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그녀를 상징하다

장미의 극점에 있지만 여전히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향기로운 이야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개한 장미는 극도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여인, 이길순은 스스로 장미가 되었다.
장미가 된 그녀는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될 것이다.

“한여름,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볕과는 반대로 하늘을 향해 맑고 투명한 잎새를 피워내는 장미의 생명력에 매료되어 30년간 장미를 그려왔다. 빛에 의해 보이는 오묘한 색깔의 얇은 꽃잎들은 마치 잡을 수 없는 나비의 날개처럼 안타깝고 가련하였고, 각각의 형태를 가지고 제각기의 방향으로 피어있는 장미들은 세상을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삶처럼, 넓은 장미 벌판의 장미들은 삶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에 장미는 내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나의 가족이, 친구가, 이웃의 산 사람의 모습이 되기도 하였다. 어느 누구하나 같지 않게 특별히 창조된 인간의 모습처럼 어느 송이 하나도 같지 않은 장미의 군집, 순간의 사진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표정, 그 표정 속에 녹아든 그 사람의 인생, 쉼 없이 피고 지는 장미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모습과 내 삶의 모습을 본다.”

어느 여름날 장미원에서 - 작가노트 -

마음을 빼앗기다
마음을 감추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이길순 화백도 그랬다. 화가로서 풍경화, 정물화 등 자유롭게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꽃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그 내재된 마음이 예술작품에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련, 코스모스, 라일락, 해바라기, 수선화 등 수많은 꽃들을 그렸다. 그런데 이 꽃들 가운데 장미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그저 사랑하는 장미가 늘 그녀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이 화백의 손끝에서 태어난 장미가 수 만 송이일지라도, 3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을 지라도 여전히 그녀는 장미를 보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한다.
“조각을 하는 딸이 영국에 있어 자주 왕래했어요. 영국에는 드넓은 로즈가든이 무척 많죠. 그래서 직접 현장에 나가서 그리곤 했어요. 풍성하고 영롱하게 핀 꽃들을 생생하게 바라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해요. 그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은 정말 행복해요. 빨리 담아내고 싶죠. 세상에 오로지 장미와 나, 이렇게 둘만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어 화폭에 그려내요.”
 여행을 자주 가는 그녀는 그 곳이 어디든 그녀는 늘 장미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그리고 매순간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감정들을 하나하나 장미에 투영시킨다. 그녀의 장미가 한 종류의 꽃일지라도 다 각기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이 화백의 손끝에서 탄생한 장미들은 오롯이 그녀가 담겨있다.
  100호 크기의 캔버스에 커다랗게 클로즈업 되어있는 장미는 무척 세밀한 터치감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이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장미들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풍성함과 바탕의 조화를 아름답게 이룬다.  서리가 낀 장미는 흔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상황의 발상으로 이 화백의 독특한 예술 시각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장미를 주제로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무척 다양하다. 장미라는 하나의 주제여도 싫증이 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를 한다. 어린 소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하나하나 즐겁게 이야기하는 이 화백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함께라면 누구나 맑게, 활짝 핀 꽃처럼 영롱하다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프랑스를 사로잡은 그녀의 장미
 이길순 화백은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린 2014년 ‘살롱 앙데팡당(Artists Independants/Art en Capital Salon)’전(展)에 ‘서리낀 장미’를 출품해 국제 앙드레말로협회로부터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프랑스의 살롱 앙데팡당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전시회 중 하나로 미술인에게 꿈같은 무대다.
 “평생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작품 활동을 놓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많은 상황 속에서도 다행히 포기하지 않았죠. 그리는 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애착도 많은 작품이 바로 ‘서리 낀 장미’였는데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는 영광을 얻어 기쁩니다. 주위 사람들이 ‘말년에 축복을 받는다’며 장난 어린 질투를 하실 정도로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겸손함과는 다르게 그녀의 실력은 이미 국내 미술계에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이 화백의 장미는 독특한 감성의 세밀한 터치를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새로운 장미를 늘 연구하며 장미의 크기, 색감, 종류, 꽃이 핀 정도를 고려해서 배치하며 그림을 그린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색다르게 장미를 피워낸다. 이러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녀의 장미가 어디서나 당당하고 풍성하게 자태를 뽐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꽃에 비유하며 이제 져가는 꽃이라고 말하는 이 화백을 만나보니 그녀는 결코 지는 꽃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만개한 한 송이의 빨간 장미 같았다. 장미가 풍성해지는 5월이 다가오면 환하게 웃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이 화백의 열정적인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고, 앞으로 피워낼 장미들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사랑하는 장미가 가득 그려진 테이블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했다.

 “늦가을 새벽녘에 한시적으로 볼 수 있는 서리 낀 장미를 작가는 포착했다. 엄정한 자연의 질서, 세월의 풍상, 혹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등의 상투적 투사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꽃잎 언저리의 하얀 서릿발이 가녀린 장미의 속살에 침투한 비수라기보다는 포근히 장미를 감싸는 솜이불처럼 보인다. 서리는 차가우면서도 영롱하고 무채색의 서리에 대비된 붉은 장미는 오히려 찬연한 빛을 발한다.”
-이경모(미술평론가, 월간미술세계편집장)-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