울산 의사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온·오프라인을 통한 모임 활성화에 기여했다. 노소(老少)를 떠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여는 울산의 의사회 선·후배들을 연결하고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의약분업문제로 의사들의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울산시의사회가 중
심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손 원장에게도 기회가 되어 중앙의 의사협회에서 정보통신과 관련 업무를 9년 동안 맡기도 했다.
특별한 모임이 없어 소외되었던 일반의들의 안식처를 만들기 위해 그 당시 전국에 있는 일반의들을 대상으로 협의회의 창설을 권유했다. 이로 인해 지금의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가 구성되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는 20개의 대한의사협회 산하 개원의협의회 중 가장 활성화된 협의회로 하나로 환자 진료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모를 고통, '베품'으로 승화하다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뒤 환자를 돌보는 중 손 원장에게는 견디기 힘든 여러 일들이 발생했다. 의과대학에 진학 중 의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그는 진정한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자문했다.
자신의 삶에서 나타난 일련의 시련들은 손 원장이 진정한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경험이 되었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하고도 가치 있는 일이기에 어떤 것보다도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한 아이의 엄마가 3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왔습니다. 목욕하는 사이에 아이 혼자 물에 들어가 익사한 상태였습니다. 숨을 쉬지 않았지만, 2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제가 겪은 아픔들이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항상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한다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연구
그리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해서도 우리 의료사(醫療史)의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10만 여명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왔지만 연간 천명 이상이 일본인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결핵, 장티푸스, 홍역과 같은 전염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병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판단했고, 일본 의사들을 들여오는 외에도 조선의 약포, 침술사 등에게도 의사자격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들은 단기간의 교육을 받은 후 의업에 종사했으며, 어떤 이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서양의학을 배운 후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전염병예방을 위해 일본순사들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의사 앞에 데려가 예방접종 등을 시행하였으니, 일반 사람들에게 의사는 높은 지위에 속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겁니다. 선진국의 경우 의사단체는 부단한 봉사와 노력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처음부터 의사에게 높은 지위가 부여되었기때문에 일반인들과의 관계에 틈이 생겼을 수가있습니다.”

또한 의약분업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도 꼬집었다. 사회적으로 6.25 동란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은 전쟁에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의료정책의 수립에 꼭 필요한 정부의 부서에 끼어들 여력이 없었다. 6.25전쟁 이후 다양한 병이 창궐하는 전시 상황에서 선진국 제약회사들은 약을 계속 제조해 판매하기 위한 수단을 다양하
게 만들었다.
그 당시는 처방전이 없으면 약을 못 사는 체제였는데,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약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1953년 약사들이 의사들의 처방전 없이 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약사법에 부칙으로 추가하였는데 이 임의조제권은 이 후 45년간 지속되었고, 그 부착조항의 만료시기가 되자 의약분업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의 한국의료보험체제 하에서 의사가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환자의 건강을 위해 진료에 전념하기는 힘듭니다.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의사 또한 자신의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하기 이전에 환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 의료계가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삶 자체, 봉사를 위한 사고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손병문 원장은 어릴 적부터 자립심이 강하며 영특했다. 유별나게 사람들의 예쁨을 받았지만,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확고했던 만큼, 의과 대학을 진학하여 사회에 보탬이 되리라 다짐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늘 정직하고 성실하게 모든 일에 임해라.”라고 강조하셨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어려웠던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는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착한 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작년부터는 마음의 수양을 위해 취미로 사진을 배우고 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높은 예술적 감각을 보이며 바다로, 산으로 다닌다. 마음을 전하는 수양연습은 그가 직접 찍고 편집한 풍경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손병문 원장은 여생을 위한 목표로 남들을 위해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마음의 여유는 계속해서 다듬어가고 있습니다. 삶에 허덕이다보니 조금씩 미뤄져 지금에 왔지만, 이제는 정말 남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아픈 사람, 그 중에서도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살피고 어루만져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의사로서 지녀야할 진정한 자산은 경제적인 부도 화려한 명예도 아니었다. 손병문 원장과 같이 환자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을 통해 사회에 더 이바지할 수 있는 인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손병문 원장에게는 내일보다 오늘이 중요했다. 봉사의 마음은 미뤄지는 부분이 아니기에 방문하는 환자 한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하는 그야말로 현 시대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사상이라 할 수 있다.

Profile | 손병문 원장
1977 동래고등학교 졸
1984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
1997 울산시의사회 정보통신위원장
1997 울산시의사회 기획정보이사
1998 대한의사협회 정보통신위원회 위원
1999 대한의사협회 웹운영위원회 위원장
1999 Y2K대책위원회위원장
2003 대한의사협회 포탈사이트 대표운영장
2003 울산광역시 의료자문위원 역임
현 보령의원 원장(1987년 개원)
현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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