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의 힘을 믿다

봉사활동 40년, 김주덕 대한항공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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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만화영화 속 영웅은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나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남을 돌본다는 것은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밥 먹듯이 또 숨 쉬시듯이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주덕 대한항공 카운터수속업무 키오스크 전담 매니저다.

너는 내 운명, 봉사와의 첫 만남!
웃을 일 없는 세상, 이처럼 웃음과 미소로 가득한 곳이 또 있으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설렘을 안고 도착하는 인천국제공항이다. 여행객들의 출국 수속이 한창인 가운데 유독 밝은 표정으로 키오스크 앞에서 좌석 배정을 도와주는 한 남자, 김주덕 매니저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친절에선 따뜻함이 묻어나고 진심이 느껴진다. 단순히 직업적으로 갈고 닦은 기술이라고 하기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 이유는 뭘까? 그의 별칭에서 조금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대한항공 봉사왕’이다.

김주덕 매니저가 대한항공에 입사한 것은 1977년. 벌써 40년째 접어들었다. 지칠 법도 한 직장생활이 그에겐 예나 지금이나 감사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봉사활동과의 본격적인 인연을 만들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한가족서비스'라는 업무를 담당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을 공항 게이트나 환승 지점까지 안내해 주는 공익적 성격의 업무였다. 단순한 호의 이상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였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공부가 필요했다. 결국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자연스럽게 봉사는 그의 운명이 됐다!

김주덕 매니저의 스케줄은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를 방불케 한다. 주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매주 둘째 주 목요일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 모시고, 토요일마다 아동보호센터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요. 일 년에 두 차례는 농촌일손 보태러 가고, 여름에는 어려운 분들 집 지어주는 해비타트 행사가 참가해요. 삶의 끝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전화하는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도 하고, 서울역에서 노숙자 배식도 합니다.”
어마어마한 봉사활동 스케줄에 입이 딱 벌어진다. 이쯤 되면 순간적으로 드는 원초적인 질문들. 그렇게 활동할 시간이 되세요? 쉴 시간은 있으세요? “마음이 있으면 다 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틈틈이 쉽니다. 봉사활동은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죠.” 그간의 봉사활동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보건복지부 VMS(사회복지 자원봉사인증관리)에 등록된 봉사활동 시간만 1000시간을 넘어섰다. 1000시간이면 '골드 배지(금상 흉장)'이다. 한 번 받기도 힘든 상을 3번이나 수상하게 된 셈이다. 업무시간 외에 하는 직장인의 봉사활동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 의미가 뜻 깊다. 그의 선행소식이 알려지면서 2004년 ‘장애인의 날’엔 국무총리 표창, 2012년 '노인의 날'엔 보건복지부에서 상을 받았다. 처음엔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고 쑥스러웠지만 최근엔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기부하면 따라서 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활동들이 누군가에겐 마음만 먹고 있던 봉사활동을 직접 실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실천들이 모이면 사회가 더 따뜻하게 변하는 거잖아요.”

잘 들어주는 것 자체가 봉사예요.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현재 몇몇 한강다리엔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10년 넘게 하루 40여 명의 사람들이 제 손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삶의 끝자락,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든 수화기에서 어떤 이는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다. 김주덕 매니저는 매주 목요일마다 ‘생명의 전화’에서 안간힘으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이들을 붙잡고 있다. “목소리 딱 들으면 알아요. 세상의 끈을 다 놓은 듯한 느낌.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잘 들어주는 겁니다. 들어주는 게 사람을 살릴 수 있겠냐 하겠지만 살릴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전화하는 분들은 사실 한편으론 살고 싶다는 얘기거든요. 마지막으로 내 손을 잡아달라는 무언의 신호인 거죠.”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담을 이어가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함께 긴장한 터라 온몸은 녹초가 되지만 그는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다. 그를 기다리는 이들이 세상엔 아직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쪽방촌 연탄 배달을 갔었어요. 비좁은 비탈길이다 보니까 거동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연탄을 옮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인 거죠. 연탄이 없으면 겨울을 그냥 냉골에서 지내야 되는 거예요. 저희가 일을 다 하고 나왔더니 정말 고맙다며 커피 사먹으라고 2,000원을 주시더라고요.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건네는데 가슴에서 순간 뜨거운 게 막 올라오더라고요.”
봉사가 일상이 된 사람도 있지만 세상엔 아직도 봉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특별한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지 하면서 말이다. “봉사활동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따뜻한 손 한 번 잡아드리고, 안부 한 번 여쭤 봐드리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가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이처럼 나눔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크게 위로 받는 건 김 매니저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함께 나눌수록 내가 웃게 되고, 마음 부자가 되니까 얼굴 표정도 좋아지고 그러다 보면 웃을 일이 더 생기더라고요. 처음엔 누군가를 위해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결국 내가 힐링 되고 내가 행복해지는 거더라고요.”

알렉산더 대왕도 죽을 땐 빈손, 함께 잘 살아야지요.
그의 봉사활동 분야는 다양하다. 주변에서 도와달라는 곳이 많아 부르면 거절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강행군의 일정 속에서 개인생활이나 건강은 괜찮은지 살짝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제가 이렇게 다니는데도 건강해요. 건강한 것도 감사한데 봉사까지 할 수 있으니 더 감사한 거죠. 가족들도 이제는 다 이해해줘서 대놓고 다닐 수 있으니 또 감사한 거죠.” 불평의 이유를 찾긴 쉽지만 감사의 이유를 찾기란 힘든 시대, 기자 역시 마음이 숙연해졌다.
김주덕 매니저와 같은 사람들의 나비효과일까? 최근엔 봉사활동 동아리도 늘어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도 증가추세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점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다시 오겠다는 말은 심사숙고 해야 해요. 그분들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기다리시거든요. 다시 안 가게 되면 그 만큼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어렵고 거창한 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 금방 지쳐 그만 두게 된다고 한다. 몸과 마음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일부터 하는 게 좋다고 김주덕 매니저는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에요.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결국 빈손으로 가잖아요. 욕심 부리지 말고 나눠야 따뜻해집니다. 저는 동행의 힘을 믿거든요. 함께 손잡고 가는 길,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오늘 회사 끝나고 뭐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의 답은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봉사하러 가야죠. 벌써부터 설레네요. 함께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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