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비상(飛翔)하는 비행기

비행기가 날아오를 때 내 꿈도 날아올라

  • 입력 2016.03.22 23:35
  • 수정 2016.03.23 11:08
  • 기자명 서성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속도로가 한적했던 지난 주말
에 김해에 위치한 한 화실을 찾
았다. ‘비행기 그림’으로 유명한 한국미술협회 김해지부장 윤병성 화가가 작업하는 공간이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아파트 한 채를 전체 작업공간으로 사용중인 윤 지부장은 입구까지 나와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아파트의 거실바닥이며 방에는 그림재료와 도구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방마다 이젤이 있어 언제라도 붓만 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문명의 이기 속에 물질만능주의의 양극화 사회로 가고 있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자유와 행복, 상상력을 바탕으로 마음속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비행기 작가로 유명한 윤병성 작가는 김해미술 협회 지부장으로서 김해미술협회를 6년째 묵묵히 이끌어 가고 있다.

“현재 제가 하는 일은 김해시의 문화관련 사업, 김해시 산하 김해문화재단의 이사로서의 업무가 다양합니다. 맡은바 소임을 다해 김해미술과 예술발전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윤병성 지부장은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고 남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는 서예나 미술에 소질있다는 칭찬을 곧잘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산교육대학을 다녔던 작은형 덕에 손쉽게 물감이나 붓을 익힐 수 있 었다.

윤병성 지부장이 본격적으로 미술에 본격적으로 입문했을 때는 칠원중학교 미술부 시절이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었던 이응조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사사받고 줄곧 남다른 미술 재능을 발전시켜 나갔다.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제 9기로 진학했을 때만 해도 세계기능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칼을 갈며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바로 입상하지는 못했다.

졸업하고 직장이 항공관련업이라 항공기를 많이 그렸다. 실제로 정비장에 세워진 비행기를 보고 작품 활동하면서 그림의 웅장함과 섬세함을 인정받아 5년 사이에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3회와 특선 2회를 연속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1978년에 대한항공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바로 퇴근 후 범일동 개인화실에서 2년정도 그림을 배웠는데 그 때 스승이 故 한상돈 선생님이었습니다.”
화실에 가면 방학 때 미대를 다니던 학생들이 많았고 이에 마음 한 구석 소박한 꿈을 키웠다. ‘나도 언젠가 제대로 미술대학에 가서 그림을 배울 것이다.’

그후 1981년 부산의 한 대학 디자인계열 학과에 입학했고 2006년까지 학문을 이어나가 동아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윤 지부장이 직장을 다니면서 얻은 기회도 기적적이었다. 1984년 노동부 주최의 노동문화제(現 근로자문화예술제)에 우수상을 통해 청와대 오찬 초청이 왔고 이후 회사 최고경영자 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님이 사내에서 그림작업을 할 수 있도록 별도로 작업실을 마련해주며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었다.

“한 40평 되는 작업실을 따로 주고 미국이나 프랑스에 몇 주씩 보내 안목도 넓혀 시켜줬습니다. 1980년대이니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기 힘든 시절이었어요.”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최고경영자의 배려 덕택에 집중해 작업을 하면서 결과도 남달랐고 1989년 경남미술대전에서 서양화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1998년 IMF 이후에는 회사에 있는 특색있는 것을 찾아 스케치하고 소재로 삼으면서 정비장에 서 있는 비행기가 자신의 독특한 소재가 되었다. 이 소재의 아이디어는 한 신문에 게재된 ‘모 항공사’의 광고사진으로 부터 영감을 받은게 계기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두번의 입선과 특선의 영예를 안겨준 것이 바로 이 비행기 그림들이다. 그냥 비행기의 단순한 정물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비행기를 그리고자 해서 ‘종이비행기’가 탄생했다. 이처럼 윤병성 지부장이 그리는 종이 비행기에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시절 간직한 추억속 아름다움을 찾아

처음부터 윤 지부장이 그린 그림의 소재가 비행기는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석류와 모과 같은 정물화가 대다수였고 이후 부산에 머물면서 선박이나 바다를 그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 대문 근처에 석류나무가 있었어요. 추석이면 석류가 익어갔는데 그것을 서로 따먹겠다고 형제끼리 다투기도 많이 했죠. 그런 추억이 담긴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윤 지부장의 김해지부장 임기는 올해 12월까지이다. 앞으로 윤병성 지부장은 여유시간이 되면 남는 시간에 강의를 다니고 후학을 양성하며 미술경영이나 미술행정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전하고자 했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미술행정 이나 미술경영분야가 많이 약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미술계 분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작가들이 오로지 작품활동을 한다면 미술행정력이나 미술경영력이 있는 사람이 주변을 보필해야 하는데 아직 체계적이지 못해요. 그냥 문화센터 가 되더라도 이런 전문지식을 도입하면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작가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키울 수 있겠죠.”

윤 지부장은 퇴임 이후에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을 준비하며, 제 2의 고향인 김해지역의 미술문화 발전과 가족과의 행복한 여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비행기 그림’에 숨결을 잡어넣는 작업도 포함돼 있다.
 

그림 이야기

내가 즐겨 다루었던 ‘배’나 ‘거대한 항공기’ 그리고 ‘종이비행기’는 시골에서 태어나 초중학교를 보내고 고향을 떠나 제일 먼저 정착한 곳이 부산의 거대한 선박이 오가는 바닷가였으며 첫사회 생활을 한 직장이 항공회사라 탄생할 수 있었다. 종이 비행기는 언제 추락할 지 모르는 운명의 존재 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인 조형물인 비행기는 언제라도 하늘을 날며 인간의 꿈과 희망을 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문명의 이기 속에 물질만능주의의 양극화 사회로 가고 있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자유와 행복, 상상력을 바탕으로 마음속 꿈을 간직하고 있다.

윤 지부장이 다루는 어린 시절에 추억과 연관된 소재는 인간의 꿈과 희망을 기원하며 이 시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과 같은 메시지이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